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앤느 Jan 21. 2021

“엄마는 왜 아무것도 안 됐어?”


20대 때, 편집자로 일하던 시절에 무척 좋아했던 글이다. 이 글은 실제로 엄마와 아이들의 대화를 그대로 모은 ‘마주이야기’라는 책에 포함된 글이다. 한 작곡가가 아이들의 재치 넘치는 표현들에 반해 이 글들에 곡을 붙여 동요로도 만들었는데 글도 노래도 참 재미있다.


그 당시 나는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아이도 낳아보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니 이 책을 읽으면서 당연히 엄마보다는 아이에게 더 많이 이입이 되었다.


아직 초등학교도 가기 전인 아이에게, 하버드 대학교를 운운하고 받아쓰기를 안 하면 나중에 커서 아무것도 안 된다고 겁을 주는 엄마에게  “그러는 엄마는 공부 잘했어? 그런데 왜 아무것도 안 됐어?”라고 말하는 아이들의 그 솔직함과 당돌함이 왠지 좋았다.


내가 평생 그렇게 내 생각을 누군가에게 말하지 못하고 꿍꿍 참으며 살아왔기 때문이었을까? 이 글을 읽으면서, 언젠가 내가 낳을 아이들은 이렇게 자랐으면 좋겠다고, 눌러도 눌러지지 않고, 밟아도 밟히지 않고 어디서나 기죽지 않는 당당함을 가진 아이들로 그렇게... 자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학교로 이직을 했고, 결혼을 했다. 그리고 결혼을 한 지 1년이 막 지날 때쯤, 미루지 않고 아이를 가지기로 남편과 결정했을 때 학교도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꼭 그래야만 하는 건 아니었다. 육아휴직을 낸다거나, 어린이집을 보낸다거나 하는 등등의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친정엄마는 돌아가셨고, 시어머님은 퇴직 전이시니 아이를 함께 돌봐줄 사람이 없는 탓도 있었고 그러나 무엇보다도 엄마를 일찍 여의면서 삶의 가치관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물론 일을 하면서도 좋은 엄마가 될 수 있겠지만, 나는 둘 다 잘할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하는 모든 날들이, 엄마를 그리워하며 아팠던 날들에 대한 보상처럼 나에게 반짝반짝 아름답고 따뜻한 날들일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직장을 내려놓고,

일하는 여성이라는 나름의 자부심도 내려놓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러나 아이를 기르며 지내온 시간들이 늘 따뜻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늘 반짝반짝 아름다웠던 것도 아니었다. 어떤 날은 정말 이게 직장이면 사표를 열 번도 더 냈겠다 싶을 정도로 힘들었고, 또 어떤 날은 아무리 애를 써도 잘 해낼 수 없고 그 애씀도 아무도 몰라주는 것 같아 쓸쓸한 마음을 끌어안고 수도 없이 뒤척이기도 했다.



둘째가 태어난 뒤, 맘충이라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새벽같이 일어나 아이들이 잠들 때까지, 아니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도 끝나지 않는 집안일들을 감당하며... 누구에게 칭찬들을 것도 없이 그럼에도 내 모든 걸 쏟으며 치열하게 살고 있는 날들인데도....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만들어 놓은 그런 단어들 앞에 서면 내 삶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져 이상하게 위축이 되곤 했다.




육아의 시간은 나를 잘게 부수어 내고 잘게 갈고 갈아서 그 모든 걸 쏟아, 한 생명을 길러내는 거대하고도 막중한 날들이었다.


언제든 아이가 웃거나, 걷거나, 말을 하거나 아이가 이루어내는 모든 공은 아이에게로 돌리고, 아프거나, 울거나, 어려움을 겪으면 그 모든 책임은 나에게로 돌리게 되는 이상하고도 애틋한 시간이었다.


“너 때문에!!!”라고 탓하고 싶은 순간마다 다시 화살을 돌려 “나 때문에”로 만들고 “내 덕분에”라고 우쭐되고 싶은 순간마다 “네 덕분에”라고 공을 돌리게 되는...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진리, 다 주고도 지고야 마는 부모의 겸손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그것이 잘 되지 않는 밤마다 잠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울었고, 기도했다. 내일은 조금 더 사랑해주겠노라고, 조금 더 품어주겠노라고...나는 조금 더 나를 내어주고 너는 조금 더 자라나는 날들이기를 그렇게 기도했다.



그 모든 시간을 통해서,

그 눈물과 간절함과 기도를 통해서,

나는 조금씩 엄마가 되어 갔다.


호칭으로서의 엄마가 아니라 존재로서의 엄마로.


.








이제는 아이들이 많이 자랐다.

내가 좋아했던 그 책을 아이들도 좋아하고, 이제는 지들이 가사를 읽고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아무런 의도 없이 아이들이 신이 나서 부른 노래의 한 가사가 가슴에 와서 쿡 찌른다.


“그런데 왜 엄마는 아무것도 안 됐어?”



엄마가 되기로 결정했고, 선택했지만 사실은 다른 것도 되고 싶었던 내 숨겨진 욕구가 건드려졌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걸 선택하고도 맘충이라는 말 속에 담긴 세상의 시선이 때로 아팠기 때문일까.. 왠지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그러나 후회하지 않는다. 나의 선택을.

다시 돌아가서 선택한다 해도 나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너를 위해, 아니 우리를 위해 나를 주며 나아온 그 시간들을. 그 무엇이 아닌, 너희의 엄마가 되어 살아온 그 세월들을.




언젠가 정말로 그 질문 앞에 서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나에게 순수한 눈빛으로 세상 가장 화려한 직업들 사이에 나를 세워 두고 물을 지도 모르겠다.



“엄마 그런데 왜 엄마는 아무것도 안 됐어?”


그럼 나는 아마도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엄마는 말이야,

 꿈꿀 수 있는 그 모든 것들 가운데 너의 엄마가 되기로 결정했단다.

 그리고 그건 정말로 행복한 시간이었어.

 나는 너를 기르며 참 많은 것들을 배웠단다.

 너와 함께 자라온 그 시간들은 때론 힘들었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시간들이었어.

 그리고 앞으로도 엄마는 너의 곁에서 너의 엄마로

 오래오래 살 거란다.


 그리고 얘야 잊지 마렴.

 인생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은 없다는 사실을...

 엄마는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너의

 가장 아름다운 엄마가 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그건 참으로 아름다운 선택이었다는 사실을...

 그러니 너도 아름다운 너의 삶을 살거라...

 엄마가 늘 너를 응원한다는 걸 잊지 말고.

 아가야 사랑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들이 내게 상처를 말할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