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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앤느 Nov 23. 2020

아이들과 함께 위인전을 읽는 이유

그렇게 생각지 못한 치유가 시작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위인전을 읽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위인전은 썩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돌아보면 책을 꽤나 많이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위인전이라고 하면 고작 간디 자서전 정도... 정말 손에 꼽힐 만큼도 안 보았다. 생각해 보면 나는 삶을 어떻게 잘 살아가야 할까에 대한 해답을 좋은 모델들에게서 찾기 보다 가장 나 다운 방법으로 내가 삶을 헤쳐나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내가 아이들에게 위인전을 읽어줘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이 영화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처음으로 꿈을 이야기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한 주만에 과학자가 되겠다고 다시 정정하긴 했지만 ㅋㅋ 어쨌거나 아들이 슬슬 꿈을 꾸는 나이가 되었다는 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무렵에 선생님이 되겠다고 한결같이 외치고 다녔는데 사실 그 무렵에 꿨던 꿈과 무관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고, 뿐만 아니라 단지 직업으로서의 선생님이 아닌 꿈을 꾸고 새로운 길을 찾아가고 다음 세대를 기르는 등등의 무수한 수식어를 붙이고 꿈이라 부르며 걸어가고 있으니 이만하면 꿈쟁이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쨌거나 그렇게 직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기 시작한 아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문득 우리가 프랑스에 있고, 지금 현재로서는 자주 만나고 교제하는 사람들이 한국에 비하면 너무나 턱없이 적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어릴 적 삼촌 고모들 틈바구니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경험하고 다양한 인생을 관찰하며 자란 나에 비하면 너무나 관찰할 만한 또 다양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줄 만한 사람들이 없다는 사실이 깨달아진 것이다.


아이들도 한국에서는 늘 교회 안에서 자랐기에 다양한 삼촌과 이모와 친구들을 경험했다. 한 사람은 한 세계였고, 우리가 보여줄 수 없고 들려줄 수 없는 다양한 것들을 아이들에게 들려주곤 했다.

책과 글과는 인연이 깊지만 무언가를 뚝딱뚝딱 만드는 일과는 연이 먼 남편과는 달리 무엇이든 척척 고치고 만드는 교회 삼촌을 보며 아이들은 입을 쩍 벌리고 곁에서 구경을 하기도 하고, 나사를 주워다 주거나 휴지를 가져다 주거나 등등의 일을 도우며 조수 노릇을 하기도 했다. 또  뭐든 안돼를 쉽게 외치는 겁 많은 엄마 품을 벗어나 교회에서 만큼은 이모들의 관대함을 누리며 마음껏 모험하고 뛰어다니던 녀석들. 그랬던 아이들이 집 안에서, 우리 두 사람의 품에서만 길러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이라고 믿는다. 가정에서의 애착이 견고할 때 확장되어 어느 곳에서든 자신들을 펼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세상에 대해 배우고 생각하고 깨닫고 자신의 지경을 넓혀가는 일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나는 진지하게 아이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때마침 프랑스존에 중고로 싼 값에 올라온 위인전 세트를 발견했다. 나는 얼른 연락했다. 그리고 다음날 남편은 캐리어를 끌고 그 무거운 책들을 날랐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위인전을 읽기 시작했다.


가난 속에서도 가정의 불화 속에서도 그리고 마침내는 귀를 잃어가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베토벤으로부터 시작해, 부모의 이혼과 인종차별까지 겪어가면서도 그 아픔을 도리어 꿈으로 승화시켰던 스필버그 감독,  가난과 시련 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고 자신만의 길을 꾿꾿이 걸어간 파브르...


한 권씩 아이들이 골라오고 함께 읽어나가는 동안 우리는 또 다른 한 세계를 만난다.


눈물로 얼룩진 순간들을 지나고, 고통과 아픔의 시련들을 이겨냈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속에 심겨진 어떤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포기않고 펼쳐 냈던 어떤 한 사람의 인생을 통해서 지금 우리는 어디쯤에 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어떻게 이 시간을 지나가야 하는지 돌아보게 된다.


그러나 그 시련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었다. 베토벤에게도 스필버그에게도 펠레에게도 파브르에게도 있었던 그 시련의 순간에 신기할 정도로 그들은 혼자가 아니었다. 아니 혼자 견뎌야 하는 때도 분명 있었지만 그러나 반드시 그들과 함께하는 도움의 손길들이  있었음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그 아픔의 때도 반드시 끝이 있다는 걸 책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가장 외롭고 고독한 순간에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과 친구가 될 줄 알았다. 베토벤에게는 피아노가, 스필버그에게는 영화가, 파브르에게 곤충이 친구였다. 그들이 그들 자신에게 주어진 그 시련을 담담히 걸어갈 때, 그러나 불평하고 고통하기 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사랑하며 걸어갈 때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어떤 것을 만들어냈다.


마치 오랜 시련 속에서 조개가 진주를 조각해내듯....




베토벤을 읽던 중이었다. 어느날부턴가 귀가 들려오지 않던 베토벤이 세상 속에서 홀로 남겨진 듯 고통하며 걸어가는 그림 앞에서 별 생각 없이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희도 이럴 때가 있었니?"

"응, 나 학교에서 아무도 나랑 안 놀아 줄 때..."


말이 통하지 않는 프랑스 학교에 적응하느라 고군분투 중인 딸이 툭하고 던진 그 말이 가슴에 쿡 하고 와서 박힌다.

이제 6살 딸이, 벌써 외로움과 고독함을 느끼고 있다니....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딸을 가슴으로 끌어 당겨 꼬옥 안아주었다.

나는 어려웠던 시간을 지나고 있고, 이제 어쩌면 그 긴 터널의 막바지에 이르렀을지도 모를 아이들이,
이 책을 통해 위로받기를 원한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누구나 인생을 살다보면 홀로 견뎌내야 하는 때가 있구나.... 그런데 그 시간을 잘 견뎌내면 그 아픔이 삶의 재료로 아름답게 사용되는 거구나...



이 책들 속에 기록된 그들의 인생을 통해서,
그들의 눈물과 그들의 인내와 그들의 도전과 그들의 실패와 그들의 삶을 통해서 아이들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이 하루의 의미를 찾아갈 수 있기를...  


우리가 다 헤아릴 수 없는, 그러나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찬란히도 아름다운 이 생의 의미를 발견해 갈 수 있기를... 오늘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아이들과 함께 책장을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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