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좋은 면이 많은 사람이다.
나의 필요보다 다른 사람들을 먼저 살필 줄 알고,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기분을 기민하게 읽어서 배려할 줄도 안다.
나를 잘 돌아보고, 정리함으로써
좋지 않은 부분들을 잘 털어낼 줄도 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완전히 얼어버리는 순간이 있다.
모든 것이 나와 상관없게 느껴지는 순간.
타인의 목소리는 소음으로
타인의 몸짓은 풍경처럼
그냥 지나쳐진다.
일상을 살고 있지만
그전과는 다르다.
살펴지던
보이던
누군가의 마음이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은 채
행위로만 살아간다.
아니,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저 내게 들리는 것은
내면의 목소리뿐이다.
그 목소리만 계속해서
내게 말하고 또 말한다.
너 큰일 났다.
결국 너는 또 가난해지고 말 거다.
네가 그토록 대물림 하고 싶지 않았던
그 후줄근한 느낌,
초라하고 외로운 그 느낌.
너는 평생
그 가난하다는 느낌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거다.
수입이 조금 줄었을 뿐이었다.
치명적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는
금세
당장 길거리에 나앉기라도 할 듯이 군다.
머리로는 우스운 이 상황이
마음으로는 고통스럽다.
왜?
왜?
왜 나는
가난이 이토록 무서울까.
불행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나는 늘 궁금했다.
우리는 왜 불행할까?
누구에게도 물을 수 없어
홀로 생각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찾았다.
내 유년 시절이 불행했던 이유는
엄마가 그토록 불행했던 이유는
우리가 가난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어왔다.
아빠가 안정적인 직장에서
따박따박 돈을 벌어다 줬더라면
어쩌면 엄마는 조금 더 행복했을 것이고
나도 더 사랑받는 아이로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그 믿음은,
내 불행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는
그러나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있는
가장 완벽한 가설이었다.
물론
아빠가 그렇게 단단히 설 수 없었던 이유까지
찾아 들어가자면
조금 더 복잡한
다른 가설들이 생겨나겠지만
어쨌거나
엄마가 불행했던 이유 = 가난
내가 사랑받지 못한 이유 = 가난
이라는 공식은 언제나
나를 혼란으로부터 지켜주는,
적어도 더 큰 불행감에 빠지지 않게 해주는
든든한 방패였다.
그러나
사춘기 시절 나를 지켜주던
이 든든한 방패는
성인이 되어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내게는
자주 상처를 남기고 있었다.
가난이 불행의 이유라는
단단한 나의 믿음은
상황이 조금만
좋지 않게 돌아가면
불행감에 압도당하도록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수입이 조금 줄어들자
나는 금세 불행해졌다.
정신을 차릴 수도 없을 만큼
불행했다.
이미 세상의 끝이
내 인생 가까이 와 있는 것 같았다.
안개가 자욱이 드리운
내 내면의 세계에서
내가 볼 수 있는 것이라곤
고통스러워하는
나 자신 하나뿐이었다.
그때의 나는 아직 몰랐다.
이 불행이
돈 때문이 아니라
관계의 기억 때문이라는 것을.
불행한 나 자신에게 집중되자
아이들에게 건네던
친근한 말들이
가장 먼저 사라졌다.
깔깔 웃으며 농담을 던지던
따뜻한 순간들이
그렇게라도 사랑을 표현해 보려던 몸짓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함께 있는 시간에도
침묵이 흘렀다.
아이들과 내 사이에 드리운
안개를
거둬낼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나는 그렇게 한 주를 꼬박
마음앓이를 했다.
지독하게도 원망스러웠지만
정확히 누구를, 무엇을
원망하는지 알지 못한 채
나는 웅크린 채 앉아
이제 막 시작될
나의 불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이 마치
예정되어 있던
내 인생이었던 것처럼.
나는 그렇게
불행 속에 기꺼이
머물러 있었다.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에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어린 시절 내 눈에 비쳤던
엄마의 모습이 꼭 이랬을까.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그 모습을
나는 이렇게 기어이
살아내고 있구나
한탄이 터져 나왔다.
정신분석학 수업을 듣다
문득
도대체 나는 왜,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면에서는
담담하고 대담하기도 한 내가
왜 하필
가난이라는 단어 앞에서만
이토록 빠르고
급격하게 무너져내리는가.
그리고 그렇다면나는 정말 그토록 가난한가.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분명
가난하다고 느끼고 있었지만
사실 나는
가난이라는 단어를 쓰기엔
애매한 위치에 서 있었다.
어린 시절의 나와 비교하자면
지금의 삶은
가난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늘 가난한 마음으로 살고 있었다.
가난의 분위기,
가난의 공기,
가난의 느낌이
너무도 익숙하게
나를 찾아왔다.
누군가는
가난한 어린 시절이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말하지만
나에겐 아니었다.
그것은
축축하고 차가웠으며
무거운 공기였다.
도무지 내가 손써 볼 길 없는
불행의 표정과
깊은 한숨,
그리고 적막 속에서
그저 숨죽인 채
모든 것이 지나가길
기다려야 함을 의미했다.
내 눈은 엄마를 보고 있었지만
엄마의 눈은
나를 보지 않았던
그 순간들.
나에게 가난은
그런 느낌이었다.
완벽히 혼자 놓이는 느낌.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한
사랑조차도 사치가 되는 느낌.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두려워한 것은
가난 그 자체가 아니었다.
가난과 함께
내 인생에 덮쳐올 것이라 믿어왔던
진짜 불행은_
홀로 놓인다는 느낌,
사랑받을 수 없고
연결될 수 없고
외면당할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나에겐
그것이
가난이었다.
아무리 돌이켜보아도
돈이 없어
밥을 못 먹은 적은 없었다.
잘 곳이 없어
길에 나앉은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가난이라는 단어는내게 공포였다.
내 모든 불행의 이유가
가난이라고 믿었기에
견딜 수 있었던 그 시간.
그러나 그 믿음은
지독하게도 큰 두려움이 되어
나를 옥죄고 있었다.
조심해야 해.
조금이라도 물러서면
나는 가난해질 수 있어.
불행해질 수 있어.
그리고 마침내
사랑받지 못할 수도 있어.
가난하면
너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될 수도 있어.
불행을 설명하기 위해
쉽게 붙잡았던
나의 순진한 공식은
이제나를 겨누는 칼이 되었다.
그 칼을 쥔 채로는
결코
이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맞다.
우리의 불행에
가난도
하나의 이유였다.
그러나가난하다고 해서불행해야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 또한
엄마 아빠의 선택이었고
엄마 아빠의 연약함이었을 뿐이다.
답습하고 싶지 않다면
답습하지 않아야 한다.
다른 방법은 없다.
이대로라면
더 많이 가진 채로도
더 불행한 삶을
살 수 있다.
내가 보아왔고
느껴왔던 그 불행을
매번 기꺼이 반복한다면
나는 결국
더
불행한 사람이
되고 말지도 모른다.
이제
깨뜨려야만 한다.
익숙함의 감옥으로부터,
나를 지켜준다고 믿었던
안전한 공식으로부터
그렇게 나는 뚜벅뚜벅
걸어 나갈 것이다.
가난이라는 이름의
두려움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