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에 영감을 얻어 멜로디를 떠올려 음악을 적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음악을 듣는 사람은 그 풍경을 떠올릴 수 있을까?
사전 설명이 없이 음악을 듣는다면 풍경을 떠올릴 수 없다. 설명이 있다면 풍경을 떠올릴 수는 있을 것이다. 다만 음악을 쓴 사람이 떠올린 '그 풍경'은 정확히 떠올릴 수 없을 것이다. 쓴 사람은 '정동진'보고 떠올려서 썼는데 듣는 사람은 정동진 한번도 안 갔다온 사람이어서 자기가 다녀왔던 풍경 중 가장 예뻤던 다른 경관을 갖다 붙일 수도 있겠지
반면 여지원이의 음악세계는 다르다.
나는 총기번호 187***에 영감을 얻어서 음악을 구성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음악을 듣는 사람은 총기번호를 떠올릴 수 있을까?
사전 설명이 없으면 풍경과 마찬가지로 못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1-도 2-레 3-미...식의 숫자저음의 원리로 구성됐다고 설명하면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한 총기번호를 듣는 사람이 구성 원리만 알면 '정확히' 떠올릴 수 있다. 내가 옛날에 본 총기번호나 지금 본 총기번호나 다른 사람이 본 내 총기번호나 다 질적으로 정확히 똑같은 '187***'이다.
(풍경에서 영감 받아 쓴 멜로디를 듣고 '곡을 쓴 사람이 떠올리는 풍경'이나 '지금 듣는 사람이 떠올리는 풍경'이나 '나중에 듣는 사람이 떠올리는 풍경'이나 전혀 질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아까 풍경과 달리 '여지원이'가 생각하는 총기번호와 '듣는 사람'이 생각하는 총기번호는 다를 리가 없다.
다 똑같은 '187***'이다.
곡을 구성한 사람이 떠올리는 총기번호도 '187***', 듣는 사람이 떠올리는 총기번호도 '187***', 악보만 본 사람이 떠올리는 총기번호도 '1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