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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앤느 Jan 11. 2021

"아빠도 꿩 먹고 알 먹었네?"

한국에 살지 않으니, 한국어를 더 들려줘야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그래서 간혹, 잠깐씩 유튜브를 보여줄 때면 ‘속담이 야호’라는 프로그램을 틀어주곤 하는데

비유와 은유를 이해할 나이가 된 아들은 속담이 야호를 보는 날이면 그렇게나 몰입해서 보곤 한다.


며칠 전에는 ‘꿩 먹고 알 먹고’라는 속담이 나왔던 모양이다.

재밌게 신나게 한 편을 보고 난 아들은 아빠에게 쪼로록 달려가서 말을 한다.



“아빠~ 꿩 먹고 알 먹고 라는 말이 진짜 있어?”



평소에 쓰지 않는 말이 영 어색했던지 아들은 의아해하며 아빠에게 넌지시 묻는다.



“그럼 있지.”


“그게 무슨 뜻이야?”


“그건 네가 킨더 조이 초콜릿을 샀을 때랑 비슷해. 초콜릿도 먹고 장난감도 가지고. 그렇게 무언가를 해서 좋은 일이 여러 개 생기면 그렇게 말해.”


“아~~~~ 그럼 아빠도 꿩 먹고 알 먹었네?”


“응?”


“엄마랑 결혼도 하고, 우리도 낳고!”


“풋”



아빠에게 풀어내는 아들의 논리에 웃음이 난다.


아들 눈에 아빠는 꿩도 먹고 알도 먹은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아빠가 얻은 가장 소중한 꿩으로 정의되었다. 게다가 예쁜 알도 잘 낳아준 소중한 꿩. 꿩을 얻어 알까지 얻은 아빠는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아들의 말을 듣고 아들의 눈으로 바라보니 정말 그렇다.


세상 제일 사랑하는 엄마랑 결혼도 하고 이렇게 토끼 같이 예쁜 우리도 가졌으니 말이다. 세상에 이보다 남는 장사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니 괜시리 내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에헴, 그럼 그렇지 나는 당신에게 꿩이고 말고... 세상에 나 같은 꿩이 어디 있겠어... 예쁜 알도 두 개나 낳아줬으니 나한테 잘하라고...’  



그러나 그 생각도 잠시,

금세 아들의 말에 한 마디 덧붙일 말도 없이 ‘그럼 그럼 그렇고 말고.’ 했을 남편의 얼굴이 그려진다. 어느 관계나 다 그렇듯, 우리의 일상도 늘 환한 날만 있는 건 아닌데도 무엇 하나 마다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꿩도 가지고 알도 가진 자요’ 했을 남편에게 고마움이 밀려온다.


‘당신 덕분에 나도 꿩도 먹고 알도 먹었지... 늘 고마워.’



이렇게 우리는 서로 덕분에 꿩도 얻고 알도 얻은 사람이 되었다. 당신 덕분에 얻은 이 행복 때문에 잠시 또 고마워한다. 이 잠시의 감사가, 매일 잠깐씩 떠오르길, 그래서 ‘내가 이렇게 했는데...’하고 곱씹기보다 ‘네가 이렇게 해 줘서...’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세상 가장 소중한 꿩이 되고 싶었던 내가, 이제는 세상 가장 소중한 꿩과 알이 가진 사람이 되어 허허 웃는다.



남들에게야 그게 뭐 꿩이고 알이겠냐 싶을 그 소소한 일들이, 이렇게 우리를 함께 웃게 한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꿩과 알을

그리고 그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우리들만의 행복을 지금처럼 꾸려가고 싶다. 언제까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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