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하는 원동력
자기 계발 글귀나 영상에 자주 등장하는 환경이 의지를 이긴다는 말을 과거에는 믿지 않았다. 마을버스에서 평생 보는 풍경은 마을 밖을 벗어나지 못하므로 그것이 전부라 믿고 살아간다. 마을 밖을 벗어나 도심으로 발 딛는 순간 같은 세상에 살았지만 다른 세월을 보낸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환경은 의지를 이긴다는 말을 믿은 지 오래되었다. 믿음이 아니라 당연한 사실이었다. 나라는 인간은 대체 어떻게 생겨먹었을까를 20대 후반에 많이 고민해보게 되었는데, 아무리 좋은 것일지라도 직접 행동에 의해 스스로가 변화되어야 그때 비로소 깨닫는 인간이었다. 그래서일까, 환경이 의지를 이긴다는 말을 이해하고 깨닫게 되는 순간까지 꽤 오래 걸렸다. 믿음이 당연한 사실로 바뀌는 순간은 비로소 내 삶에 적용되는 순간이고 의식적 행위가 아닌 무의식적인 습관으로 자리 잡힌 순간이다.
19년도에 시작한 금연은 현재까지 변함없고 주 6일 아침 공복 3분할 웨이트는 약 3개월간 습관으로 자리 잡히면서 무의식의 영역에 들어서게 되었다. 디로딩과 중요한 아침 일정을 제외한 모든 기간에 스스로에게 약속한 루틴을 지켰다. 습관이 되어버린 지금은 운동을 스스로의 약속이라 표현하지 않고 일상이라 표현한다.
습관 형성이 가능했던 이유를 돌이켜보면 의지가 아닌 환경을 송두리째 변화시킨 것에 있었다. 사람마다 내적 동기가 시작되는 순간은 다르다. 어떠한 행위를 끊고 싶거나 지속하고 싶을 땐 의지를 믿기보단 어떠한 것을 보고 듣고 느낄 때 행동에 변화가 생겼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고, 시간이 좀 걸릴지라도 많은 경험과 실패를 통해 찾아내어 변화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게 되면 자연스레 의지는 따라왔었다. 의지박약이라는 말은 특정한 행동을 하기에 와닿지 않은 마음 상태이기 때문에 행동으로 옮기는 것에 남들보다 2배 3배의 에너지가 소모되는 것일 뿐이다. 못나서, 의지가 부족해서, 열정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세상에 게으른 사람은 정말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게으름을 바라보는 관점이 목표를 이루는 과정과 결과물이라면 아직 좋아하는 것을 찾지 못했을 수도 있다. 혹은 주변 환경이 목표를 이루는 과정과 결과물에 적합하지 않은 형태로 되어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타인은 무엇을 하나 곁눈질하여 느낀 것도 아니며 막연히 그럴 것이라는 추측도 아니다. 금연과 운동을 지속하게 된 지나온 삶을 통해 알게 되었다.
무작정 노력하고 나태함에 빠지지 말라는 말보단 삶 주변의 환경을 목표를 이루기에 최적화된 환경으로 새롭게 바꿔보라는 말이 더 와닿는 요즘이다. 의지 금연은 1주일 1달을 못 이겼지만 끝내 주변의 모든 환경을 바꿈으로써 지속할 수 있었다. 운동도 단순히 열심히 해야지라는 의지와 다짐만으론 지속하기 힘들었다. 내가 어떠한 상황일 때 가장 몰입된 상태이고 목표지향적인 상태가 되는지를 삶에서 끊임없이 체크했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공간에 내적 동기가 시작될 수 있는 나만의 물리적인 환경과 루틴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습관화 가능했다.
특히 삶의 디폴트가 되어야 하는 독서와 운동은 의식적으로 지속하기엔 너무 힘들고 인간의 본성과 싸워야 하는 행위를 반복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환경 설계가 중요하다. 의지를 믿지 말고 새해 다짐 그만하고 당장은 멀리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환경이 의지를 이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단 걸 시행착오 투성이의 지난 20대를 돌이켜보며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