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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앤느 Feb 01. 2021

아들의 사랑고백

아이들은 하루 종일 엄마와 함께하고도 엄마에게 할 말이 참 많다.

특별히 주말이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들려오는 "엄마~~~"하고 부르는 소리.


"응?" 하고 다정하게 대답하려고 노력하지만 부르는 횟수가 누적되어 가는 저녁 무렵이면 '또 무슨 일인데?' 하는 마음을 꽉 눌러 담아 낮고도 짧게 "왜?" 하고 건성으로 대답하기도 한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긴긴 하루를 보냈고, 조금은 지친 몸과 마음으로 저녁 설거지를 하러 주방에 들어섰다. 유후~ 이제 이 설거지를 마치고 나면 잠을 잘 시간이 다가온다... 고로 나의 이 긴 하루도 마쳐간다 하는 생각에 콧노래가 나오기 시작한다. 역시 하루의 마무리는 음악과 함께지... 하며 노래를 틀어놓고 주방에서 설거지를 막 시작하려는데 때마침 어디선가 들려오는 



"엄마~~~~~" 하는 외침.



누가 나의 이 달콤한 혼자만의 설거지 시간을 방해하는가.... 그건 바로, 주방과 가까운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 있던 아들이었다. 궁금한 것도 많고, 알고 싶은 것도 많고 그래서 늘 말이 그치지 않는 아들. 그 아들은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도 그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 엄마를 부른다.


음악소리에 물소리에 시끄러운 주방인데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 하고 부르니, 또 무얼 물으려고 그러나... 화장실에선 집중해서 볼일을 보고 나와서 말하지.... 하는 한껏 귀찮은 인간 엄마의 마음을 뒤로한 채 "응?" 하고 대수롭지 않게 답할 수밖에.


그런데 들려오는 답변이 "사랑해~~~~"였다. 


가슴이 쿵! 웃음이 풋! 

귀찮은 마음은 어느새 저 멀리 사라지고 미소가 번지고 말았다.

졸졸졸 흐르는 설거지 물소리를 거슬러, 울려 퍼지는 음악소리를 거슬러 "나도~~~~"하고 답한다.



그런데 또 "엄마~~~~"

어느새 귀찮은 마음은 사라지고 기쁨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빨리 해치워버리리라 하던 마음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잠시 물을 끈다. 아무도 방해하지 말거라 하며 틀어두었던 노래도 잠시 끈다... 싱긋 웃으며... "응?" 하고 대답하자,

"사랑해~~~~"

"아들 나도 사랑해~~~"


또다시 "엄마~~~~"

아들 목소리 놓칠라 물 살살 틀어놓고 이번에는 더 활짝 웃으며.. "응 아들아"

"사랑해!!!!!"

"나도 많이 사랑해!!!"


열 번쯤 반복했을까... 


그래도 엄마인데 질 수야 없지 하며 "아들아!!!"

깔깔 웃으며 "왜?"

"사랑해~~~~"

"나도~~~~"


또다시 한 열 번쯤 반복했을까...

말하고 또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하고 또 말해도...

듣고 또 듣고 또 들어도...

듣고 듣고 또 들어도...


너무나 좋은 그 말.

너무나 듣고 싶은 그 말.


설거지하는 엄마도, 응가하는 아들도

욕실에서 목욕 중이던 딸아이도 그리고 씻겨주던 아빠도 모두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 차는 저녁.

순수한 아들은 변기 위에 앉아서 응가 향기와 함께 온 집안에 사랑 폭탄을 터뜨렸다 : )



며칠 전, "사랑한다는 말은 특별할 때 쓰는 말이야"라고 동생에게 알려주던 아들에게 지나가면서 한마디를 했었다. "아니야, 그렇지 않아, 사랑해, 고마워, 좋아해, 힘내... 이런 말들은 많이 할수록 더 좋은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 많이 많이 아낌없이 그런 말들을 하며 살자"라고.



엄마의 그 말을 잔소리로 흘려버리지 않고, 

오히려 들은 대로 사는 아들의 그 순수함 앞에 또 잠시 나를 돌아보게 된다.


응가와 사랑고백ㅋㅋ

별로 로맨틱한 조화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저녁은 재미있고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행복은 크기가 아니라 빈도라는데,

이 작고 소소한 일상이 또 한 번 우리에게 행복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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