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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앤느 Feb 05. 2021

엄마는 날마다 기적을 행한다

아들의 숙제를 도와주던 어느 저녁이었다.

평소에는 숙제라고 할 것도 없이 간단한 것만 내주는 프랑스 학교가 웬일인지 그날은 질문이 적힌 종이 한 장을 보내왔다.


어디서 태어났어요?

여가 시간에는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요?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뭐예요?

.

.

.



이렇게 아이의 마음을, 인생을 엿보는 질문들이 적혀 있었다.


프랑스어를 이제 대체로 알아듣고, 이해하지만 아직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건 어려워하는 아들을 위해 엄마가 나섰다. 하나씩 한국어 질문으로 바꿔서 아들에게 묻고 또 아들이 답하면 그걸 프랑스어로 함께 문장으로 만들어 보며 찬찬히 함께 해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



“만약에 당신이 지금 내 나이가 된다면, 그때 어떤 음식이 가장 그리울 것 같아요?”



선생님이 던진 마지막 질문은 참 새로웠다. 나이가 들어서 어린 시절을 추억할 때 그리움이 밀려올 만큼 지금 좋아하는 음식이 있냐는 그 질문 앞에서 아들은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하더니 씨익 웃는다.


‘간식 대장 아들이 젤리나 초콜릿을 말하려나?

아니면 떡볶이? 짜장면도 좋아하는데...

아니다 치킨인가?‘


아들의 대답을 기다리며 나도 함께 아들의 취향을 되새김질해 본다. 그러나 아들의 답변은 나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음... 나는... 엄마가 해 준 밥.”




나는 깜짝 놀랐다. 아들의 그 시적인 표현에 감동이 밀려오고, 호텔 셰프 수준은 고사하고 동네 분식점만큼의 맛도 못 내는 아마추어 엄마의 밥을 그토록이나 의미 있게 바라봐준 그 마음에 고맙고, 괜스레 마음이 따뜻하고 뿌듯하고 그랬다.



그러나 아들은 그 한마디를 던지고 나서 갑자기 눈시울이 붉힌다.



선생님 나이가 엄마랑 비슷하니, 자기가 엄마만큼 나이가 들면, 엄마 밥을 매일 먹지 못할 것 같다는 게 이유였다. 하늘나라에 가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그리고 살아계셔도 지구 반대편에 떨어져 자주 뵐 수 없는 친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아들은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아직 어리다, 어리다 했더니 어느새 이만큼 커서 이별이 뭔지, 그리움이 뭔지, 그리고 사랑이 뭔지를 나름대로 배워가고 있구나 싶다.



아들을 품에 안고 “엄마는 네 곁에 오래오래 있을 거야. 네가 어른이 돼도 언제든 엄마 밥 줘... 하고 달려오면 엄마가 맛있는 밥 해 줄게. 알겠지?” 하고 도닥인다. 9살이나 된 아들이 9개월 된 아기처럼 엄마 품에 얼굴을 묻고 부비적 대더니 눈만 빼꼼하고 엄마를 올려다본다. 그제 서야 얼굴에 미소가 피어난다.






며칠이 지나 어학원 선생님이 숙제를 내줬다. 나에게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향이나 맛에 대해서 글을 써오라고. 나는 전혀 망설임이 없이 밥의 향기라고 제목을 적었다. 그리고 짧은 글을 써 내려갔다. 물론 불어로.


“밥의 향기, 이것은 나에게 좋은 기억을 불러일으킵니다. 엄마는 매일 아침마다 밥을 지었습니다. 나는 매일 아침밥 향기를 맡으며 눈을 떴습니다. 저녁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가 집에 돌아갈 무렵이면, 엄마는 밥을 준비했습니다. 우리를 생각하면서요. 나에게 밥 향기는 엄마의 사랑이었습니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내가 엄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매일 아이들을 위해 밥을 짓습니다. 나는 매일 밥 향기를 맡을 때마다 엄마가 그립습니다.”



서툰 불어로 써 내려간 그 글을 듣고, 밥 향기가 뭔지도 모르는 프랑스인 선생님이 엄지를 척하고 내민다. 인종도, 나라도 불문하고 엄마의 향기, 엄마의 맛이란 그런 것인가 싶다.


뭐 그리 특별하지 않고, 뭐 그리 화려하지 않은 엄마의 밥은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세상이 흔들리고 코로나가 기승을 부려도 늘 그렇게 수수하게 소소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에 더 힘이 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적고 보니 엄마는 날마다 기적을 행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몇천 명의 병들고 가난한 자들을 먹이신 장면이 나온다. 나는 그 장면을 볼 때마다 신비롭고 경이로웠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한 사람이 먹고도 배부르지 않을 그 음식의 재료 위로 예수님의 사랑이 더해지자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치유하고 회복하는 놀라운 기적이 되었다.



어느 새벽, 이가 약해 씹는 게 힘들어 아침마다 밥을 반 이상 남기고 가는 딸아이가 가여워 소고기 죽을 끓여내다 문득 생각했다. 어쩌면 엄마는 날마다 그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라고 가정으로 보냄 받은 하나님의 천사들이 아닌가 하고.



이 작고 가여운 아이들에게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몇 가지의 재료들 위로 엄마의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기적을 더해 따스하게 먹이고 기르고 살려내는 것, 그것이 엄마의 힘이고 능력이고 기적인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또 무슨 기적을 행해볼까.

오늘 하루도 찬 바람 부는 세찬 들을 쏘다니며 인생을 탐험하고 돌아올 작은 새들을 품에 맞으며 어떤 향과 어떤 맛을 선물할까.


그렇게 나는 오늘도 오병이어의 작은 기적을 행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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