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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앤느 Aug 22. 2022

실패가 안겨주는 것

2022년을 시작할 무렵 나는 한 가지 작은 결단을 했다. 그것은 마흔에 가까운 나이에, 프랑스에서 다시 대학 공부를 시작하겠노라 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교육학을 전공했기에, 석사를 프랑스에서 이어 간다고 하면 마땅히 교육학을 공부해야 했다.


그러나 정작 나는 심리학에 부쩍 관심이 생겨 있었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또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면서... 무엇보다도 두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내 속에서 일렁이는 많은 감정들과 생각들을 마주하고 관찰하면서 나는 인간에 대해서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졌다.


한 인간이 나고 자라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그것이 결핍되었을 때 생기는 문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혹여라도 결핍된 채로 자랐다면 어떤 노력으로 그것이 회복될 수 있을는지... 그런 것들을 공부하고 싶었다.


그런 지식들 속에 나를 두어, 나 자신에 대해서, 내 상처들에 대해서 더 깊이 들여다보고 치유하고 싶었다. 그리고 조금 더 깊어진 뒤에, 나처럼 아픈 사람들, 눈물을 삼키고 아무렇지 않은 듯이 웃어 보이며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싶었다.


어쩌면 내가 그토록이나 굴곡 많은 세월을 살아온 건 다 이를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어쩌면 이게 내 사명은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여기까지가 내 작은 꿈이었다면, 그 작은 꿈이 실현되는 것을 가로막는 큰 장애물들이 있었는데, 먼저 석사가 아닌 학사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과(그전에 심리학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엄청난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는 것과(프랑스에서 심리학이 꽤나 인기 학문이기에...) 그리고 엄청난 수준의 프랑스어 실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프랑스의 심리학은 철학과 아우러져 있기에...).


거기다 빡빡하고 탈락자가 많은 프랑스 대학 공부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지금 하고 있는 일자리를 내려놓는 결단도 필요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감수하기로 결정했고, 결국 학사 편입으로 심리학에 지원하기로 하고 프랑스어 자격시험을 준비했다.

 

쓰고 보니 한 문장의 결론이지만, 이 결단을 하기까지 참 많이 갈등했고, 고민했다. 늦은 나이에, 한국어로도 아닌 프랑스어로 다시 대학생활을 시작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결단은 아니었다. 주변에서 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학사는 힘들다며 손사래를 쳤고, 어떻게든 석사로 들어가는 게 나을 거라고 조언을 했더랬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학위가 필요해서 공부를 하려는 게 아니라 정말 배우고 싶고 알고 싶은 마음이었기에, 또한 사명을 따라 살아보기로 하고 한 결정이었으니, 이왕 마음먹은 거 한 번 끝까지 가보자 스스로를 추스르며 지난 8개월의 시간을 지나왔다.


일하는 틈틈이 수험생처럼 프랑스어를 끼고 살았고, 어학 시험을 치르고, 입학원서와 동기서를 작성하고 보내고... 그렇게 여느 수험생들 못지않게 바쁘게 지나왔다.


그러나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세 군대의 대학에 지원했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대학으로부터 떨어졌다는 통보를 받고 말았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슬픔이 몰려왔다.


거절받았다는 그 느낌이 힘들었다.

이렇게 많이 노력했는데, 정말 진심으로 공부하고 싶었는데... 그런 내 진심을 몰라준다는 생각에 슬펐다.


슬픔에 이어 수치심이 몰려왔다.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대학부터 시작하겠노라 계획을 밝혀두었는데, 이거 떨어졌다는 걸 어떻게 말할까... 부끄러워서 어쩌나... 걱정이 몰려왔다.


그러고 나니 후회까지 따라붙는다. 왜 괜히 공부를 하겠다고 했을까... 일도 그만둔다고 다 말해뒀는데... 이럴 줄 알았음 일이나 할 걸...   



생각해 보니 내 인생에서 아무 대안 없이 이렇게 다 떨어진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물론 여러 군데 대학에 지원했지만, 여러 군데 직장에 지원했지만, 그래도 꼭 한 군데 정도는 합격이 되곤 했었다. 기본적으로 겁이 많은 성향이라, 무엇을 하든 안전 지향적으로 도전했고 혹시를 대비한 대안까지도 늘 생각해 두었고 아예 떨어질 것 같은 곳은 쳐다도 보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어쨌거나, 남들 앞에서는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합격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대단한 게 아니어도 적어도 실패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내겐 중요했다. 그것은 적어도 자존심만큼은 지키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그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나는 사실은 한 번도 진짜로 원하는 걸 향해 위험을 감수하고 뛰어든 적은 없었던 셈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평생 이리저리 피하며 마주하지 않으려 했던 '실패'를 마흔이 되어서야 완전하게 경험한 셈이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실패였기에, 나는 이 실패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아무런 지혜가 없었다.


그저 무기력함에 빠져,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마음이 완전히 붕괴된 상태로 며칠을 지냈다.





며칠이 지나고 난 뒤에,

겨우 마음을 추슬러 산책을 나섰다.


우리  근처에는  강변이 있었고,  강변에는 ´자유의 여신상'(마국과 똑같이 생긴 그러나 사이즈는 훨씬 작은)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사실은  여신상이 프랑스에서 만들어서 선물한 거라고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다.


아침마다 달리기를 할 때면 센강변을 한 바퀴 뛰고 돌아오는 길에 꼭 마주하는 그 자유의 여신상의 모습이 참 좋았더랬다.


오늘도 뛸까 말까 많이 망설였지만 그래도 이겨냈다는 느낌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렸다는 느낌, 그리고 마지막 코스의 오르막 길 위에 떡하니 손을 들고 단단히 서 있는 여신상은 나에게 "승리"를 연상케 했다. 그래서 남모래 나는 홀로 그를 '승리의 여신상'이라 부르곤 했었다.



그런데 그날의 나는 승리의 여신상 앞에서 어쩐지 한껏 초라한 느낌이었다.

아무것도 승리하지 못한 것 같은 나 자신이...  열심히 노력했지만, 끝까지 가 보았지만, 결국은 실패하고만 나 자신이... 어쩐지 너무나 작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날, 뛸 힘조차 남아있지 않아 천천히 그 길을 거닐던 나는 보고 말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쌕쌕 대며 숨을 몰아쉬며 달려가던 나를 향해서도,

땀 대신 눈물이 그득해서,

한숨을 몰아쉬며 느릿느릿 움직이던 나를 향해서도,

나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그녀는 그 자리에서 똑같이 손을 들고 환대해 주고 있었다. 나의 상황과 상관없이 그녀는 늘 그 자리에 반듯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그랬다.

그토록 부끄럽고 싫었던 나의 실패는 또 다른 의미에서 승리였는지도 몰랐다. 적어도 도전했고 끝까지 그자리를 지켰고, 그리고 실패하는 법을 배웠다는 점에서는 승리라 불려질만 했다.


실패와 승리는 어쩌면 내가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지도.


그러니 학교에 떨어졌지만,

그것은 어쩌면 실패가 아닌지도 모른다.


내년을 위한 과정이었는지도. 넘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걸 이유로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 장애물에 가로막혀 영영 도망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지 쉼표에 불과할지도.


그러나 크고 작은 문제들 앞에 무너져 내리고, 그 알량한 자존심에 결코 다시 그 앞에 서지 않기로 마음먹는다면, 그것이야 말로 영원한 실패가 되고 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다시 해 보리라 마음먹는다.


쉼표를 지나, 이 여정을 뚜벅뚜벅 걸어서

그곳에 도달할 그날까지,

끝까지 가 보리라.


그저 손을 치켜들고 그 자리를 지켜보리라.

해가 뜨는 날도,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도, 사람이 많이 찾는 날도, 그렇지 않은 날도 늘 그 자리에 손을 지켜 들고 서 있는 승리의 여신상처럼,


도망치지 말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저 내가 부름 받은 자리에, 쉽지 않은 그 길 위에서 손을 지켜 들고 다시 서 보리라.


실패가 지나가는 날에도,

웃으며 그것이 승리의 비결이라 말할 수 있기를.

실패가 무서워 간절함을 포기하지 않고,

도리어 그것을 딛고 설 수 있기를.

더 강하고, 더 간절하게, 더 꿋꿋하고,

더 깊게 뿌리내릴 수 있기를.


그리하여 실패는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님을,

피하고 싶었던 그 사건들이 행운의 사건이 되고야 마는 인생의 역설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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