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방법
한국에서 장을 보는 건 대부분의 가정이 그렇듯 늘 내 몫이었다.
남편이 무척 바쁘기도 했고, 인터넷 쇼핑이 워낙 잘 되어 있어서 배달시키는 일이다 보니 큰 불편이 없었기에 자연스레 내가 늘 처리했다.
프랑스에 와서는 처음엔 그래도 나보다 불어가 조금 더 나으니까 남편이 봐오기 시작했고, 조금 지난 뒤에는 내가 주로 장을 봤었는데,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로는 나와 아이들을 보호해주겠다는 남편의 자원으로 자연스럽게 남편의 담당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사실 처음으로 장을 보기 시작한, 그것도 불어로 보기 시작한 남편은 많은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필요 없는 걸 사 오기도 하고, 사 오고 보니 계란이 깨져있다거나 빵이 다 눌려 있다거나 등등의 어려움의 시간을 겪기도 했지만 분명한 사실은 지금은 나보다 훨씬 잘 본다는 것. 심지어 동선까지 계산해서 빠른 속도로 봐 오질 않나, 잼이나 식용유 등 떨어져 가는 것들을 부탁하지 않았음에도 알아서 챙긴다거나... 적립금에 쿠폰까지 착착 사용할 정도로 정말 놀라울 만큼 장보기의 달인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딱 한 가지 불만 아닌 불만이 있다면 그것은 아이들을 향한 후한 인심에 그만 매주 이만큼만 쓰겠다고 정해놓은 예산을 조금씩 넘긴다는 것.
지난주 토요일 아침 일찍 남편에게 김밥 싸려는데 소시지가 없다고 사다 달라고 부탁하고 보냈다.
정말 나는 소시지만을 사 올 줄 알았다.
그러나 남편의 장바구니에는 소시지 말고도 뭔가가 잔뜩 들어 있었다.
막 잠에서 깨서 나온 딸아이가 엄마 아빠 이불 위를 굴러다니고 있었는데 남편은 장바구니를 들고 들어오다 신이 나서 말한다.
"딸, 아빠가 우리 딸이 어젯밤에 먹고 싶다고 한 자두랑 살구 사 왔다."
"우와!!!!!"
딸이 아침부터 신나서 미소를 짓는다.
금세 아들도 깨서 나오니 아빠는 더욱 신이 나서 말한다.
"아들, 아빠가 우리 아들이 영화 볼 때 팝콘 먹고 싶다고 해서 팝콘도 사 왔어."
"우와!!!"
아들도 덩달아 신이 났다.
그러나 나는 마냥 웃을 수가 없었다.
"아니 소시지만 샀으면 예산이 딱 맞는 건데 ㅠ 아빠의 인심 덕분에 이렇게 또 초과하는가....."
잠시 투덜대는 엄마를 가만히 쳐다보던 딸이 조용조용 가만가만 엄마를 향해 말한다.
"엄마... 나는 아빠가 이렇게 한 게 잘한 것 같은데?"
그 말을 듣는데 띵~ 하고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다. 그렇다. 이 아침, 아이들은 최고로 행복함을 느끼고 있다.
꼭 사줘야 해 하고 떼를 써서 받아낸 약속도 아니었고, 잠들기 전에 혼잣말처럼 던진 말에 다음날 눈을 뜨니 그 마음이 실현되어 있다.
눈 앞에 마치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처럼. 아니 서프라이즈도 이런 서프라이즈가 없다. 사실 그런 순간들을 마주할 때 얼마나 내가 이 삶에서 환대받고 있는가를 참 많이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예전에 한 친구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어릴 때 오징어를 참 좋아했다고. 그래서 엄마가 별로 넉넉한 집안 살림도 아니었는데 늘 마른오징어를 사서 먹기 좋게 잘라서 통에다 넣어 두시곤 했다고. 그런데 아이를 낳고 주부가 되어 보니 오징어를 내 돈 주고는 안 사게 되더라... 그렇게 비싼 간식을 사느니 애들 좋아하는 거 다른 걸 사 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리고 그래서... 엄마도 나처럼 엄마가 먹고 싶은 거 참고 나한테 그 오징어 간식 사 줬을 텐데... 그러고 보니 엄마가 날 참 사랑했구나 새삼 깨닫는다...라는.
그리고 며칠 뒤에 우리 집 문 손잡이에 그 친구가 오징어 채를 사다가 걸어놓고 간 걸 발견하고는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모른다.
그랬다. 나만 해도 그렇다.
꼭 필요한 게 생겼을 때도 물론 기쁘지만,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있으면 좋겠다 싶었던 오히려 그래서 꼭 가져야겠다고 욕심을 부리기도 미안해서 참아 넘긴 그런 마음을 누가 알아줄 때 더 감동을 받는다. 그리고 아빠는 아이들에게 그런 삶을 자주 선물해 주고 있는 셈이다. 10유로를 더 쓰고 아이들의 행복을 사 온 셈이다.
오늘은 또 마트에 빵을 사러 다녀온다던 남편은 복숭아 아이스티를 세 통이나 사 가지고 돌아왔다. 날이 더워지니, 한국에서 여름이면 먹던 복숭아 아이스티가 먹고 싶다고 지나가는 말처럼 내뱉었던 아들의 말을 잊지 않은 아빠는, 2+1을 하는 복숭아 아이스티를 지나칠 수가 없었다 한다. 이렇게 또 예산을 초과했으니 남편은 내게 미안한 모양이다. 묻기도 전에 이유를 잔뜩 늘어놓는다.
그러나 아이들은 또 한 번 신이 났다.
오늘 아빠는 3유로를 낭비함으로써 두 아이의 한국을 향한 향수를 위로했다.
오늘도 아빠는 돈은 적자지만 마음은 부자가 되는 남는 장사를 했다.
어쩌면 아빠의 작은 장바구니는,
훗날 아이들에게 산타할아버지보다도 더 아름답게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