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느낀 소외감의 정체
극적인 소외감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나를 제외한 세계가
단단하게 결속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
그 단단한 세계로부터 나만 떨어져 나와
겉돌고 있는 것 같은 깊은 소외감이
마음을 뒤흔드는 날들이 있다.
그런 날들이야
어쩌다 하루.
나보다 저들이 더 가깝다 느껴질 때,
나는 결코 낄 수 없을 것 같은
견고한 무리를 마주할 때
소외감은 퐁 하고 튀어 오르곤 했다.
그러나 애써 해결하려 하지는 않았다.
그냥 하룻밤 자고 나면,
아니 며칠만 지나고 나면
지나갈 감정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그들이 아니더라도
나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자신감이
그런 취약성으로부터 나를 지켜주곤 했다.
그러나 외국에 살면서
그 소외감은 점점 더 선명해졌다.
외국이라는 특수성은
사람들을 지나치게 빠르게 가깝게 만들었고,
이유를 불문하고 단단한 그룹이 되게 만들었으며
그만큼 그 그룹에 들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더 배타적으로 작용했다.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이미 만들어진 한인 그룹에
썩 잘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 그룹들에는 나름의 기준이 있었고
나는 묘하게 그 기준을 조금씩 빗겨 나 있었다.
유학생에 끼기에는 나이가 많았고
주재원에 끼기에는 공부를 하고 있었으며
엄마들 모임에 끼기에는
삶의 리듬이 달랐다.
이렇게 저렇게 교묘히 비껴 나며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혹은 일부러 속하지 않은 채
나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시간이
벌써 5년이 넘었다.
외로운 순간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나를 버리고
그 그룹에 어울리는 사람이 될 수는 없었다.
끼고 싶었지만
아무 곳에나 끼고 싶지는 않았고,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싶었지만
그것이 그저 ‘누군가’이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나와 마음의 결이 맞는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한국에서도 어려울 일을
프랑스에서 이루겠다는 생각은
어느새 포기에 가까워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애매하게 한 그룹에 속하게 되었다.
이 사람들과 나는 잘 맞을까,
오래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할 틈도 없이
어쩌다 보니 단톡방 안에 들어가 있었다.
묘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어느 그룹에 속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안전한 느낌을 주는 일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무언가를 조심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했다.
살금살금,
조심조심,
관계를 이어가던 중
균열이 생겼다.
무리 중 한 사람,
기존의 질서와
암묵적인 그룹의 규칙을
중시하던 한 사람으로부터
묘한 배제감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다시 한 걸음 물러섰다.
익숙한 감각이었다.
그룹이라는 것은
나와 그다지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내 문제일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붙었지만
크게 요동하지는 않았다.
단톡방에서는 여전히
화기애애한 대화가 오갔다.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스쳤지만
그것만큼은 참아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까지 회피하는 것은
정말로 ‘내가 문제’라는 증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 문제일 수도 있고,
구조의 문제일 수도 있고,
다름을 받아들이지 않는
그룹의 문제일 수도 있었다.
나는 단톡방에서
유일하게 침묵하는 일인이 되었다.
도망치지는 않겠다.
그러나 반응하지도 않겠다.
그렇게 마음을 정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모두 떠날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시간을 앞당겨 미리 잊히는 일은
별로 힘들 일도 아니었다.
그런 내가 흔들린 순간은
그들이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단톡방에 올린 한 장의 사진 앞에서였다.
같이 식사하자는 제안은 받았지만
정중하고 따뜻하게 사양했었다.
느껴지던 미묘함을 안으면서까지
그 자리에 나를 두고 싶지 않았다.
마침 아이가 아팠고
시험 기간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내 소중한 시간을
암묵적인 메시지를 해석하는 데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자려고 누웠다가 우연히 보게 된,
단톡방에 올라온 그 단체 사진 앞에서
나는 어쩐지 조금 외로워졌다.
내가 문제일까.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나는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일까.
반짝이는 그들의 웃음 사이로
나의 슬픔이 찰랑였다.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
아무도 원하지 않는 사람이 된 것처럼
마음이 한없이 차가워졌다.
채팅창을 닫았지만
일렁이던 마음은
쉽게 닫히지 않았다.
한 사람의 제스처에
한 걸음 물러섰을 뿐인데
그 사진 한 장 앞에서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멀어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마치 우주의 무게 중심이 나에게서 그들에게로
몇 걸음 옮겨간 것처럼
그렇게 쓸쓸히
이미 쏠려버린 무게추를 직시하며
홀로 빈 공간을 지키려 애쓰고 있었다.
모든 것이
그대로 멈추었고
아무런 수정도
아무런 발전도 없이
그 감정이
그대로 내 속에
굳어져 갈 무렵,
그들 중 한 사람을 만났다.
유난히 내게 살가운 사람이었다.
둘이서 만나자는 제안 앞에
만나고 싶은 마음과
피하고 싶은 마음이
내 안에서 부딪쳤다.
곧 떠날 사람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굳이 인연을 이어야 가야 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를 댔지만
그 이면에는
다시 상처받을까 두려워
물러서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쪽으로 쏠려버린 무게추를
조금이라도 내게 돌려올 수 있을까
아니 고개를 저었다.
돌려올 수 없는 무게 추라면
기쁘게 힘을 실어주고
털어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못 이기는 척 나간 그 만남에서
나는
나를 외롭게 만들었던
그들의 식사 자리가
얼마나 곤욕스러웠는지에 대해
듣게 되었다.
웃음이 가득한 사진 뒤에는
미묘한 분열과 긴장,
피로가 있었다.
오지 않은 것이 오히려
지혜로운 선택이었다는 말과 함께
그 사람의 눈가에 남은 피로를 바라보며
나는 묻는다.
내가 보았던 그 '반짝임'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느꼈던 그 쓸쓸함
우주의 무게 중심이 그들 쪽으로 바짝 옮겨간 것 같았던 그 느낌은
진실로 무엇이었을까?
내 눈에 반짝여 보이던 그 순간이
그들에게는 어려움의 순간이었을 수 있다는
그 발견은 생경한 것이었다.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받아들인다.
모든 것이 착시였다는 것을.
내가 본다고 믿었던 것들,
그들에 대해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
섣불리 내렸던 결론들,
그 모든 것이
내 안에서 비롯된
착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내 안에 조용한 평화를 가져온다.
보고 싶은 대로 보고야 마는
인간의 연약함,
그 해석으로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넣는
완고함.
내가 가진 문제가 있다면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바로 그 경향성일 것이다.
그제야
오래 묶어두었던
의심으로부터
나를 놓아준다.
도무지 풀 수 없을 것 같던
나에 대한 오해의 끈을
놓아버린다.
그룹에 끼지 못해도,
많은 사람에게 환영받지 못해도
괜찮다.
실제와 다른 장면을
기어이 만들어내며
스스로를 아프게 하지 않아도
괜찮다.
반짝임은
찰나일 뿐.
그리고
그 찰나의 반짝임 가운데
대부분은
나의 착시에 지나지 않음을
기억하려 한다.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은
우주의 중심을
기어이 그들에게로 밀어주며
변두리로 가지 않으려 한다.
연약한 인간,
착시를 기어이 가져야만 하는 거라면
그들의 세계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이 순간 속에서
찾아내리라.
내 삶을 그렇게
반짝임으로 채워보리라.
그렇게 나는 작디작은 나를
조금 더 끌어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