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마음이 무겁고, 심히 고단했다.
사실 나도 알 수가 없었다.
몸이 피곤한 건지, 마음이 피곤한 건지...
그러나 밤이면 잠이 오지 않았고,
아침엔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좋지 않은 징조였다.
무엇일까?
무엇이 나를 이렇게 무겁게 짓누를까?
마치 내담자의 삶을 들여다보듯
나는 조심스레 내 삶을,
근래에 내게 일어난 일상을
가만히 돌아보기 시작했다.
한 달 전쯤 아들은 오른쪽 팔목이 부러졌고 깁스를 했다. 무려 오른손이었다. 수술 이야기가 나왔다가 그나마 다시 들어간 것만으로도 감사했지만, 그 감사함이 일상의 고단함까지 줄여주지는 못했다.
아들은 시시때때로 엄마를 불렀다.
머리를 감겨줘, 치약을 짜줘, 양말을 신겨줘...
그리고 뛰어놀지 못한 에너지를
나와의 교감으로 풀어내려 했다.
엄마를 부르고, 또 부르는 아들은,
행복했지만 힘들었던
그립지만 그렇다고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5살 무렵 어린아이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러나 전적으로 이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친 초기에,
아들은 수술을 받게 될까 두려워했다.
그 불안은 자려다가도 엄마를 불러대는
자꾸만 목에 벌레가 있는 것 같다며
엄마를 불러대는 증상으로 나타났다.
아들의 불안함을 받아내야 하는 어미의 마음은
안타깝고 고단했다. 나 역시도 불안했지만,
내 불안은 꾹 눌러 두고 괜찮은 척 대담한 척
그렇게 애를 써야 했다.
한 2주의 경과를 지켜본 후에
마침내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의사가 말하고 나자
이제 아들은 슬슬 방심하기 시작했다.
아슬아슬해 보이는 아들을
마음이 다치지 않을 만큼만 다그치며
지켜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친구들과 마음껏 뛰놀며 채웠어야 했지만,
결국 결핍될 수밖에 없었던 관계에 대한 욕구를
슬며시 엄마인 내게 올려놓을 때마다,
나는 지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받아줘야 했다.
그것은 내게 많은 정신적 에너지를 요구했다.
하지만 내가 지치고 귀찮다고
팔을 다친, 그러나 여느 청소년과 다르지 않은
관계 안에서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인지를
확인하는 문제에 몰두해 있는
우리 집 한 청소년에게
무심히 마음까지 다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 방식대로, 밀어내거나 다그치지 않는 것
너를 배려하며 너를 헤아리며
그러나 내가 고갈되지 않을 정도에서 품는 것
그건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요하는 일이었다.
설령 자식이라 해도.
그러나 또 다른 복병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딸의 반응이었다.
딸은 수더분한 성격이었다.
대체로 양보도 잘하고
대체로 돕기도 잘하는 성향.
그러나 오빠가 아프기 시작하자,
그래서 엄마와 아빠의 온 신경이
아픈 오빠에게로 향하기 시작하자
딸은 반기를 들었다.
신기할 정도로
모든 일에 태클이었다.
오빠 병원에 가야 해서
학교 돌봄 교실에 조금 더 있으라 하면
눈물부터 보이며 싫다고 싫다고
아우성을 쳤다.
억지로 보내려 했더니
속이 안 좋아서 학교 자체를 가지 못했다.
평소라면 몇 번이고 도왔을 일도
오빠가 아파서
엄마 아빠의 손을 빌리자
도리어 돕고 싶어 하지 않았다.
도리어 자신도 엄마 아빠가 해 주길
꼭 오빠에게 하듯이
꼭 자신에게도 해 주길
애절한 눈으로 엄마 주변을 맴돌곤 했다.
그런 딸의 애잔함 때문에
마음이 아팠고
그런 딸의 옹졸함 때문에
마음이 힘들었다.
이해가 되면서도
이해가 되기에 더 힘들었다.
너를 어떻게 해야 할까...
한숨이 포옥 나왔다.
그 와중에 시험을 치렀고,
그 와중에 2학기가 시작되었다.
정신없이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다시 시작된 바쁜 일상을 살아내야 했다.
학교로 나아간다는 것은
나의 부족함을 계속해서 마주 본다는 걸 뜻했다.
집에서 혼자서 프랑스어 책을 보거나
프랑스어로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면
어쩐지 스스로 뿌듯해졌다.
이만하면 많이 늘었지 싶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학교만 가면
그렇게 자랑스러웠던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더 해야 한다, 더 노력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야 도무지 따라잡을 수 없다
하는 마음에 안달이 났다.
게다가 대학원에 가려면 영어 공부도 필요했다.
하루 종일 수업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도 불어나 영어로
영상을 들었다.
짬짬이
틈이 날 때마다 나는
내가 해야 할 많은 일들 가운데
시급하지만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그런 일들을 찾았다.
그렇게라도 해야
뇌에 각인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라도 해서
뇌에 각인을 시키고 싶었다.
그렇게 바쁘게 한 달이 흘러갔다.
오늘 아침
비가 쏟아졌다.
우산을 들 수 없는 아들을 위해
조금 일찍 집에서 나섰다.
아들을 학교에 내려주고
나도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오니
한 시간이나 남았다.
가방에는 어제 읽다 끝내지 못한
프랑스어 논문이 들어 있었다.
혹시 한 시간 안에 논문을 다 읽고
시간이 남으면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 생각했다.
금요일 9시,
평소라면 사람으로 꽉꽉 차 있을
사회대 로비가 헐빈하다.
자판기에서 코코아 한 잔 뽑아서
아무 자리에나 앉았다.
'딱 이거만 마시고 들어가야지...
할 일이 태산이야...'
홀짝홀짝
따뜻한 코코아를 마시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이렇게 가만히 무언가를 마신 게
얼마 만이지?
하고 묻는다.
늘 무언가가 손에 들려 있었다.
늘 무언가를 보고 있거나 읽고 있었다.
아니
설령 눈에 보이기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을 때조차도
머릿속은 해야 할 목록을 만들기에 바빴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돈다.
그제야 내 온몸에 가득 차 있는 긴장감이
이 긴장감을 조금이라도 늦추면
나가떨어질까 봐
도무지 그곳에 도달하지 못할까 봐
온몸에 힘을 주고 살고 있는 내가
그 감각이 느껴진다.
휴우...
몸에 긴장을 푼다.
그리고 마음에서도 긴장을 애써 풀어본다.
다 잘 해내지 못하면 어때,
완벽하지 못하면 어때,
그래도,
이만큼,
애를 쓰며 왔잖아.
너는 이 코코아 한 잔
편안하게 즐길 자격이 있어.
너에게 필요한 것은
딱 이 정도의 여유였나 보다..
내가 나에게
속삭여준다.
지친 마음을 도닥이며
지친 내가 잘못이 아니라
지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나를 보호해주지 못한 태도가 잘못이라고
애써 나를 항변해 주며
그렇게 나를 안아준다.
모든 순간이 꽃길은 아니지만
괜찮다.
어떤 길을 걸어가든
내가 나를 꽃처럼 여기며 안아줄 수 있다면,
그때에야 비로소
내 곁에 꽃들도 더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음을 깨달았기에.
그러니,
이 잠깐의 여유는
결코 사치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