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1월 23살 추운 겨울, 군 전역 이후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게임기획과 졸업을 위한 복학과 게임 QA 신입 취업이라는 선택지 속에서 게임 QA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첫 이력서 제목을 왜 저렇게 작성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 잘 듣고 시키는 거 다 할 테니 제발 뽑아주세요'의 당시 회사 생활에 어울리는 신입의 태도에 어울리는 간절함이 어렴풋이 느껴져 지금 보니 좀 기특하다.
양재역 3번 출구로 들어가 교대역에서의 환승 그리고 목적지였던 구로디지털단지역까지의 출퇴근 순간들. 출근이 왜 이렇게 힘들고 퇴근길은 왜 이렇게 고될까라는 생각보단 나를 필요로 하는 조직이 있다는 것에 온 신경이 감사했던 시절들. 게임 QA 신입 채용 면접 당시 마지막으로 더 할 얘기가 없냐는 말씀에 울먹이며 뽑아만 주신다면 열심히 하겠다고 얘기했던 순간들. 당시 내가 경험했던 경제 활동이라곤 고깃집 홀서빙 직원과 야간 이자카야 홀서빙 직원의 경험이 전부였기에 더욱 소중했었다.
월급은 고깃집 직원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손님들이 먹고 남긴 고기를 몰래 주워 먹으며 혹여나 사장님이 볼까 노심초사한 마음으로 시작된 같잖은 희열감 따위를 느끼지 않아도 인간이 음식 섭취로 얻을 수 있는 행복한 감정과 호르몬을 만들어낼 만큼의 복지가 있었기에 너무 행복했다. 고기는 1달에 한번 진행하는 팀회식에서 마음껏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팀 회식을 진행하기 위해선 전체 수십 명의 QA 팀원 모두가 지각하는 일이 단 한 번이라도 없어야 했다. 야근과 주출이 일상이었던 근무 환경 속에 익숙해지다 보니 1분 늦은 걸로 팀 회식을 진행하지 않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냐는 생각보단 야근과 주출은 당연히 직장인이라면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고 출근에 있어서는 1분이라도 늦는 것은 결코 허용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냥 그렇게 사는 줄 알았고 그게 회사 생활인줄 알았다. 연고 없는 타 지역에 홀로 올라와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한 내가 뭘 알겠나.
당시만 하더라도 근무 형태에 있어서 재택근무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몸담았던 회사뿐 아니라 대부분 10시 출근 7시 퇴근이 일반적이었던 시기였다. 3호선에서 2호선으로 환승하는 과정이 힘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떠오르지만 첫 회사생활을 시작했던 시기에 파견직이었던 나로선 정규직 전환에 영향을 끼치는 근태 관리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했기에 당시에는 힘들다는 생각보단 빨리 정규직 전환이 되고 싶은 마음이 컸었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출퇴근 따위의 힘듦은 아무것도 아닌 일로 만들어버릴 만큼 당시 삶에서 가장 중요했다. 당시 내 꿈은 지금과는 형태도 크기도 아주 많이 달랐다. 불안정한 파견직이 아닌 정규직으로 전환되어 게임 QA 직무를 걱정 없이 계속해나갈 수 있는 게 내 꿈이었고 1년 뒤 꿈은 이뤄졌다.
이후 자기 계발을 통한 역량 강화를 이어갔고 아웃소싱에서 게임 개발사 QA로 커리어를 쌓아갔다. 그리고 2019년 12월 31일을 끝으로 게임 분야에서의 마지막 출퇴근을 끝으로 2020년 1월 1일부터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아도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당시 나로선 너무나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줄곧 윈도우 데스크톱 PC로 업무를 진행해 오다 사용할 줄도 모르는 맥북 프로를 지급받고서 자취방과 카페에서의 근무라니, 당시엔 몰랐지만 시간의 가치가 재정립되는 순간이었다.
재택근무 첫날 자취방 근처 조용한 카페로 갔다. 여유롭게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화장실도 좀 다녀오고. 사람들 속에 파묻혀 좋지 않은 기분으로 아침을 시작했던 풍경과는 전혀 달랐다. 모든 게 여유로웠고 편안했다.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자 그동안 출퇴근 시간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쏟았을까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4년간 출퇴근 자체에 소요된 시간을 계산하여 인생에서 낭비된 시간으로 분류했다. 참으로 간사하기도 하지, 나를 필요로 하는 조직이 있음에 감사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1달 20일 근무 기준으로 하루 3시간을 소요했다고 가정하면 4년간 2880시간을 낙타처럼 돌아다녔다는 생각에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그동안 날린 시간을 보상받고 싶어졌다. 어떻게 하면 될까, 24시간을 바꿀 순 없었다. 주어진 시간의 밀도를 달리해야 했다.
그렇게 1095일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다시 출퇴근에 하루 3시간 남짓 시간을 쏟고 있다. 처음에는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출퇴근에 대한 개념이 1095일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몸과 머릿속에서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매일 아침 힘겹게 버스와 숨이 꽉 막히는 환승 구간을 지나 목적지로 향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큰 스트레스였고 하루의 시작을 망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몸의 적응 기간이 끝나고 나서부턴 출퇴근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니 마음가짐을 바꾸고자 노력했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에 집중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시간 낭비는 없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흘러 재택근무를 했을 당시보다 무언갈 할 때에 더욱더 집중해서 하고자 하는 일종의 무의식적인 습관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내 의지를 믿지 않는 편이고 환경을 바꾸지 않으면 작심삼일로 끝나버리기 때문에 무언갈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환경 자체를 바꿔야 한다. 환경을 바꾸고 나를 바꿔서 나와 같은 목표와 꿈을 지닌 사람들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을 내가 살아가는 방식으로 정의했다. 환경을 바꾼다는 건 마음가짐과 태도를 지금껏 다른 방향으로 만드는 불편하지만 나를 한층 더 단단하게 만드는 지혜와도 같았다.
이런 면에서 지나온 1095일에 가까운 재택근무의 경험과 다시금 출퇴근에 하루 3시간 남짓 쏟고 있는 환경은 효율과 마인드셋을 갖추는 것에 큰 도움이 되었다. 마음가짐을 조금만 달리한다면 하루 3시간을 출퇴근에 쏟고 있기 때문에 그 외적인 시간에서는 밀도 높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마음가짐에 대한 환경이 자연스레 갖춰졌다. 출퇴근만 경험했더라면 그저 힘들다는 생각만을 했겠지만 재택근무의 장점을 확실히 느낀 나로선 출퇴근을 통해 재택근무보다 더욱더 시간과 행동에 대한 간절함이 생기기 시작했다. 재택근무경험으로 인해 시간의 가치와 소중함을 몸소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정도의 간절함이라면 앞으로 10년 30대가 끝나기 전 시작할 One Thing의 과정을 만드는 것에 있어서 편안하고 안락한 재택근무의 환경보다 더욱더 강한 내적 동기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얼마 전 처음으로 PT 42회라는 비용을 지불하기도 했었다. 업무가 끝난 뒤 개발 학습과 운동을 병행해야 하는 상황은 재택근무와 출퇴근 모두 같지만 목적과 목표를 이루기에 최적화된 환경을 생각해 본다면 시간을 대하는 태도와 뇌가 생각하는 방향은 3시간의 시간 낭비가 이뤄지는 출퇴근에서 더욱 높은 효율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뇌가 생각하는 방향과 일치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선 편안함과 안락함 보단 어딘가 불편한 환경 속에서 더욱 잘 만들어지는 것 같다. 삶에서 이루고자 하는 단 1가지가 나의 성향에 어울리는 것이란 걸 깨닫게 되었다면 의도적으로 나를 좀 더 불편한 상황으로 내몰아보는 건 어떨까? 죽지 않을 정도의 간절함이 피어나는 환경은 한 사람의 인생을 그 사람이 생각하는 대로 바꾸기에 충분한 환경이자 지속 가능한 내적 동기 부여가 되어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