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 산 지도 벌써 만 6년이 되었다.
세월이 이만큼 흘렀으니, 이제 원어민처럼 프랑스어를 샬롸샬롸 쏟아내야 할 것 같은데 그건 어디까지나 상상 속의 모습이었을 뿐. 여전히 나의 프랑스어 실력은 초등학생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상에서 하는 일들은 눈치코치가 늘어난 덕분에, 초등학생 수준의 불어라도 듣고 말하며 처리해 가며살아갔다. 하지만 사람들과 마음이 닿도록 대화하는 일은 여전히 멀었다.
누군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외국 생활은,
세월이 갈수록 더 깊어만 가는 외로움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일이라고.
실로 그랬다. 참 많이 외로웠다.
누굴 만나면 더 깊어지는 외로움이 싫어서 오랫동안집 안에 나를 가둬두었더랬다.
이러나저러나 어차피 외로운 거, 차라리 혼자인 게 낫다는 심보였을까?
그렇게 프랑스에 온 뒤 처음 한 3년은 스스로 나를 집이라는 작은 감옥에 가둬둔 채 지냈다.
그러나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는 느낌이 불현듯 들었다.
나는 이곳에 귀양을 온 게 아니었다. 이대로라면 아무것도 더 나아질 수가 없었다. 마음속에 소용돌이치는 이 강렬한 감정은 어쩌면 이제 곧 마흔이 되기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내가 꿈꾸던 중년은, 방콕이 아니었다.
적어도 이건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세상 그 어떤 문보다도 열기가 힘들게 느껴졌던,
몇 천 톤 무게라도 되는 냥 굳게 닫혀 있었던
마음의 문을 열고,
그렇게 나는 집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도서관에 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집 가까운 곳에 도서관이 있었다.
아무도 날 의식하지 않으니 조용히 한 구석에 앉아, 책을 뒤적였다. 그러나 소설이나 문학 같은 책들은 책장을 펼치자마자 멀미가 났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 책장에 꽂았다.
더 구석진 곳에, 어린이 그림책 코너가 있었다.
창가에서 빛이 환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그 창가에 앉아 나는 생애 처음으로 프랑스어로
그림책 몇 권을 읽었다. 뿌듯했다.
'나는 불어를 잘 못해' 프랑스에 온 뒤로 늘 나를 따라다니던 생각, 그리고 그로 인해 쪼그라들어 있던 마음이 1센티쯤 펴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는, 힐링이 필요하거나 시간이 여유로울 때면 도서관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뿌듯함이 좋아 읽어 내려가던 그림책 속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기 시작했다.
내 속에서 휘몰아쳤던 감정들과 생각들,
잊혔다 믿었던 원망스럽고 아팠던 기억들,
대충 잘 처리했다 여겼던 상처의 순간들이
툭툭 건드려지곤 했다.
그림책을 점점 더 읽어갈수록,
때론 아팠고 때론 슬펐으며
때론 따스함이 필요했을
그때의 나를 외면할 수가 없게 되어갔다.
나는 마치 딱딱하게 굳어진 채
소금기둥이 되어 버린 그 시절의 나를 만나기 위해
이 그림책을 읽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만히 눈물로 어루만져주기 시작했다.
사십 년을 살면서,
누구에게나 그렇듯
찬란하지 만은 않은 생을 견뎌내느라 생긴
마음의 얼룩들을
나는 더 늦기 전에 마주하기로 했다.
누구도 줄 수 없는 내 삶에 대한 답을,
이렇게 나와 마주하며, 찾아가 보려 한다.
그림책 한 권을 펼쳐 들고 함께 울고 웃으며,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조금 더 너그러운 사람이 되려 한다.
나는 그렇게 조금 더 행복해지고 싶다.
이것이 마흔의 나에게
내가 주는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