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앤느 Jan 18. 2021

아들이 내게 상처를 말할 때

토요일, 모처럼 아이들과 함께한 하루였다.


아침엔 갑자기 눈이 펑펑, 파리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에 아침부터 아이들을 옷을 단단히 입혀 나갔다. 나가 보니 눈이 괜히 내리는 게 아니다 싶었다. 매섭게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잔뜩 움츠릴 정도로 추웠지만 신이 난 아이들의 흥을 깨뜨리고 싶지 않아 그저 아이들 주변을 빙빙 돌뿐. 그렇게 한 시간 가량 눈을 맞으며 눈사람을 만드는 아이들 옆에서 내가 정작 눈사람이 될 뻔했다.


집에 돌아오니 빨래는 산더미. 눈을 맞으며 놀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부랴부랴 씻기고 빨래를 돌리고, 김밥이 먹고 싶다던 아들을 위해 부지런히 김밥을 싼다. 하필 손이 많이 가는 김밥이지만, 사 먹일 방도가 없는 프랑스에서는 게다가 평일에는 한국음식을 마음껏 먹기 힘든 두 아이를 위해서라면 손수 만드는 수밖에.


신나게 놀고 배부르게 먹고 나니 기분이 좋아져서 스스로 할 일을 찾아 떠난 아이들. 둘이 옥신각신 하며 노는 사이 산더미 같은 빨래를 널고, 또 하나의 산더미 설거지를 마친다. 이제 숨 좀 돌리나 싶으니 또 간식 시간, 그러고 나서는 청소를 하고, 저녁을 먹인다.


에고 어느새 해가 졌다. 그러나 끝나지 않았다. 이제 일주일간 아들이 학교에서 했던 공부를 체크하고 도움이 필요한 부분에 도움을 줘야 한다. 그게 낯선 프랑스어로 겨우겨우 학교 수업을 따라가는 아들을 위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선 양팔에 아이들을 안고는 도란도란 수다를 떨다가 재운다.


이렇게 늘어놓는 이 시간표는 사실 어느 집이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느 엄마든, 아이를 생각하며 주고자 하는 마음은 같고, 줄 수 있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바쁘고 바쁜 하루를 마치고 두 아이를 품에 안고 누운 밤, 조금은 뿌듯했다. ‘이만하면  엄마노릇 잘했다.’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문제는 전혀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아들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가 어렸을 때 자기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 같다는 충격적인 발언과 함께. 나는 상당히 의아했다.


‘내가? 정말로 너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오늘 너한테 한 이 모든 수고를 봐봐...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니?’ 하는 생각이 가장 즉각적으로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억울하고 놀란 가슴을 겨우 누르고 애써 친절한 목소리로 내 입장을 부드럽게 대변해 본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엄마가 널 얼마나 사랑했는데...”


그러나 눈이 빨갛게 된 아들은 갑자기 얼굴을 도리도리 하면서 아니었단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제 서야 도대체 얘가 왜 이렇게 생각하는 건지 궁금해졌다. 그제 서야 혹시 내가 무언가 잘못한 것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왜?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나 그때 다리 다쳤을 때, 내가 못 일어나겠다고 해서 엄마가 날 잡아줬는데 내가 일어나다가 문에 부딪쳤었잖아. 머리에 엄청 혹이 크게 났었고. 근데 그때 말이야... 엄마가 얼음팩을 가지러 가면서 짜증스럽게 한숨을 쉬고 갔었어... 그때 너무너무 슬펐어...”


아들의 말에 갑자기 머리가 띵~ 해졌다.



기억이 난다.

그때 난 남편과 주말부부 중이었다. 겨우 20개월 차이가 나는 두 아이를 홀로 기르고 있었고, 그때 아들은 5살, 딸은 3살이었다. 이렇다 보니 육아에 좀 지쳐있기도 했다. 그 와중에 아들은 다리를 다쳐왔고, 혼자서 거뜬히 해 내던 모든 것들을 ‘엄마’를 불러서 해결해야만 했다. 때마침 그날은 아침에 어딘가를 급하게 나가던 시간이었고 어린 딸과 다리를 다친 아들을 챙겨 나서는 그 아침은 세상 가장 분주하고 힘든 아침이었다.


여기까지였다.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른 것도 아니었다. 그저 한숨을 한 번 푹 쉬고는 약간은 짜증 섞인 말투 혹은 표정을 들킨 정도였을 것이다. 그게 이렇게 가슴속에 서슬 퍼런 아픔으로 남아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아들을 당겨 품에 안고 5살 아들을 대하듯, 도닥이며, “미안해”하고 말했다. 아들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나를 입증하려면 충분히 많은 이유가 있었다.  이후에 내가  위해 얼마나 많은 좋은 것들을  왔었는 지로 설득을 하려면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이를 논리로 이기고 싶지 않았다.


잘해 보려고 했지만, 최선을 다해 주었지만 그래도  모든  네게 부족했다면 미안하다고 말할  있는 유일한 사람은... 세상에 부모밖에 없으니까.

그래서였다. 미안하다고 말한 건.  


“엄마가 널 참 많이 사랑했는데,

그때 네가 다친 게 너무 속상하다는 걸 그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했나 봐... 미안해.”


다시 한번 진심을 담아 사과한다. 마음이 아프다.


갑자기 어린아이가 된 듯 엄마 품에 한참을 포옥 안겨 있던 아들. 그런데 딸까지 덩달아 그렇게 말한다.  



엄마가 잘해   오래오래 생각해야지 기억이 나는데, 엄마가 무섭게 말한  생각  하려고 해도 자꾸 생각이 ...”






그 말에 정신이 번뜩 든다.


내 기억 속에는 아이들과 함께 까르르 웃었던 기억이 더 선명한데... 아이들 때문에 행복했던 순간들이 더 애잔한데... 힘들었던 기억들, 말 안 들은 기억들은 다 어딘가로 사라지고, 나를 웃게 해 줬던 그 순간들이 하나도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는데... 아이들은 그렇지 않구나.


나에게서 느꼈던 따스함은 너무나 당연한 거고, 때로 내 표정 하나, 내 말투 하나 바뀌면 그게 이 아이들 마음에 비수같이 박히는 거구나....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랬다.


엄마 아빠가 내게 해 준 사소하고도 미미한 친절들은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러나 무심하게 던진 한 마디, 사는 게 힘들어 참지 못하고 흘러나온 감정의 한 조각은 가슴 깊이 꽂혀 수시로 떠오르곤 했다. 엄마의 슬픈 표정, 아빠의 격앙된 목소리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우리 부모님이었다고 말하기엔 좋은 것들이 분명 더 많았을 것이다. 아무리 살기가 힘들었어도, 아무리 가난했어도, 부모는 부모이기에 아이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거나, 교복을 깨끗이 다려준다거나, 떡볶이를 해 준다거나, 잠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거나, 늘 모자라기만 한 용돈을 조금 보태준다거나... 사랑을 어떻게든 표현하려 했을 것이다.


다만 서운하고 아픈 감정들이 너무 강해서,

그 미약한 친절의 기억은 너무 쉬이 기억 뒤편으로 사라지고 말았을 뿐이리라.





그러고 보니 우리 엄마 아빠도 그랬을까 싶다.


내가 이 녹록지 않은 삶 속에서 안간힘을 쓰며 너를 길러내는 것을 너도 다 알 거라고. 내가 널 사랑하기 때문에 이 모든 걸 견뎌내는 걸 네가 알아줄 거라고. 찡그린 표정, 무심한 말투, 무심코 튀어나온 감정들... 그러니 그 모든 사소한 실수들은 너를 향한 내 뜨거운 사랑 때문에 다 덮혀질 거라고... 그렇게 믿었는지도.



그러나 정작 그 사소한 일들이 더 끈질기게 마음에 남아 아직도 가끔 아픈 걸 보면, 서른 보다도 마흔에 가까워진 나이의 나도 엄마 아빠에겐 여전히 딸인가 보다.  







미안하다고 몇 번이나 머리를 쓰다듬으며 두 아이를 가슴에 안고 재우며 엄마를 아빠를 떠올린다. 약하고도 강했던 엄마와 아빠의 딸인 내가 내 아들과 딸의 연약하고도 강한 엄마가 되어 살아가는 이 날들을 잠잠히 생각한다.


강하고 끈질긴 상처 뒤에 숨어 있는 미미하고 소박한 친절들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아픔이 떠올라 마음이 추워질 때마다, 엄마가 아빠가 나를 사랑했던 증거들을 하나씩 하나씩 찾아봐야겠다. 기억해 내야 겠다. 사랑이라는 거대한 퍼즐의 숨겨진 한 조각을 찾듯 찬찬히.



그러나 아이들에게만큼은 나의 미미하고 소박한 친절이 더 넘칠 수 있길 바란다.

스쳐가는 생각에라도, ‘엄마가 날 사랑하지 않나? 나는 엄마에게 중요하지 않나?’라고 느끼게 하고 싶지 않다. 결코 쉽지는 않으리라.




그러나 언젠가 아이들도 누군가의 부모가 되어 살아갈 그 날에, 마음처럼 사랑하기가 쉽지 않아 아팠던 그 어느 밤에 나를 떠올리지 않을까?



항변하지 않고 미안하다 말해 줬던

준 것은 잊어버리고 더 노력할게 라고 말하며 기꺼이 져 줬던 그 엄마.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것 같은 부모 노릇이 지칠 때,

그래도 사랑해 준 엄마의 흔적을 애써 발견해 가며

다시 힘을 내어 걸어가길.


잠든 아이들을 바라보며 간절히 기도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빠도 꿩 먹고 알 먹었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