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원 Jiwon Kim Jan 10. 2024

삐걱삐걱, 로봇형 몸치의 비애

몸치 변호사의 크로스핏 역도·체조 동작 도전기

 마라톤 접수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에 풀코스 마라톤을 신청했다. 평소에 5km, 10km씩은 종종 뛰지만 꾸준히 뛰는 것도 아닌 데다, 하프도 뛰어본 적이 없으면서 ‘대책 없이’ 42.195km를 뛰어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뭐든지 시작하기 전에 책부터 펴고 보는 소위 ‘먹물’인 나는 10주간의 벼락치기 연습에 들어가기 전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종종거렸다. 우선 의학교수이자 운동치료사가 쓴 달리기 주법과 과학적 훈련법에 대한 책을 훑어 읽기 시작했다. 읽던 중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잘못된 주법으로 달리는 주자(走者)들의 유형을 분류해 둔 대목이었다.


● 믹서형 : 볼에 실온 상태의 달걀 3개, 설탕, 딸기를 섞어보자. 그리고 믹서형 주자에게 거품기를 쥐여주고 1km를 달리게 한다면 맛있는 딸기 무스가 완성될 것이다.

● 비행기형 : 새인가, 비행기인가 갸우뚱하게 만드는 주자다. 전투기처럼 활개를 펼치는 이 유형은 엄청난 에너지를 쓸데없이 낭비한다.

● 매니큐어형 : 손바닥은 땅을 향하고 손가락은 늘어뜨리고 손톱이 모두 보이는 이 유형의 주자는 방금 매니큐어를 칠한 사람처럼 보인다. 손톱을 잘 말리는 데는 이상적이겠지만 달리기에서는 비효율적이고 부자연스럽다.


 비효율적인 주법을 관찰해 유형화하고 일일이 이름을 붙여준 것도 모자라, 온갖 참신한 비유를 가져와 비꼬기까지 하다니. 신랄한 풍자에 이렇게나 진심인 의학교수를 보았나. 유형별 설명을 읽고 있자니 피식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도무지 참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 로봇형 : 로봇형 주자가 달리는 모습은 관절이 덜 발달한 로봇이 위성에서 움직이는 것과 흡사하다. 3차원에서 나선형으로 이루어지는 조화로운 움직임과 달리 로봇은 2차원으로 이동하며 몸은 뻣뻣하기 그지없다. 로봇형의 주자는 부상에 시달릴 때가 많지만 진짜 로봇들과는 달리 자신의 팔다리 어느 하나도 바꿔 달 수가 없다.


[그림] 얄궂게도, 저자가 어떤 주법을 묘사하고자 하는지가 바로 와닿는다. (내용 및 그림 출처 : 장 프랑수아 하비, <달리기, 조깅부터 마라톤까지>)


 이 대목으로 넘어와서는 그저 마음을 놓고 웃을 수만은 없었다. 크로스핏 체육관에서 “지원쌤*, 지금 완전 로봇 같아요!”라는 말을 들은 게 불과 2주 전이었기 때문이다. ‘완전 로봇 같은’ 내가 지금 믹서형, 비행기형, 매니큐어형 주자들을 비꼬는 대목을 보고 하하하, 웃을 때가 아니었군.


* 내가 다니는 크로스핏 체육관에서는 회원들끼리 서로를 “쌤”으로 칭하도록 하고 있다. 크로스핏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이와 배경을 불문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운동할 수 있게 돕는 훌륭한 문화라 생각한다. 로봇을 두고 로봇이라 칭하며 바른말을 하는 걸 막아주지는 못하지만…….


 그렇다. 나는 내 몸뚱아리의 움직임을 컨트롤하는 데 젬병이라는 사실을 이쯤에서 고백해야겠다. 그러니까, ‘몸치’라는 말이다.


나는 몸치답지 않게 수련회다, 신입생 환영회다 해서 고2 때부터 일곱 차례나 아이돌 춤을 추러 무대에 올랐다. 춤 연습을 그쯤 했으면 나아지는 바가 있었어야 할 텐데, 새로운 안무를 배울 때마다 백지부터 새로 시작하느라 늘 고역이었다.


 나는 매번 개별 동작부터 시작해 순서와 대형까지 일일이 필기해서 공부하듯이 익히고자 덤벼들었다. 순서와 대형은 노래 가사를 써두고 아래에 졸라맨으로 그려 표시했고, 개별 동작은 튜토리얼 영상을 보면서 방법을 글로 적어둔 뒤 몸으로 따라 하며 연습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웨이브 완.전.정.복.*]

①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허리를 넣기

② 가슴을 위로 바라보게 하고 명치와 윗배를 앞으로 내밀기

③ 골반을 앞으로 빼며 자연스럽게 웨이브 동작 완성하기!!

* 기필코 완전정복을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담아 꾹꾹 눌러 써주는 게 제맛이다.




 이렇게 손으로 직접 써가며 안무를 익히고 외우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몸이 박자와 멜로디를 자연스럽게 따라가야 할 텐데, 막상 음악을 재생하면 내 머릿속에는 ‘완전정복 ①, ②, ③!!’이라는 문구와 온갖 자세의 졸라맨들만 두둥실 떠다닐 뿐 몸은 잔뜩 굳어버리기 일쑤였던 것이다. 피나는 연습으로 어찌어찌 동작과 순서, 대형을 모두 암기했더라도 춤선이니 표정이니 손끝이니 하는 디테일까지 살리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아니, 거기까지는 감히 내가 건드릴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어느 운동 분야의 권위자가 몸치들을 유형화한 뒤 그중에서도 ‘로봇형 몸치’에 대해 쓴다면 이렇게 묘사하지 않을까. 후후, 다름 아닌 나 자신에게서 영감을 얻어 다음과 같이 써보았다:




● 로봇형 몸치 : 로봇형 몸치는 뻣뻣한 몸을 삐걱삐걱 움직이기 전에 먼저 머리로 동작을 익히려고 하지만, 진짜 로봇들과는 달리 입력(input)에 심혈을 기울여봤자 제대로 된 출력(output)을 기대하기 어렵다, 쯧쯧.




 ‘로봇형 몸치’인 나는 지난봄에 시작한 크로스핏에서도 마찬가지로 애를 먹고 있다. 2년간 꾸준히 웨이트 트레이닝을 해왔기에 새로운 동작도 금방 익힐 수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이게 웬걸*. 몸을 앞뒤로 흔들며 리듬을 타고 진행하는 턱걸이인 ‘키핑풀업’ 같은 체조 동작들, 고관절을 폭발적으로 접었다 펴는 ‘힙드라이브’를 활용한 케틀벨 스윙이나 역도 동작들, ……. 파워뿐만 아니라 스피드, 협응력, 민첩성, 균형감각까지 요하기 때문에, 책상머리에서 끄적거리기만 해서는 도무지 익히기 어려운 동작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정신을 차려보니 ‘로봇형 크로스핏터’인 나는 기어코 ‘완전정복 ①, ②, ③, ④!!’를 정리하고 있었다:

* 웨이트 트레이닝은 근성장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목표 근육을 고립시켜 자극을 주는 것이 중요한 반면 크로스핏은 다양한 근육을 골고루 발달시켜 신체 능력을 극대화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어, 두 운동은 성격이 다르다고 알고 있다.




[역도 파워클린 완전정복]

① 셋업 : 견갑 당기고 가슴 펴기

② 무릎까지 올리기 : 상체 각도 유지, 하체만 써서 일어나기

③ 대퇴 위까지 올리기 : 바벨 허벅지 쓸면서 엉덩이 넣고 상체 세우기

④ 바벨 쇄골로 올리기 : 바벨 허벅지에서 떼지 말고 폭발적으로 수축하는 힘 사용해서 올리기, 손목 어깨 쪽으로 과신전하고 팔꿈치 좀 더 들기!!


[사진] 실제 내가 역도 파워클린을 배우고 있는 모습이다. 코치님이 찍어주셨다.



 키핑풀업이라는 한 가지 동작을 연습하면서도 나는 로봇형 크로스핏터의 유형에 걸맞게 △목과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몸이 자연스럽게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삐걱삐걱 움직인다 △얼굴과 목이 왜 이렇게 앞으로 나와 있냐 △스윙을 하는데 박자가 안 맞는다 따위의 다채로운 지적(!)을 받았다. 그러다 바야흐로 2주 전에는 “지원쌤, 지금 완전 로봇 같아요!”라는 말과 더불어 “지원쌤, 춤 못 추죠? 안 봐도 눈에 선하네.”까지, 뼈아픈 연속 직격타를 맞게 된 것이다. 아아, 로봇에게 키핑풀업이란 너무나도 어렵네-!


 아아아, 로봇형 몸치의 비애를 모르는 비(非)몸치 쌤들께 알립니다. 저는 몸치고요, 그중에서도 로봇형 몸치입니다. (처음부터 빤히 보여서 따로 고백이 필요 없다고요? 이게 왜 안 되냐고요? 흑흑.) 제가 뻣뻣한 몸을 삐걱삐걱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신다면, 신랄한 지적과 따뜻한 응원 어느 쪽이든 마음껏 보내주세요. 쌤들이 보내주시는 애정 어린 말들로 슥슥, 기름칠을 하면 저도 삐걱삐걱, 에서 삐걱, 정도로는 바뀔 수 있을 테니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왜 사서 고생을 하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