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앤느 Aug 10. 2023

절망과 희망 사이


미술관을 거닐다 보면 유독 눈에 들어오는 그림들이 있다. 유난히 오래 머물게 되는 그림, 그리고 그 그림은 내게 말을 건넨다.



그저께도 그랬다.

태양이 하늘을 온통 붉게 물들이고 있는 그림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이 아름다운 풍경은 노을이 지는 때일까? 아니면 동이 터오는 때일까?


이 붉음은 저물어가는 것들의 상징일까,

다시 떠오르는 것들의 상징일까.



남편이 내게 쉽게 답을 건넸다.


"당연히 노을이 지는 때지, 여기 봐!

사람들이 있잖아."


그랬다. 사람들이 있었다. 아주 작게 그려지긴 했지만 사람들은 풍경 속을 거닐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동이 터오는 시간 대이기보다는 노을일 가능성이 크다는 걸 의미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그림들은 그런 단서조차 없었다.

그저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아름다운 태양을 그려낸, 저마다의 빛깔로 묘사된 그림 앞에 서면 나는 한참을 들여다보곤 했다.


이 순간은 과연 어떤 순간일까,

저물어가고 있나 아니면 떠오르고 있나.



이 질문이 유독 중요하게 여기지는 까닭은 어쩌면 내가 새벽과 저녁, 떠오름과 저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나에게 노을은 어쩐지 아쉬움을 안겨주는 느낌이었다. 무언가가 저물어 간다는 것은 모든 아름다운 순간을 지나서 끝을 향하는 일이고, 무언가를 잃어간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런 감상은 기어코 슬픔에 닿게 만들었다.


그러나 새벽은 달랐다. 새로운 시작이고, 탄생이고, 생명이자 움터 나옴이었다. 이대로 끝이 아니라 이것으로 시작한다는 느낌은 슬프기는커녕 희망적이고 가슴 벅찬 느낌이었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나는 끊임없이 동이 트는 순간을 그린 그림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희망을 찾으려고.


'이 그림은 어쩌면 새벽녘일까?

아니네, 제목을 보니 노을이네'


이 경험을 여러 번 되풀이하고 나서야 나는 문득 깨달았다. 사람들은 모두 노을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그림 앞에 서서 '새벽녘'을 연상했다. 그만큼 그 두 장면 사이에는 구분 지을 만한 큰 차이가 없었다. 제목이 없었다면, 단서를 주고자 구석에 그려 넣은 사람들이 없었다면 새벽이라 해도 믿을 만큼 새벽 같아 보이는 그림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어쩌면 인생의 순간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들과 사건들에 대해 이것은 저물어가는 순간이다 이것은 시작되는 순간이다를 정확하게 자르고 정의 내릴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가 저물어간다고 생각하며 그려놓은 인생의 한 순간을 바라볼 때, 누군가는 그것에서부터 비롯된 탄생과 기적을 발견할 수 있지는 않을까?   


노을과 새벽은 어쩌면 한 걸음 차이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저물어 버린 노을, 그리고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는 새벽 그것이 서로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어쩌면 인생을 알아가는 게 아닐까 싶다.





아버님이 편찮으시다는 연락을 받았다.

부랴부랴 한국에 다녀왔다.


기억력의 많은 부분을 잃어버리셨고, 걷는 것이 많이 불편해지신 연로하신 아버님을 바라보는 우리의 심정은 모든 것을 잃고 저 산자락 너머로 사라져 가며 대지를 붉게 물들이는 태양을 바라보는 듯이 먹먹했다.


'아니 이렇게나 빨리... 아니 그렇게 정정하시던 분이...' 저물어가는 태양 앞에서 선 우리는 고통스러운 마음을 토로했다. 그것은 상실감이었고 슬픔이었다. 절망과 비극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희망을 낳았다.


아버님의 갑작스러운 병환으로 우리는 4년 만에 모였다. 서로에 대해 날이 서 있던 마음은 이 비극 앞에서 긍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서로에 대해 조금 더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그 시간 앞에, 그 상실 앞에 우리는 비로소 '사랑'을 시작할 수 있었다. 미뤄두었던, 가능하다면 언제까지고 미뤄두려고 했던 그 사랑을.


기억과 건강을 잃으신 아버님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들과의 사랑을 되찾으셨다. 그리고 미소를 되찾으셨다.


그렇게 우리는 새로운 태양이 떠오름을 보았다.

슬픔과 비극은 희망과 소망으로 그 모습을 변모하고 있었다.


우리는 노을이 지는 풍경 속에서 다시 떠오르기 시작하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희망 덕분에 상실을 이겨나갈  있었다.



나는 이제 어느 그림이 새벽녘을 그린 그림이냐고 묻지 않기로 했다. 어느 순간이 더 희망차냐고 물으며 그 순간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모든 것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 같은 노을조차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너른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새로운 희망을 낳는다는 것을 이렇게 배웠기에...


오늘도 나는 ,

노을을 거닐며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본다.

여전히 희망은 거기에 있다.

우리의 마음속에.




매거진의 이전글 상처가 치유되는 순간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