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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Jissay

300회 슈팅 연습 후 깨달은 점

by 이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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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부터 축구를 좋아했다. 보는 것도 좋았고 하는 것도 좋았다. 첼시 팬이었다. 04/05 무리뉴 감독 첼시 1기는 EPL 역사상 가장 임팩트 있던 팀이었다. 챔피언스리그 4강, EFL컵 우승, EPL 우승(29승 8무 1패), EPL 역대 최소 실점(15 실점), 리그 25경기 무실점을 기록하며 50년 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그때까지만 팬이었다.


금요일이 되면 항상 친구들과 주말 몇 시까지 모이자라는 약속과 함께 아침 6~7시가 되면 어김없이 하나둘씩 약속 장소로 모였었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즐거웠고 더우면 더운 데로 즐거웠다. 공하나에 온종일 행복했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아쉬운 건 정말 어릴 때 집 앞 놀이터에서 당시 유행이었던 골프공 치기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날아오는 골프공에 이마를 맞고 난 이후부터 날아오는 물체에 대한 공포증이 생겼다. 20대가 끝나가는 지금도 여전히 날아오는 물체에 대한 공포증이 있다. 이로 인해 헤딩을 못하고 롱패스를 무서워서 잘 못 받는다. 낮게 날아오는 공마저도 무섭게 느껴져서 엉덩이로 받아내곤 했었다. 나름 기술이라며 친구들을 웃기곤 했다. 실제로 코너킥 상황에서 엉덩이로 밀어 넣어 골을 넣은 적도 있었다. 그마저도 무서워 눈은 질끈 감고 있었지만.


아무튼 골프공에 이마를 맞은 사건은 축구를 좋아하기 이전에 벌어진 사건이라 축구를 좋아할 무렵에는 공을 가만히 놔두고 즐기는 프리킥 또는 패널티킥만 즐겨 했었다. 그마저도 고등학생이 된 이후부터는 운동을 즐기지 않게 되었고 최근에서야 어릴 적 공하나에 즐거웠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프리킥 연습을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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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하면 재미없으니 목표를 세웠다. 무회전 연속 10번 성공시키기였다. 메타인지가 부족했다. 프리킥 연습 시작할 무렵엔 무회전 슈팅 차는 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난 항상 이렇다. 내 능력 밖의 목표 세우는 걸 좋아한다. 20대 중반에는 이러한 내 성향이 단점으로 보였는데 지금은 큰 장점으로 다가온다. 어차피 인간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일은, 그걸 하려는 사람이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해내기 때문이다. 해내지 못하는 것은 재능과 운 관련된 요소인데, 일단 그마저도 정말 높고 원대한 목표 설정이 필요하다.


아무튼 지금도 무회전은 여전히 어렵지만 당시에는 무회전이라는 느낌조차 없었다. 인스텝 슈팅에 대한 감각 또한 없었다. 그냥 온 힘껏 세게 후려갈기면 되는 줄 알았다. 유튜브에 찾아보고 찾아봐도 기본기 없는 내 수준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일단 멋대로 원하는 대로 무조건 많이 차보기로 했다. 당연하게도 공의 궤적은 항상 원했던 방향으로 날아가지 않았고 애꿎은 발톱이 너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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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킥 연습 간에 자세와 슈팅 감각을 계속 떠올리기 위해 찍은 영상을 매번 살펴보았다. 원했던 궤적으로 날아간 슈팅과 느낌 좋았던 슈팅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정말 이상했다. 힘을 많이 준 슈팅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디딤발의 위치와 발등을 피고 발목을 고정시켜야 하는 찰나의 순간에 임팩트 있게 찬 슈팅의 대부분은 내가 그토록 원했던 무회전 또는 인스텝 슈팅의 궤적을 보였다.


하지만 온 힘을 다해 쌔게 차려는 영상에서는 공의 궤적도 높낮이도 굉장히 불규칙했다. 그리고 그러한 순간들을 떠올려보면 항상 애꿎은 발톱이 아프거나 발의 특정 부위가 아팠던 기억이 떠오른다. 에너지 소모 대비 결과가 좋지 못한 것이다.


무회전 슈팅 차는 법을 가르치는 유튜브 영상은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무언가를 시작함에 있어서 우선 해야 할 일은 무조건적인 인풋의 양을 늘리는 것임을 배웠다. 쉽고 효율적으로 배우려 하기보단, 불규칙한 공의 궤적과 높낮이와 잘못된 자세로 인해 생겨난 통증과 같은 시행착오를 스스로 느끼고 경험할 때 그로 생겨난 상처가 아물며 새살이 돋아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성장을 얻는다.


타인이 건네는 조언과 경험담은 당연하게도 내 것이 아니다. 내가 직접 경험하고 불구덩이 속을 뛰어들고서 빠져나올 때 그때 비로소 내 것이 되는 것이다. 타인으로부터의 지혜는 지혜로 받아들이되 우선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앞서 효율과 효과를 따지지 않는 무조건적인 인풋이 필요하다.


무식하고 더 멀리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시행착오라는 가장 훌륭한 선생님의 가르침이 가장 빠르다. 초심자에게 있어서 시행착오는 어차피 초심자 수준에서 벌어지기에 인생에서 가장 값비싼 보물인 시간을 투자해도 그 이상의 수확을 얻을 수 있음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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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슈팅은 어느 날 무회전 슈팅이 너무 차고 싶은 마음에 온 힘을 다해 연습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아 속상했던 모습이 담겨있다.


이것만 차고 집에 가자라며 온몸에 힘을 빼고서 찬 슈팅이다. 온몸에 힘을 뺀 슈팅은 디딤발의 위치가 꽤나 안정적이었다. 온몸에 힘을 뺏기에 필요치 않은 순간에 힘을 뺄 수 있었고 발등을 피고 발목을 고정시켜야 하는 임팩트 필요한 찰나의 순간이 맞아떨어졌다.


발등과 복숭아뼈 부근에서 전해져 오는 슈팅 순간의 임팩트가 굉장히 부드러우면서도 편안했고 묵직했다. 이때 처음으로 조금만 더 하면 골대 안으로 들어가는 무회전 슈팅을 해낼 수 있겠다는 믿음과 확신이 생겼고 수백 번 연습 끝에 해낼 수 있게 되었다. 무회전 연속 10번 성공시키기에 필요한 무회전 감각 익히기에 성공했으니, 언젠간 무회전 연속 10번 성공시키기 목표도 해낼 수 있겠다.


그리고 내 일을 시작할 때에 지금의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깨달음들이 힘들고 괴로울 때 큰 힘이 되어주는 또 하나의 기록이자 과거의 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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