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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앤느 Nov 18. 2020

그리운 할머니의 온돌방

추위를 이겨내게 하는 할머니 사랑의 신비

외국에 살면서 한국이 가장 그리운 순간은?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나는 찬바람이 슬슬 불어오면 어김없이 한국이 그리워진다.


집에 돌아가던 길목 횡단보도 앞, 겨울이면 어김없이 생겨나던 작은 포장마차들, 김이 솔솔 피어오르는 아직 따끈따끈한 어묵꼬치 하나와 국물 한 그릇이면 꽁꽁 얼 것 같던 마음까지도 쉬이 녹아내리곤 했다. 어느 날 아빠가 품에서 꺼내 스윽 내밀던 종이봉투 속 아직 따뜻했던 붕어빵 몇 마리도 내겐 겨울의 기억이다. 따뜻한 걸 주려고 막 구워낸 걸로 것도 가슴팍에 넣고 달려오는 바람에 그만 다 뭉개지고 말았지만 말이다. 쌀쌀해지면 편의점에서 쉬이 살 수 있었던 따뜻한 음료들, 그걸 주머니에 넣고 손으로 꼭 움켜쥐고선 나를 만나러 왔던 앳되었던 남자 친구(지금의 남편)에 대한 기억도 덤으로 떠오른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아련하게 그리운 것은 바로 할머니의 따뜻한 온돌방이다.



이제 여든을 훌쩍 넘겨 아흔을 바라보시는 할머니는 김천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내가 살아온 세월보다도 더 오랜 세월을 견뎌온 낡은 흙집에서 지내고 계신다. 어릴 적부터 대구에서 자란 나는 방학만 하면 할머니 집에 몇 주씩 가 있곤 했다. 할머니라는 존재 자체가, 여러 자식을 길러내면서 어차피 자식은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니 구나를 이미 인생으로 깨달으신 분들이기에 그 자식의 자식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으로 관대한 면이 있다. 내가 뭘 잘해서 예쁜 게 아니라, 내 새끼의 새끼라서 나는 네가 그냥 마냥 예쁘다 해 주시는 할머니의 너른 품은 그래서 언제나 따뜻한 것이었다.


내가 7살이 다 되도록 할머니는 나를 보면 무조건 허리부터 내미셨다. 그렇게 이미 다 큰 내가 할머니 등에 업혀서 동네는 고사하고 마당 한 바퀴라도 돌고 나면 괜스레 우쭐해졌다.   온 천하가 내 발 앞에 엎드린 냥 나는 그렇게 자신만만해지곤 했다. “할머니” 하고 부르면 “오야 오야 내 새끼” 하고 대답하는 할머니. 생각해 보면 나에게 할머니 집은 대체로 그런 공간이었다.




엄마 아빠가 돌아가신 뒤에는, 신기하게도 할머니 집에만 가면 나는 아팠다.


홀로 감당해내는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던 탓인지, 그걸 홀로 감당하느라 힘들다는 티를 할머니에게만은 내고 싶었던 건지, 할머니 집에만 가면 먹은 음식이 체해서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거나, 갑자기 두통이 심해져서 방 한 구석에 끙끙대며 드러누워 있곤 했다. 그리고 추운 겨울이면 유독 더 심하게 병치레를 했다.



그러면 할머니는 바빠진다. 성그런 방을 따뜻하게 데우려 연탄을 몇 번이나 갈고, 매실 액기스니 보리차니 밥 삶은 물이니 내 앞에 대령해 온다. 그러곤 차디 찬 내 손을 만지고 또 만져준다. 밤이고 새벽이고 연탄불 꺼질까 종종 하시며 자다가도 일어나 연탄을 갈던 할머니의 그 인기척.



문이 드르륵 열리고 자박자박 할머니의 걸음 소리가 들린다. 기침을 흠흠 하며 연탄을 갈고는 다시 자박자박 걸어서 드르륵 문을 열고 방에 들어온다. 내 이불을 다시 덮어주고는 괜스레 내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애처로운 표정을 숨기지 못하던 그 할머니. 나는 아픈 중에도, 눈을 감고 잠들어 있는 중에도 그 할머니를 모두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할머니가 나를 그렇게 돌보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는 게 참 좋았다.



그 뒤로도 언제고 내가 갈 때면 아침부터 아랫목에 이불을 깔아놓고는 “앉아라. 여기에 앉아라. 내가 다 데펴놨다” 하시던 할머니. 그 아랫목에 앉으면 엉덩이가 뜨거워 이리저리 몸을 비비 꼬면서도 결코 윗목으로 올라가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거기에 앉아서 할머니가 까주시는 귤을 먹고 있으면 서른도 넘긴 나이는 어딘가로 사라지고 다시 7살 어린이가 된다. 다시 한번 우쭐함이 내 가슴에 차오른다. 따뜻한 온돌방의 온도 때문인지, 할머니의 변함없는 사랑 때문인지 더없이 내 마음은 따뜻해지곤 했다.



그래서였을까. 오늘 아침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몸을 움츠릴 정도로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자 나는 할머니의 그 따뜻한 온돌방이 떠올랐다. 그리움이 가슴에 가득 차 올랐다.



추운 날씨에 난방이 한국 같지 않은 프랑스 추운 집에서 옷을 몇 겹씩 껴입고 살아가는 일상이 피곤해서였을까. 아니면 언제고 내게 등을 내밀며 업어 동네 한 바퀴 휘 돌아줄 사람이 하나도 없는 타국에서 살아가는 삶이 고단 해서였을까.  연세가 많은 그 할머니가 지구의 저 반대편 멀리에 있다는 사실이 그래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불현듯 실감 나서였을까.



나는 그렇게 괜스레 할머니 집 아랫목을 떠올려본다. 엉덩이가 뜨거워 이리저리 몸을 굴리면서도 결코 윗목으로 물러나지 않고 할머니 품을 누리던 그 시간들을. 추운 계절이 더 따뜻하게 기억될 수 있었던 할머니 집의 신비를, 그 추억을 곱씹으며 이 춥고 축축한 프랑스의 겨울을 또 하루 이겨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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