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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앤느 Oct 22. 2020

아빠의 장바구니

아빠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방법

한국에서 장을 보는 건 대부분의 가정이 그렇듯 늘 내 몫이었다.

남편이 무척 바쁘기도 했고, 인터넷 쇼핑이 워낙 잘 되어 있어서 배달시키는 일이다 보니 큰 불편이 없었기에 자연스레 내가 늘 처리했다.

​프랑스에 와서는 처음엔 그래도 나보다 불어가 조금 더 나으니까  남편이 봐오기 시작했고,  조금 지난 뒤에는 내가 주로 장을 봤었는데,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로는 나와 아이들을 보호해주겠다는 남편의 자원으로 자연스럽게 남편의 담당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사실 처음으로 장을 보기 시작한, 그것도 불어로 보기 시작한 남편은 많은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필요 없는 걸 사 오기도 하고, 사 오고 보니 계란이 깨져있다거나 빵이 다 눌려 있다거나 등등의 어려움의 시간을 겪기도 했지만 분명한 사실은 지금은 나보다 훨씬 잘 본다는 것. 심지어 동선까지 계산해서 빠른 속도로 봐 오질 않나, 잼이나 식용유 등 떨어져 가는 것들을 부탁하지 않았음에도 알아서 챙긴다거나...  적립금에 쿠폰까지 착착 사용할 정도로 정말 놀라울 만큼 장보기의 달인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딱 한 가지 불만 아닌 불만이 있다면 그것은 아이들을 향한 후한 인심에 그만 매주 이만큼만 쓰겠다고 정해놓은 예산을 조금씩 넘긴다는 것.

​지난주 토요일 아침 일찍 남편에게 김밥 싸려는데 소시지가 없다고  사다 달라고 부탁하고 보냈다.

정말 나는 소시지만을 사 올 줄 알았다.


그러나 남편의 장바구니에는 소시지 말고도 뭔가가 잔뜩 들어 있었다.

​막 잠에서 깨서 나온 딸아이가 엄마 아빠 이불 위를 굴러다니고 있었는데 남편은 장바구니를 들고 들어오다 신이 나서 말한다.

"딸, 아빠가 우리 딸이 어젯밤에 먹고 싶다고 한 자두랑 살구 사 왔다."

"우와!!!!!"


딸이 아침부터 신나서 미소를 짓는다.

금세 아들도 깨서 나오니 아빠는 더욱 신이 나서 말한다.

"아들, 아빠가 우리 아들이 영화 볼 때 팝콘 먹고 싶다고 해서 팝콘도 사 왔어."

"우와!!!"


아들도 덩달아 신이 났다.
그러나 나는 마냥 웃을 수가 없었다.


"아니 소시지만 샀으면 예산이 딱 맞는 건데 ㅠ 아빠의 인심 덕분에 이렇게  또 초과하는가....."


잠시 투덜대는 엄마를 가만히 쳐다보던 딸이 조용조용 가만가만 엄마를 향해 말한다.

"엄마... 나는 아빠가 이렇게 한 게 잘한 것 같은데?"

그 말을 듣는데 띵~ 하고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다. 그렇다.  이 아침, 아이들은 최고로 행복함을 느끼고 있다.  

꼭 사줘야 해 하고 떼를 써서 받아낸 약속도 아니었고, 잠들기 전에 혼잣말처럼 던진 말에  다음날 눈을 뜨니 그 마음이 실현되어 있다.

눈 앞에 마치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처럼. 아니 서프라이즈도 이런 서프라이즈가 없다. 사실 그런 순간들을 마주할 때 얼마나 내가 이 삶에서 환대받고 있는가를 참 많이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예전에 한 친구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어릴 때 오징어를 참 좋아했다고. 그래서 엄마가 별로 넉넉한 집안 살림도 아니었는데 늘 마른오징어를 사서 먹기 좋게 잘라서 통에다 넣어 두시곤 했다고. 그런데 아이를 낳고 주부가 되어 보니 오징어를 내 돈 주고는 안 사게 되더라... 그렇게 비싼 간식을 사느니 애들 좋아하는 거 다른 걸 사 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리고 그래서... 엄마도 나처럼 엄마가 먹고 싶은 거 참고 나한테 그 오징어 간식 사 줬을 텐데... 그러고 보니  엄마가 날 참 사랑했구나 새삼 깨닫는다...라는.

그리고 며칠 뒤에 우리 집 문 손잡이에 그 친구가 오징어 채를 사다가 걸어놓고 간 걸 발견하고는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모른다.


그랬다. 나만 해도 그렇다.


꼭 필요한 게 생겼을 때도 물론 기쁘지만,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있으면 좋겠다 싶었던 오히려 그래서 꼭 가져야겠다고 욕심을 부리기도 미안해서 참아 넘긴 그런 마음을 누가 알아줄 때 더 감동을 받는다. 그리고 아빠는 아이들에게 그런 삶을 자주 선물해 주고 있는 셈이다.  10유로를 더 쓰고 아이들의 행복을 사 온 셈이다.


오늘은 또 마트에 빵을 사러 다녀온다던 남편은 복숭아 아이스티를 세 통이나 사 가지고 돌아왔다. 날이 더워지니, 한국에서 여름이면 먹던 복숭아 아이스티가 먹고 싶다고 지나가는 말처럼 내뱉었던 아들의 말을 잊지 않은 아빠는,  2+1을 하는 복숭아 아이스티를 지나칠 수가 없었다 한다. 이렇게 또 예산을 초과했으니  남편은 내게 미안한 모양이다. 묻기도 전에 이유를 잔뜩 늘어놓는다.


그러나 아이들은 또 한 번 신이 났다.  

오늘 아빠는 3유로를 낭비함으로써 두 아이의 한국을 향한 향수를 위로했다.



오늘도 아빠는 돈은 적자지만 마음은 부자가 되는 남는 장사를 했다.


어쩌면 아빠의 작은 장바구니는,
훗날 아이들에게 산타할아버지보다도 더 아름답게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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