이런 식으로 시각적인 형태를 청각적인 음형으로 바꾸는 걸 음악적 사고라고 내가 부른 것이다.
시창청음, 초견 연습 등 '악보'를 지속적으로 다루는 훈련과 순발력있게 음악을 창조하는 '즉흥연주'가 이런 음악적 사고를 촉진할 것으로 예측한다.
이런 음악적 사고를 '시각의 청각화' 즉 공감각적이라고 여기는데 악보 자체에 공감각적 성질이 내재되어있다고 판단된다.
(본문)
여기서 제가 말하는 '음악적인 생각'은 매우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용어입니다. 영상에서 구사된 맥락은 청각적 심상에 전이되는 공감각적 심상의 활성화가 더 적절한 표현이랄까요? 하나의 감각이 동시에 다른 영역의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공감각적 심상 말입니다.
그래서 악보 얘기를 한 것입니다. 악보는 눈으로 보지만 동시에 악보를 귀로 듣습니다. 시각적 심상이 청각적 심상으로 전이되지요. 저는 시각의 청각적 전이가 음악전공생-악보 에 한정되는 것이 아쉬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악보와 비슷하게 생긴 자연물에 한번 확장을 시켜 봤던 것입니다. 악보라는 게 음표와 오선으로 구성되어있는데, 그 음표도 점과 선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자연물에도 그 점과 선으로 이뤄진 것이 많지 않습니까? 음표를 콩나물 대가리라고 부르는데, 참 의미심장한 별명입니다. 그래서 뒤집어서 콩나물을 음표를 떠올릴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콩나물(혹은 비슷하게 생긴 식물들)이 여러 개 모여있다면, 음표가 여러 개 모여 이뤄진 악보가 보이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식물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악보를 볼 때와 같은 청각적 심상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