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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앤느 Jan 29. 2021

엄마를 닮아서 그렇지

"밤에 자기 싫어하는 건 정말 나 닮았어."

"이렇게 정리 안 하는 건 정말 자기 닮았다니까."

"내가 난시가 심하잖아.. 쟤는 나 닮아서 눈이 나쁜 거 같아."



아이들을 기르면서 마음에 안 드는 모습들을 발견할 때면 나는 별생각 없이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 원인을 나에게서 혹은 남편에게서 찾아내고서야 '그러니 그럴 수밖에' 하곤 마지못해 수긍하며 아이의 불편한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반대로 아이에게서 너무 사랑스럽고 예쁜 모습들을 볼 때면 나는 나도 모르게 이런 감탄사를 연발하곤 했다.

 

"어머 어쩜 이런 아이가 내게로 왔을까?"

"너는 누굴 닮아서 이렇게 사랑스럽니?"


그러나 이것은 의식적인 것은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나오는 무의식의 영역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엄마가 그림을 그리면 옆에 앉아서 따라 그림을 그리고, 엄마가 글을 쓰면 옆에 앉아서 따라서 글을 쓰는 아들이 자기가 쓴 글을 들고 와서 내게 읽어 주었다.


그 하는 냥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푸웃 하고 한 번 웃고는 열심히 들어주었다.


고물고물 내 품에 안겨 있던 아이가 언제 이만큼 커서 자기가 쓴 글이라며 엄마에게 들려주는지 그 감회가 새로워서, 새삼 감동이 밀려와서 반짝이는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어머 너무 재미있다.

우리 아들은 어쩜 이렇게 글을 잘 써?"


어떤 의도도 담기지 않은 그 말 앞에 아들이 멋쩍게 웃으며 그러나 뭘 당연한 걸 묻냐는 듯 대수롭지 않게 한 마디를 덧붙인다.



"아 그거? 엄마 닮아서 그렇지!"



그 한마디 말에 또 눈물이 맺히고 말았다.


나는 너를 보면서, 내가 가진 약점들, 안 좋은 점들이 네게서 발견될 때마다 그게 안타깝고 속상하고 미안하고 그랬는데 너는 너에게서 좋은 것들을 찾을 때 거기서 엄마를 발견하는구나...


그게 더없이 고마워 한참동안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어린 시절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에 하나가 그 말이었다.


"지 아빠 닮아가지고..."


엄마는 늘 모든 관계에서 참는 사람이었다. 맞대어 싸우거나 하는 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사람들은 엄마를 천사 같았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엄마의 나이만큼 살아가면서 어려운 순간에 부딪칠 때마다 엄마를 헤아려 보게 된다. 그렇게 속 없는 사람처럼 받아주며 살다 보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병이 안 날 수가 없었겠다...  이제 와서는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엄마가 너무 부치고 힘이 드는 날이면, 게다가 그런 날 내가 눈치 없이 엄마 말을 안 듣기라도 하면 못 참고 내게 독을 쏟고야 말았는데 그게 바로 저 말이었다.


그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닮겨있었다. 너는 너의 아빠를 닮았다 그리고 그것은 좋지 않은 일이다.


아주 어릴 때는 그 말을 들으면 슬펐다. 또 엄마를 속상하게 했구나... 그런데 조금 크고 나서 사춘기가 될 무렵에는 도리어 그 말을 이용해서 엄마에게 반격을 가하기도 했다.


"왜? 이게 왜 내 잘못이야?

다 아빠 닮아서 그런 거잖아?"


그러면 엄마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나를 한참 흘겨보다 에휴 하고 마셨다.


그래서였을까.

심하게 사춘기를 앓던 무렵에는 굳이 나에게서 엄마아빠를 닮은 안 좋은 점들을 찾아내고 그런 나를 마음에 안 든다고 여기기도 했다.


얼굴은 엄마를 닮았어야 했는데 아빠를 닮아서 안 좋다, 성격은 엄마를 닮았어야 했는데 아빠를 닮아서 안 좋다, 키는 아빠를 닮았어야 했는데 엄마를 닮아서 안 좋다....


한 번 시작된 이런 생각은 끝이 없이 나열될 수 있었고 그리고 그런 이유로 내 자신이 왠지 조금 부족하게 지어진 사람 같은 느낌으로 귀결되곤 했다.






그런 내게 아들이 말해 줬다.

내가 너무 신통방통 예쁘고 사랑스러워 던진 한 마디 앞에


"이거? 엄마 닮아서 그렇잖아"라고.



엄마를 닮아서 이래 하고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엄마를 닮아서 이렇게 잘해 하고

뿌듯하게 웃는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아들의 그 말이 내 가슴으로 날아와

엄마를 닮아서, 아빠를 닮아서 하며 내 부족함과 연약함을 노려보며 원망하고 움츠러들던 어렸을 때의 나를 꼬옥 끌어안는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엄마를 닮아서 아빠를 닮아서

그래서 이렇게 태어난 너 그대로도 충분하다고

나를 도닥이는 위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러고 보니

어쩌면 엄마에게도 그런 말이 필요했을까?


"엄마, 나 엄마 닮아서 이렇게 잘 하잖아."

"엄마, 나 엄마 닮아서 이렇게 사랑스럽잖아."

"엄마, 나 엄마 닮아서 너무 좋아."


아들처럼 내가 엄마에게 그 말을 해 줬더라면

어쩌면 엄마도 나처럼 눈물 한 방울 흘리며

그 따스한 환대에 힘을 얻고 엄마 자신을 더 많이 사랑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세월이 많이 흘러 엄마의 나이가 되고서야

엄마를 가슴으로 끌어 안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슬프게도 엄마는 그곳에 없다.



안아드릴 수도,

따스한 말 한 마디 전할 수도 없지만


마음으로라도 엄마에게 다 하지 못한 그 말들 품고

이렇게 엄마 아빠 닮아 예쁜 딸로 낳아줘서 고맙다고, 엄마가 내 엄마라... 그래서 참 고맙다고,  

그렇게 말하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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