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히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는 삶

by 마리앤느


지난주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콘서트를 다녀왔다. 반년도 더 훨씬 전에 남편이 예약을 해 둔 것이었다.

콘서트를 주최한 파리 한국문화원에서 할인을 해 주기에 저렴하게 표를 구할 수 있었다.


나는 피아노로 연주한 클래식 음악을 좋아했다. 그러나 음악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기에 왜 좋은지를 물으면 답을 할 수는 없었다. 그나마 이유를 댈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어릴 적 5년 동안이나 피아노를 배웠다는 것? 그러나 그 마저도 사실 꼭 덧붙이는 말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피아노를 전혀 칠 줄 몰라요....'






어릴 적 달동네에 살았던 나는, 그 당시 내가 피아노 학원을 다닌다는 게 얼마나 큰 사치인지를 몰랐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나를 피아노 학원으로 데려간 것은 엄마였다. 운동장을 쏘다니다 돌아와 만화영화를 보는 것만이 유일한 문화생활이었던 내가 안쓰러웠던지... 초등학교 입학한 그날 엄마는 내 손을 잡아끌어 피아노 학원에 데려갔다.


피아노가 뭔지도 잘 몰랐다.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연주하는 걸 본 적은 있었지만 내 세계 속에 속한 물건처럼 느껴지지가 않았다. 엄마와 손을 잡고 어딘가를 간다는 사실이 그저 설렜던 나는 학원 앞에서 조금은 난감해졌다. 새로운 세계, 그것으로의 진입은 늘 어린아이들에게 버거운 일이니까.


그러나 학원 문을 여는 순간 들려오는 피아노 연주소리가 이상하게도 안온했다. 내가 살아가는 터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와 공기가 막연하게 좋았던 느낌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창을 통해 내리쬐는 햇살조차도 이상하게 더 눈이 부시게 느껴졌다. 그저 모든 게 아름다운 느낌이었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안타깝게도 피아노는 내 적성은 아니었다. 연습 시간마다 딴짓을 하기 일쑤였고, 자주 학원에 가기 싫다 말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엄마는 단호했다. 대체로 모든 것을 허락해 주는 엄마였는데, 이상하게도 피아노 학원만큼은 계속 다니라 강요했다. 입이 삐죽이 나와서 학원을 꾸역꾸역 다녔지만, 또 막상 학원에 가서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조금 행복하기도 했다. 그 기나긴 5년의 여정은 이 정도의 기억으로 추억될 뿐이었다.






문득 엄마가 날 왜 피아노 학원에 보냈을까, 아니 어떻게 날 피아노 학원에 보냈을까 의아해진 것은 나 역시도 엄마가 되고 난 뒤였다. 나는 엄마보다 훨씬 평온하고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지만, 아이들 교육비를 지출할 때마다 고민하고 또 고민하게 되곤 했다. 그것은 슈퍼에 가서 과자 한 봉지 사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 우리 형편에 속셈학원도 아닌 피아노 학원을 그것도 5년씩이나 엄마가 보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궁금했다. 마음이 너무 지친 어느 날, 조성진 님이 연주한 쇼팽을 틀어놓고 반신욕을 하다 깨달았다.



엄마가 나에게 주고 싶었던 것은, 피아니스트의 꿈이 아니라 음악을 누리는 삶이었다는 것을.



피아노를 만져본 적도 없었을 엄마가 하나뿐인 딸에게 꼭 하나 남겨주고 싶었던 것은 우아한 취미였던 것이다.


먹고사는 삶에 지쳐 살아가는 엄마는 먹고사는 일 말고도 세상에는 아름다운 게 많단다... 그걸 보여주려고 비싼 피아노 학원에 날 데려갔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가져본 적이 없어

엄마가 직접 줄 수 없으니...


그렇게라도 내게

아름다운 것을 사 주고 싶었나 보다.





나는 정말로 클래식을 좋아한다. 음악을 잘 모르지만, 제대로 맘 잡고 찾아본 적도 없지만 좋아하는 음악가들이 있고, 좋아하는 곡이 있고, 즐겨 듣는 곡이 있다. 그리고 이런 취향을 갖게 된 것에 대해서 나는 무엇보다도 유튜브에게 감사한다.


엄마의 피아노 학원이 내게 취향을 선사했다면, 유튜브가 나로 하여금 숨겨져 있던 그 취향을 성인이 된 뒤에 다시 소환해 내도록 도왔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자주 조성진 님의 연주를 듣곤 했다. 힘들고 지치면, 어쩐지 위로가 필요하면 클래식을 찾곤 했지만 그러나 나는 한 번도 내가 콘서트에 가는 것을 상상해 본 적은 없었다.


그건, 피아노 학원보다도 더 멀리 있는 느낌이었다. 내가 차마 범접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세계 같은 느낌이랄까?


엄마의 피아노 학원은 좋은 전략이었다. 엄마 덕분에 나는 엄마가 가져보지 못한 고상하고도 우아한 취향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엄마 손을 잡고 가 보지 못한 콘서트 장은
나에게 마치 내게 허락되지 않은
선악과처럼 여겨지곤 했다.
한 번쯤 가 보고 싶다는 열망조차도
그다지 가져보지 못한 채
그렇게 나는 나의 익숙한 세계 속에서
홀로 나만의 고상한 취향을 누리며 살고 있었다.



그런 나를 미지의 세계로 잡아 끈 것은 남편이었다.

망설이고 있는 나를 둔 채로 그는 금세 예약을 마쳤다.


이렇게 할인도 해 준다는데 한 번 가봐.

자기 클래식 좋아하잖아... 이럴 때 가 보는 거지 뭐...

그렇게 나는 미지의 세계, 너무나 우아하고 고상해서,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다 여겼던 세계 속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어떤 곡을 연주하는지도 모른 채 갔던 그 콘서트 장에서... 늘 유튜브로 듣던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이 울려 퍼지자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한 번도, 상상해 보지 않았다.
이 곡을 그렇게 수십 번 수백 번 들으면서도
한 번도...

직접 조성진 님이 연주하는 곡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
나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 사실이,

그렇게 믿으며 살아가고 있었던 나의 작은 세계가

가여워서 눈물이 났다.



그러나 나는 오늘 상상해보지 않았던

기대할 수 없었던 선물 같은 현실에 놓여있다.


바랄 수조차 없었던 바람이

가질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았던 갈망이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하나도 어려울 것이 없는데...

무엇이 나를 그토록 막고 있었을까?


자신도 누려보지 못한 삶을 선물하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도 모른 채


나는 또

자라온 환경

주어진 삶

살아온 일상을 이유로

나의 한계를 스스로 만들고 있었나 보다.



나를 향한 엄마의 그 간절함이

이렇게 내가 세운 한계를 뚫고 이루어졌구나

엄마의 사랑이 새삼 느껴져서

고맙고 감사했다.



마지막 앙코르곡은 드뷔시의 달빛,

나의 최애곡이 잔잔히 울려 퍼진다.



간절히 바라는 것은
이렇게 이루어진다고 속삭이듯
그러니 바라고 소망하고 원하고 기대하는 일을
결코 멈추지 말라고 타이르듯.

먹고사는 게 힘들어도
그 고상하고도 아름다운 기대를
내려놓지 말라고...
음율이 내 귓가에 속삭인다.


그 속삭임에 화답하듯

엄마의 손을 잡고 피아노 학원을 가던 날을

추억하며

엄마를 향한 마음을 마음 속으로 속삭여본다.


엄마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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