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글로벌 외국계 기업의 인사팀장이 된 나, 그 시작은 청소부였다.
나는 곧 사회에 입문할 아들에게 한 번쯤 내 이야기를 정리해 들려주고 싶었다. 처음엔 오직 그 아이만을 위한 글이었다. 하지만 글을 쓰다 보니 문득, 이 이야기가 단지 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낯선 회사에 첫발을 디딘 사회 초년생들, 매일같이 출근을 반복하며 ‘존버’ 중인 직장인들, 수백 번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되뇌다가도 다시 자리로 돌아가는 사람들. 그 모두에게도 이 이야기가 닿을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은 내가 지금 외국계 기업의 인사팀장이라고 하면, 그럴듯한 학력과 스펙, 안정적인 커리어를 떠올린다. 하지만 감히 말하건대, 내 커리어의 첫 줄은 ‘청소부’였다. 그것도 타국, 영국 런던에서. 영어 한 마디도 제대로 못 하던 20대 초반, 그때의 이야기다.
처음 런던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저 평범한 학생이었다. 화려한 계획도, 특별한 배경도 없었다. 다만 생활비만큼은 스스로 벌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세 들어 살던 파키스탄 집주인이 소개해준 청소일을 선뜻한다고 했다.
그게 내 인생 첫 번째 일자리였다.
기억나는 첫 청소는 지금도 생생하다. 오래된 플랫, 남자들만 사는 집, 문을 열자마자 후각을 강타하는 냄새. 부엌엔 바퀴벌레 사체가 널려 있었고, 화장실은 누가 마지막으로 청소했는지도 모를 상태였다. 구토를 억누르며 바닥을 닦고, 오물들을 긁어내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와... 나 여기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도 아무도 모르겠는걸?”
그 말을 나도 모르게 한국말로 중얼거렸고, 그 순간의 나 자신이 너무 처량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 청소를 마치고 집을 나설 때는 마음이 조금 달랐다. 손은 까지고 몸은 지쳤지만, 내 안에는 묘한 확신이 자리 잡았다.
‘그래도... 나, 살아남을 수 있겠다.’
그 후로도 나는 정말 많은 일을 했다. 서빙, 테이크아웃 가게, 일식집 카운터, 카페 계산원까지. 영어가 안 통해도, 일이 고돼도, 나는 그 모든 순간을 통과해 냈다. 그러면서 세상을 배웠고, 사람을 배웠고, 결국엔 나 자신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청소를 하러 간 집의 인도계 노교수 할머니가 내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당신처럼 영어가 안 통하는 사람에게는 다시 청소일을 맡길 수 없겠어요.”
단어 하나하나를 조합하며 간신히 이해했기에, 그 말은 더 비참하게 다가왔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입술을 꽉 깨물며 참았던 눈물이 툭, 떨어졌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커다란 쇼핑몰의 패스트푸드점마다 들어가 무작정 말했다.
“Excuse me, are you hiring?”
수없이 거절당하면서도 결국, 내 자리 하나를 만들어냈다.
처음으로 일당을 받았던 날. 작은 봉투 안에 들어 있던 20파운드. 어디서 들은 게 있어서인지 베풀어야겠다는 생각에, 어학원에서 알게 된 한국인 동생에게 볶음밥 한 그릇을 사주고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잘 지내”라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한참을 울었다. 엄마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꾹 눌러두었던 감정이 터져버린 것이다.
나는 그때까지도 그리고 그 후에도, 청소부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모님께 말하지 않았다. 괜히 걱정하실까 봐, 그저 잘 지내고 있다고만 말했다.
치열하게 살아낸 그 시절. 작고 연약했지만, 동시에 끈질기고 단단했던 시간들. 나는 지금도 그 시절의 나를 가장 자랑스럽게 여긴다.
지금 나는 글로벌 외국계 기업의 인사팀장이다. 채용과 성과평가, 조직문화와 구성원 성장까지—사람을 중심으로 한 모든 여정을 함께 설계하는 일을 한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 여러 국가를 담당하며 수많은 사람들과 프로젝트를 함께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그 모든 과정에서 내가 겪고 배운 것들을 글로 남기고 싶다. 내 아들에게, 그리고 이 시대의 또 다른 나에게.
이 글은 화려하지 않은 출발선에서 시작해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온, 한 엄마의 이야기다.
지금 어딘가에서 조용히 버티고 있는 당신에게 꼭 전하고 싶다.
“청소부터 시작해도 괜찮아요.”
그리고 언젠가, 당신의 커리어 첫 줄을 꺼낼 때, 그 이야기가 당신을 더 단단하게, 더 빛나게 만들어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