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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모술수, 나를 지키는 칼이어야 한다

by 이지원

[김충남의 힐링고전] 채근담 강의 권모술수, 나를 지키는 칼이어야 한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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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바른 도리 즉 정도(正道)를 따라서 살아야 한다. 그러나 때로는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대처해야 하는 임기응변이 필요할 때가 있다. 유학에서는 이것을 권도(權道)라고 한다.


권(權)은 저울을 말한다. 물건의 무게에 따라 변하는 저울처럼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의롭게 대처하는 것을 권도라고 한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나 방법이 비록 정도를 벗어났더라도 결과 즉 목적을 이룸에 있어서는 정도이어야 하는 것이 권도다.


제나라의 웅변가인 순우곤과 맹자의 대화다. 순우곤이 맹자에게 물었다.


“남녀 간에 물건을 주고받을 때는 손으로써 주고받지 않는 게 예의입니까?” 맹자가 답했다. “그것이 예의지요” 다시 순우곤이 물었다. “그렇다면 자기 형수가 물에 빠졌을 때도 손을 내밀어 꺼내주어서는 안 되겠군요?” 맹자가 답했다. “아니오! 형수가 물에 빠졌는데도 꺼내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짐승이나 다를 바가 없다오. 남녀 간에 물건을 손으로 주고받지 않는 것은 예의지만, 형수가 물에 빠졌을 때 손을 잡고 꺼내주는 것은 임기응변, 즉 권도인 것이오”


다시 풀이해 보면, 형수의 손을 잡는 것은 형수의 목숨을 구하려는 목적이었기에 비록 권도를 부렸지만 결과적으로 의로움을 지킨 것이다. 그러나 만약 형수의 손을 잡기 위한 목적이었다면 이는 권도를 빌어 불의(不義)를 저지른 것이 되는 것이다.


권모술수도 이와 같다 하겠다. 경쟁자를 물리치기 위해 정적(政敵)을 제거하기 위해 음모 ․ 중상모략의 권모술수를 썼다면 이때의 권모술수는 의롭지 못함이 된다. 그러나 경쟁자가 되었든 정적이 되었든 정정당당하게 선의의 경쟁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권모술수를 썼다면 이때의 권모술수는 정당한 자기 능력인 것이다.


인류사는 善의 연대기냐 惡의 연대기냐 할 때 오히려 악의 연대기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정도로 세상은 선하지 못하다. 선하지 못한 사람들과 선하지 못한 일에 둘러싸여 있는 나 자신을 지키고 방어하기 위해서는 권모술수의 칼을 갈아둘 필요가 있다. 상대의 음모와 중상모략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음모와 중상모략의 술수를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당하지 않게 된다.


범죄수법도 알아두어야 하는 것은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범죄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채근담에서는 권모술수를 알지 못하는 것보다 쓰지 않더라도 알고 있는 것이 한 수 위라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 권모술수, 남을 해치는 칼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칼이어야 한다.


직접 눈으로 본 일도 오히려 참인지 아닌지 염려스러운데 더구나 등뒤에서 남이 말하는 것이야 어찌 이것을 깊이 믿을 수 있으랴, 30대는 보다 지혜롭고 성숙한 사람이 되어 해치는 칼은 물론이요 나를 지키는 칼조차 휘두를 필요성을 못 느끼는 환경 속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고자 나를 더욱 갈고닦으며 늘 반성하며 살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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