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하는 마음으로부터의 자유

나는 더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by 마리앤느

내 마음을 흔드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반들반들 빛이 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내가 가지지 못한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었다.


처음 그녀는 화사하게 웃으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나는 경계 없이 나에 대해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 친해지는 과정이라 여겼지만, 그것이 내 착각임을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묘하게 우월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가진 것—부유함, 남편의 학벌과 직장, 외모, 집 평수, 여행, 명품—으로 교묘하게 나를 자신의 발아래 두려 했다. 그녀를 마주할 때마다 기운이 빠졌고, 그런 것들이 없어 초라하게 느껴진 나 자신이 미웠다.


그녀가 미웠다. 그녀가 자랑하는 것들을 다 떼고 인격으로 마주하면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갑옷으로부터 걸어 나와 나와 일대일로 붙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나는 흔들리는 나 자신이 미웠고, 그런 나를 즐기는 듯한 그녀의 눈빛에 분했다.



일부러 만나는 일은 줄였지만 계속해서 마주쳐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마주칠 때마다 일렁이는 마음은 마주치는 순간에만 반응하지 못하고 하루 온종일 나를 그 감정에, 그녀의 시선에 묶어두곤 했다.


예컨대, 일상 속에서 운동을 하면서 혹은 불어 공부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불쑥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그녀는 결코
나처럼 이렇게 열심히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 부분에서만큼은 내가 더 우월하다.


그럼 어쩐지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가 자랑하는 것은

그녀 자신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주로 그녀의 남편 혹은 자녀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나에 대해서 그녀에게 우월감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그녀보다 열등한 사람이라면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거기까지 생각이 닿으면

휴우, 하고 체증이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종종 틈만 나면 홀로 끌어모았던 우월감은 그녀를 실제로 마주치는 순간 산산이 부서졌다.


그녀의 세계는 견고했고

그녀는 늘 반들반들했으며

그런 반들함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늘 무리 지어 다니곤 했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일상 속에서

그녀는 결코 나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터였다.

내가 그녀에 대해 생각하고 견제하는 것에 비해서 말이다.


생각이 거기에 닿으면

더더더 초라한 느낌이 들곤 했다.



그렇게 그녀는

너무나 쉽게 내 자존감을 끌어다

자신의 자존감으로 삼곤 했다.


정말로 능수능란하게

그녀는 나의 열등감을 사용해서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 줄 아는 사람 같았다.


도무지 이길, 방법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나는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덮어두고

몇 년을 흘려보냈다.


그 사이 대학에 다시 들어가 공부를 시작했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

하루하루를 견뎌냈다.

바쁜 일상에 마주칠 일도 점점 줄어들었고,

그녀에 대한 생각도 점점 희미해져 갔다.

더는 그녀와 나를 비교할 겨를도 이유도 없었다.

그런가 하면 선택한 길을 묵묵히 살아내면서,

나는 조금씩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공부는 힘들지만

종종 뿌듯함을 안기는 일이었다.

아슬아슬 힘들게 하나를 마칠 때마다

나는 내가 조금씩 더 좋아졌다.


이대로도 충분하다는 느낌이

이대로도 훌륭하다는 느낌이

내 안에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했다.


더는 내가 이러니 그녀보다 낫다 같은 비교가

필요 없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이미…

내가 여기까지 걸어온 그 모든 여정을.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렇게 나는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나를 견고하게 세워갔다.


그러나 내가 이토록 견고해졌구나 하는 것은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하루는 우연히 그녀를 길에서 마주쳤다.

이제 두 돌이 된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며 내게 말을 걸어오는 그녀에게 나 역시도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녀를 볼 때면 불에 댄 듯하던 마음이 한결 나아져 있었다. 시간의 힘이었을까?


아이를 보며, 많이 컸다고,

이제는 말도 곧 잘하겠다고 안부처럼 건넨 한마디에

처음으로 그녀의 표정에서 미세한 경직됨을 보았다.

아... 네.... 하고 말을 줄인 그녀는

서둘러 대화의 소재를 바꾸었다.

곧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간다고 했다.

그녀의 얼굴은 그제야 다시 반들반들해졌다.


나중에야 그날 그녀가 경직되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말이 느린 아이를 바라보는 그녀의 마음은 갑갑했던 차였다.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그 두려움을 가리기 위해 그녀가 선택한 것은

그녀가 자랑할 수 있는, 아니 사실은 그녀가 자신의 초라함을 숨길 수 있는 대상 '넓은 집’ 이야기로 도피하는 것이었다.


그제야 그녀가 보였다.

그녀가 자랑하는 그 모든 것들은 사실

그녀의 작고 초라한 자아를 숨기기 위해

그녀가 사용하는 도구들이었을 뿐이었다.


마치 갑옷처럼

연약한 스스로를 감추기 위해 덮고 또 덮는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반들반들해 보였던 그녀가

갑자기 작고 약해 보였다.


그리고 나서야 내가 보인다.


지금은 보이는 이 모든 것들이

왜 그땐 보이지 않았을까.



그때의 난

그녀만큼이나 작고 초라한 자아를 가지고

그녀만큼이나 그것을 가릴 무언가를

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네가 자랑하는 모든 것들을 다 떼고

너와 나로 마주하면이라는 전제를 달며

내가 너보다 나아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한 번도,

내가 그녀와 비교되어야 할 이유가 없는

이 자체로도 충분한 사람이라곤

여긴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녀가 던지는 돌에

늘 마음이 일렁였던 까닭은

내가 이런 대우를 받는 것이

그녀가 가진 그 갑옷을

가지지 못해서라 믿었기 때문이었음을

그 믿음이 나를

더욱 취약하게 만들었던 것임을 깨닫는다.





요즘 나는 그녀를 가끔 한 번씩 만난다.


그녀는 여전히 내게 자신의 갑옷을 자랑한다.

그러면 나는 참 유쾌하지 않은 대화군 생각하며 들어준다.


마치 어느 가수의 노래 가사처럼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나는 괜찮아, 전혀 부럽지가 않아”라고 되네이며.


그러나 더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나에겐 더 이상 갑옷이 필요하지 않다.

나는 힘들게 공부하는 이 여정을 통해서

조금 더 나를 사랑하게 되었고

지금 내 삶으로도 충분하다 여기게 되었다.


남의 것을 가져다 나의 것으로 삼지 않고

내가 걸은 만큼만 나의 것이라 여기며

계속해서 나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이것으로도 충분하다 여기며.



그런데

내가 그녀가 던지는 돌에 흔들리지 않자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


그녀가 더 이상 내 앞에서 자랑하려 들지 않는다.

자랑을 하더라도

적어도 나를

자신의 발아래 두려 하지는 않는다.

이래도 저래도 흔들리지 않는 내 앞에서

도리어 자신의 불안과 두려움을 슬며시 꺼내놓기도 한다.


관계의 역학이 완전히 달라졌다.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달라진 것은 그녀가 아니다.

달라진 것은 내가 나를 대하는 태도다.


그 작은 변화가

나의 가장 강한 갑옷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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