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 메달과 기념품들을 바라볼 때면 뿌듯함이나 성취감 보단 어떻게 완주했을까라는 감정 외엔 어떠한 감정도 들지 않았어요. '춘천 절경을 벗 삼아 레이스를 즐기며...'와 같이 레이스 완주에 필요치 않은 감정들은 하프 마라톤 이상의 대회부터는 전혀 느끼지 못했어요.
수십 km가 남았지만 몇 시간째 달려온 거리가 아까워 멈추고 싶어도 멈추지 못하는 상황. 느릴지언정 마지막까지 걷지 않겠다는 자신과의 싸움을 마주하다 보면 화남, 슬픔, 우울, 절망과 같은 감정은 생각조차 나지 않고 목표 지점까지 어떻게든 버티기 위해 필요한 감정들로만 가득 찼어요.
마라톤의 가치는 일상을 살아가는 순간에 찾아오는 희로애락 속에서 꿈과 목표의 본질에 필요한 감정들만 컨트롤할 수 있는 성숙함을 쌓아갈 수 있음이 아닐까 싶어요. 완주 메달이 쌓여갈수록 첫 번째 메달을 얻었을 때보다 내적으로 좀 더 단단해지고 나의 기질에 어울리는 좋은 태도를 찾고자 노력하는 것 같아요.
마라톤의 계절, 이번 가을에 펼쳐질 또 다른 대회들 그리고 내년 봄 레이스를 준비하며 진행할 겨울 LSD 연습을 통해 일정한 감정선과 평정심을 유지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쌓아가길 기대하는 요즘이에요. 모두들 건강히 다치지 않고 오래오래 운동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