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가 끝나가니 30대에는 어떠한 것들을 해볼까 보단 어떠한 것들을 하지 말아야 할까를 더 고민하게 된다. 28살에서 29살로 넘어가는 시점에는 어떠한 것들을 더 해볼까라는 관점으로 삶을 바라봤다면 29살에서 30살로 넘어가는 시점은 채움보단 비워야 할 시기가 찾아왔다는 것을 스스로 많이 느꼈다. 연고 없는 타지에서 지나온 20대를 돌이켜보며 10년 가까이 일관성 있게 변하지 않는 기질은 무엇인지, 그렇다면 변하지 않는 기질과 어울리는 좋은 태도는 무엇인지 리스트업 해보며 많은 생각에 잠겼고, 자연스레 버려야 할 태도와 나의 기질과 어울리지 않는 모습들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능력, 역량, 성과와 같은 의미가 지닌 가치보단 삶의 지혜를 통해 얻을 수 있고 때로는 피할 수 있는 가치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고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사람을 얻는 지혜'를 접하게 되었다.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같은 느낌의 수필보단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과 같은 고전 철학이 현시대를 살아가는 지혜에 있어서 보다 필요한 가치가 담겨 있다고 느꼈다. 염세적이지 않으면서도 지나친 희망이 담긴 긍정도 없는, 더불어 꾸미지 않고 포장되지 않는 실용 그 자체의 지혜들은 오히려 고전 철학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삶의 지혜가 필요할 때 희망찬 에세이가 아닌 고전 철학을 찾게 되는 이유도 현실은 정말 냉정하고 살아가는 세상과 바라보는 세상은 음악과 글귀와 희망찬 목소리에 심취해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를 아주 잠깐 기분 좋게 해주는 일시적인 메시지 보단, 살아가면서 생기는 다양한 얽힘과 설킴에는 보다 차갑고 냉철한 메시지가 필요했다.
지혜롭지 못해 생겨난 모든 결과의 책임은 타인과 환경에 더 큰 영향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사람을 얻는 지혜'를 접하게 된 이후, 지혜롭지 못해 생겨난 모든 결과의 책임은 지혜롭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 결과이기 때문에 과거 지혜롭지 못했던 스스로에게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경험과 능력의 부재에서 다가오는 위험 요소는 때로는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놓인 경우도 많기에 회고와 반성적 사고를 통해 같은 상황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노력하면 된다. 하지만 삶의 지혜에서 비롯된 결과는 현재의 내가 보다 지혜로운 생각과 태도를 지니고 있다면 위험 요소 자체를 피할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스스로 통제 가능한 영역임을 배웠다.
인상 깊었던 구절을 끝으로 나의 20대는 어땠는지 스스로 돌이켜보고 새로운 시작과 다가올 30대를 준비해본다.
완성되지 않은 것을 공개하지 마라
어떤 것이든 처음에는 제 모습을 갖추지 못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미완의 모습을 본 사람의 뇌리에는 그 인상이 남게 되고, 완성된 모습을 보아도 기억이 되살아나 감상을 방해한다. 완성되지 않은 전체를 한번 흘깃 보는 것은 호기심을 자극하기보다는 오히려 부족한 점만 강렬하게 각인시키는 작용을 한다. 어떠한 것이든 완성되지 않으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그것을 요리하는 과정을 본다면
식욕이 반감되거나 오히려 불쾌감이 생길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거장들은 모두 시작 단계에 있는 작품을 좀처럼 남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자연에서도 이러한 교훈을 배울 수 있다. 자연은 때가 될 때까지는 절대로 자신을 세상에 내놓지 않는다.
쉽게 반박하지 마라
당신의 의견이나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쉽게 반박하지 마라. 그가 반대하는 이유가 교활함 때문인지 혹은 어리석음 때문인지를 먼저 간파하라. 상대가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고집불통일 수도 있지만 당신의 의중을 떠보기 위해서 일부로 반대 의견을 내놓는 것일 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웃어버리면 그만이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숨은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 건전한 논쟁이 목적이 아니라 당신의 속마음을 알아내려는 속셈을 가진 사람을 대할 때에는 경계심이라는 마음의 빗장을 단단히 꽂아두는 것이 지혜롭다.
혀를 잘 다스려라
혀는 야수와 같다. 일단 고삐가 풀리면 좀처럼 재갈을 물릴 수 없다. 혀는 정신의 맥박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상대의 말을 통해 정신의 건강 상태를 파악하고 마음을 읽어낸다. 안타까운 것은 혀를 가장 조심해야 할 사람이 마구 혀를 놀린다는 것이다. 반면 지혜로운 사람은 항상 말을 조심함으로써 근심 걱정에 빠지지 않고, 난처한 상황을 피하고, 자제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윗사람의 비밀은 듣지도 말하지도 마라
윗사람의 비밀을 알려고 하지 마라. 그가 당신에게 비밀을 고백했다고 해서 당신이 그의 심복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윗사람의 비밀을 듣는 것은 특권이 아니라 마음의 짐일 뿐이다. 인간은 자신이 추한 모습을 상기시켜주는 거울을 언젠가는 깨버린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참모습을 본 사람을 멀리하고, 단점을 아는 사람을 부담스러워한다. 특히 윗사람은 아랫사람이 자신의 약점을 잡고 있는 것을 도저히 용납하지 못한다. 그는 잃어버린 자유를 회복하기 위해 자신의 이성까지도 과감하게 버릴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한때 권력자의 심복이었다가 한순간에 파멸당한 사람이 부지기수에 이른다. 따라서 윗사람의 비밀은 듣지도, 말하지도 않는 것이 현명하다.
단호함이야말로 승자들의 특징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어떤 일을 성급하게 처리해서 생긴 피해보다는 단호하게 결정하지 못해서 생긴 피해가 더욱 크다. 전쟁에서는 움직일 때 보다 가만히 있을 때 더 큰 피해를 입는 법이다. 스스로 결단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등을 떠밀어주기만을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일을 처리하는 방법을 알면서도 결단력이 없어서 행동에 옮기지 않는다. 반대로 민첩하게 행동함으로써 절대로 곤란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뛰어난 판단력과 단호한 결단력에 힘입어 손쉽게 성공을 거머쥔다. 이들은 말과 동시에 행동으로 옮기기 때문에 항상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고, 자신감으로 충만하다.
적당한 침묵으로 신비감을 유지하라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이해하는 것은 대단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익숙한 것보다 이국적인 것이 더 비싸고, 잘 알지 못하는 것이 과대평가된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당신에 대해 신비감을 느낄 때 당신을 더 높이 평가한다. 따라서 좋은 평판을 얻으려면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자세히 설명하지 마라. 당신이 하는 말의 의미를 알아듣되 당신을 비판할 기회를 주지 않을 정도가 적절하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왜 칭찬하는지 이유도 모르면서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나 신비로운 것을 숭배한다.
상대의 욕망을 자극하라
원하는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손쉽게 움직일 수 있다. 영리한 사람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징검다리로 다른 사람의 욕구를 이용한다. 이들은 상대로 하여금 원하는 것을 얻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함으로써 그의 욕구를 한층 자극한다. 사람이란 이미 갖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매력을 못 느끼지만, 갖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욕망에 불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채우기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욕망은 더욱 커지는 법이다. 따라서 상대의 욕망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것만으로도 그를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 상대를 움직이는 가장 교묘한 방법은 그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당신에게 의존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속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마라
사람들은 상대가 겉으로 드러내는 감정을 통해 그의 생각을 유추한다. 따라서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것처럼 실질적인 지혜는 없다. 자신의 패를 보여주고 카드 게임을 하는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가진 돈을 모두 잃게 된다. 말과 행동을 아껴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물리쳐야 한다. 사람들이 집요하게 당신의 생각을 알아보려고 할 때에는 먹물을 내뿜은 오징어처럼 당신의 생각을 감추어라. 당신이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하고 예측하지 못하게 하라. 당신의 성향을 파악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깔아뭉개거나 아첨하는 식으로 악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함과 무능함을 구분하라
부당한 상황에서도 화를 낼 줄 모르면 무능한 사람이 되고 만다. 이들이 화를 내지 않는 이유는 선하기 때문이 아니라 어리석기 때문이다. 새들도 허수아비가 움직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를 조롱하고 곡식을 쪼아 먹는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지혜로운 사람은 모든 관계에서 쓴맛과 단맛을 잘 배합한다. 단맛만 있으면 어린 아이나 어리석은 사람들의 군것질감 밖에 되지 않는다.
조언을 구하고 부족함을 채워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또한 무지한 사람일수록 자신이 남보다 뛰어나다는 착각 속에서 산다.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어떤 방법으로도 그것을 일깨워줄 수 없다. 무지한 사람은 자기에게 부족한 것을 찾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혜가 뛰어난 사람은 극히 드물다.
하지만 이들도 대부분 할 일 없이 지내고 있다. 어느 누구도 이들에게 지혜를 가르쳐달라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구한다고 해서 자신의 뛰어남이 가려지는 것도 아니고 능력을 의심받지도 않는다. 오히려 조언을 구함으로써 자신에게 없는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더 지혜로운 사람을 찾아서 조언을 구하고 부족함을 채워가야 한다.
지나친 기대감은 발목을 잡는 짐이 된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다른 사람들의 기대를 지나치게 자극하지 마라. 머릿속으로는 손쉽게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아도 막상 일을 진행하다 보면 예기치 못한 상황에 부딪힐 때가 있다. 현실과 상상의 세계는 엄연히 다르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는 쉬워도 그것을 실현하기는 어렵고, 상상에 욕망이 더해져 지나친 기대를 갖게 되면 실망도 그만큼 더 커지는 법이다. 우리는 종종 스스로의 지나친 기대에 기만당하고 실망한다. 희망만큼 현실을 왜곡시키는 것도 없다. 따라서 안전하게 성공에 이르기 위해서는 냉철한 이성으로 희망을 다스려야 한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지나친 기대가 아니라 적당한 호기심을 끌어내는 것이야말로 멋진 일이다.
또한 사람들의 기대를 넘어서는 성과를 실현하면 그 기쁨과 영광은 두 배가 된다.
영원히 사랑하지도 영원히 미워하지도 마라
오늘의 친구가 내일 가장 무서운 적이 될 수 있다. 인생을 사는 동안 이런 일은 다반사로 일어난다. 우정을 저버린 친구에게 경솔하게 약점을 잡혀 그가 나중에 손쉽게 싸움을 걸어오는 일이 없도록 하라. 또한 적에게는 늘 화해의 문을 열어 두어라. 가장 안전하고 평활운 관용의 문을, 흔히 복수의 기쁨은 큰 고통으로 변하고, 상대에게 해를 입혀서 누린 만족감은 슬픔으로 변하곤 한다.
날마다 자신을 갈고닦아라
어느 누구도 태어날 때부터 완벽하지는 않다. 따라서 인격을 향상하고 뛰어난 성과를 발휘하기 위해서 날마다 자신을 갈고닦아야 한다. 어리석은 사람이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을 때, 지혜로운 사람은 고상한 취향, 순수한 지성, 확고한 의지, 성숙한 판단력을 갖추기 위해서 매일 자신을 단련한다. 그 결과 어리석은 사람은 마지막 순간까지 가장 중요한 것이 결핍된 채 살아가고, 지혜로운 사람은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 완벽함에 도달한다. 매일 자신을 갈고닦아 완벽함에 이른 사람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지혜롭고 신중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자연스럽게 그들과 어울리게 된다.
칭찬을 구걸하지 마라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을 마치 자신이 한 것처럼 떠벌리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부끄러움 없이 사람들을 속이려고 하지만 오히려 비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이러한 허풍선이들은 카멜레온처럼 수시로 자신의 모습을 바꾸면서 사람들을 기만한다. 한편 음식 부스러기를 찾아다니는 개미처럼 다른 사람이 이룬 성과의 부스러기를 주우러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 역시 다른 사람의 명예를 가로채려고 하다가 오히려 조롱의 대상이 될 뿐이다. 큰 성과를 이루었다면 굳이 그것을 뽐내지도 말고, 허풍을 떨지도 마라. 성과를 얻었다는 사실에만 만족하고 공적에 대한 칭찬은 다른 사람들에게 맡겨라. 사람들이 영원히 칭찬하게 만들려고 자신에 대해 찬양의 글을 쓰게 하지 마라. 영웅처럼 보이기보다는 영웅이 되기 위해 노력하라.
쓸데없는 일을 떠맡지 마라
우리가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시간이다. 시간이 없으면 부도, 건강도, 사람도, 심지어 삶도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계적인 일이나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소중한 시간을 낭비한다. 특히 쓸데없는 일을 떠맡는 것만큼 어리석은 행동은 없다. 헛된 공명심 때문에 혹은 단순히 거절하지 못해서 여러 가지 일을 떠맡는 사람은 결국 다른 사람들의 시기를 받고, 삶을 황폐하게 만들고, 자신의 영혼을 질식시킨다.
거절에 시간이 필요한 이유
다른 사람의 부탁을 받았을 때 즉시 승낙하지 말고 신중히 생각한 뒤 승낙하라. 오래 기다린 뒤에 얻은 것이 더욱 값진 법이다. 마찬가지로 요구를 거절할 때에도, 상대가 거절의 말에 상처 입지 않도록 적당한 시간이 지난 후에 정중하게 거절하라. 대부분의 사람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 거절하는 것은 손쉽게 받아들인다. 그동안 처음에 가졌던 기대감이 상당 부분 사그라지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거절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상대방이 급하게 재촉하더라도 가능하면 답변을 미루어라. 상대방이 그 문제에 매달리지 않고, 다른 데로 관심을 돌릴 시간을 주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