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모험

시련이 모험이 되는 순간들

by 마리앤느

작년 프랑스에 들어오고 얼마 되지 않아서 아들의 눈에 작은 문제가 발견되었다. 밥을 먹다가 갑자기 다급하게 엄마를 부르는 아들.

"엄마, 엄마가 두 개로 보여."

아들의 한 쪽 눈동자가 살짝 옆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기에.. 나는 이 일이 프랑스에 와서 아이가 받고 있는 거대한 스트레스와 무관한 일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참 마음이 아팠다.


다행히도 프랑스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한국을 다녀와야 했고 그때 부랴부랴 찾아간 안과에서 내사시일수도 있다는 것과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 지금이 치료가 가능한 마지막 시기라는 것 등의 이야기를 들었다.

마음이 너무 아팠지만 대학병원까지 가지는 못하고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야 했다. 그리고 1년이 흘렀다.

아이가 잠들기 전에 늘 아이를 위해 눈을 위해 기도해주고 재웠다. 그러나 엄마인지라 때때로 많이 마음 쓰였고 그렇게 두려움과 불안이 올라올 때면 더 간절히 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방학 아이는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병원에 갔다. 한국에서도 병원이라면 눈물부터 쏟는 겁 많은 아들이 병원을 가겠다 결심하기까지... 또 우리 역시도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서 병원에 가겠다 결심하기까지... 1년이 걸렸다.


급하게 후다닥 데려가려면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조금 더 기다려주고 싶었다.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그라들기까지... 혹여 치료과정이 복잡하다면 그 또한 아들이 감당해야할 터.... 아들이 견뎌내야 할 아들의 몫을 스스로 감당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벌어주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아들의 마음을 보호해 주고 싶었다.


그렇게 긴 기다림 끝에 지난 여름 방학에 아들은 아빠와 함께 병원에 다녀왔다.


며칠 전부터 안과는 이런 곳이야 몇 번이나 설명하고, 그렇게 마음에 굳게 다짐을 한 뒤에야 다녀온 병원인데... 그새 자란 아들, 갈때도 생각보다 더 씩씩하게 나서더니, 다녀온 뒤에는 더 자신감이 하늘을 찌른다.

"아들 모험 잘 하고 왔어?"

"응 엄마 안과 하나도 안 무섭던데? 진짜 안 아프고 신기하던데? 나 진짜 잘했다?"

아침에 나갔던 그 아이가 아닌 다른 아이가 집에 돌아온 느낌이랄까...왠지 키가 1센티쯤 더 자란 느낌이었다. 내가 해 냈다 하는 그 성취감이 이런 일들 하나하나 겪어가며 만들어지는거구나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아이들에겐 참 이런 일들 하나하나가 다 모험이 되는거구나 싶다.

박수쳐주는 엄마 아빠의 반응이 기분 좋기도 하고, 무섭고 하기 싫은 일을 피하지 않고 해냈다는 그 느낌도 좋은 것 같고, 무엇보다 큰 치료를 받기라도 할까봐 마음 조렸는데 안경만으로 조정이 가능할 정도로 많이 호전됐다고 하니 그것도 감사한 것 같다.


그런데 그 와중에 아빠에겐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빠 근데 동생은 눈 안 아팠으면 좋겠어. 안과가 안 무섭긴 하지만... 그래도 걔는 여기 안 왔으면 좋겠어."


어린 듯해 보여도 생각하는 거, 마음 쓰는 거 보면 또 이렇게 컸구나 싶다. 엄마 아빠가 해 줄 수 없고 내가 해야만 하는 것이 분명히 있다는 걸 받아들이고 해 나가는 모습도 기특하고 삶 속에서 하나씩 도전해서 배워가려는 모험심이 자라가는 것도 대견하고, 그 와중에 동생에겐 더 좋은 걸 주고 싶다고 말할 줄 아는 아이로 커 간다는 것도 감사하다.


​이렇게 작은 사건 하나로도 성숙하고 성장하는 게 느껴진다면, 프랑스에서 지난 1년 동안 마음앓이 하며 걸어온 시간들이 당장은 열매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아도 마침내는 얼마나 아름답게 아이들을 길러낼지 기대가 되기도 한다.


아직도 갈 길이 멀긴 하지만 말이다.

​아이가 겪는 크고 작은 일들을 감사함으로 받아야 겠다. 그 모든 일들이 마침내 아이들이 아름답게 자라가는 과정이 되고 기회가 되고 방법이 될 것을 믿고... 두려움은 내려놓고 힘을 내서 함께 걸어가야겠다.


아들이 모험하는 만큼, 나도 모험을 피하지 않고 그렇게 함께 자라가야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