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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앤느 Jan 01. 2021

“백 살까지 안아줄게”

아빠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방법 2


남편이 7살 된 딸에게 매일 하는 말이다.


7개월 된 아이도 아니고, 올해로 한국 나이 7살이 된 딸에게 말이다.  딸은 아빠의 이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언제나 어디서나 힘이 들면 두 팔을 쭈욱 뻗고 아빠를 올려다본다. ‘아빠 백 살까지 안아준댔지?’ 하는 표정과 눈빛으로. 그러면 아빠는 어느새 딸을 안고는  “아빠가 백 살까지 안아줄게” 하며 싱글벙글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못 참고 꼭 한 마디 궁시렁 하고 만다.


“아니 다 큰 애를 왜 자꾸 안아 줘....

  못 말려 정말... ”






남편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나름대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딸이 태어나던 해부터 꼬박 3년을 주말 부부로 지내야 했다. 사실상 딸의 가장 아기였던 때, 늘 품에 안고 길러야 할 때를 남편은 놓치고 말았다. 어린 딸은 “엄마”하고 말을 튼 뒤 아빠가 아닌 “오빠”를 먼저 말했고, 심지어는 주말에 아빠가 한 번 안아볼라 치면 낯선 사람을 만난 듯 ‘으앙’하고 울음을 터뜨리기 일쑤였다.



그런 딸이었다.

대한민국 딸 가진 아빠라면 누구도 비껴가지 않는 “딸바보”인 남편은 그런 딸을 마주할 때면 자신의 빈자리가 느껴져 늘 미안하고, 안쓰럽고 했을 것이다. 아빠 대신 아빠 몫까지 동동대며 아이를 기르고 있는 아내에게도, 아빠 없이 동생에게 아빠처럼 의젓한 오빠가 되어준 아들에게도, 아빠 없이 아빠보다는 오빠를 부르며 자라는 딸에게도.



그때부터였다.

남편은 아들이고 딸이고 기회만 되면 안고 다니기 시작했다. 어쩌다 가족끼리 놀이공원이라도 갈라 치면 다리 아프다고 징징대는 아들을 달래기보다 번쩍 들어 안고 온 공원을 다니는 것이었다. 함께 해 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그렇게라도 만회해 보려는 남편의 애씀은 애처롭고도 안타까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 마저도 딸에게는 그다지 통하지 않았다. 아직 어린 딸에게는 아빠라는 존재 그 자체의 의미보다는 늘 부대끼며 함께하는 물량적인 시간의 양이 절대적으로 중요했다. 아빠의 안타까운 마음이나 사랑의 마음을 알고 이해하기엔 너무나 어렸던 딸은 늘 한결같이 아빠보다는 엄마, 아빠보다는 오빠였다.


그래서 였을 것이다.


남편은 주말부부 생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늘 한결같이 딸을 아들을 안아줬다. 물론 횟수나 시간으로 보자면 아들보다는 조금 더 어린 딸을 훨씬 더 많이 안고 다니게 되었다. 다 큰 애들 버릇 나빠지게 그런다는 내 모진 구박에도 굴하지 않았다.



“아빠가 백 살까지 안아줄게”


남편은 하루에도 몇 번씩 말하곤 했다.

딸의 어느 생일에는, 그렇게 편지를 써서 보내 어린이집 선생님까지 뭉클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딸만큼은 대면대면했다.


그랬던 딸이 조금씩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남편의 그 한결같음이 딸의 마음에 가 닿은 것일까? 절대로 아빠랑 둘이서는 있지 않던 딸이 이제 엄마에게 서운한 게 있으면 쪼로록 아빠 옆에 달려가선 귀에다 소곤소곤 일러준다.


"엄마가 제일 좋아"라고 말해 놓고선 아빠 귀에다 대고는 "아빠는 내가 엄마가 제일 좋다고 해도 나 좋아할 거잖아"라고 속내를 털어놓기도 한다. ('딸아 아니 그럼 난? 난 아니니?'라고 묻고 싶었지만 넘어갔다 ㅋㅋ)

길을 걷다가도, 뛰다가 넘어져도, 자다가 깼을 때도 언제나 손을 쭈욱 뻗고는 아빠를 빤히 올려다본다.


그래도 어느새 자란 자신의 무게를 고스란히 안고 걷는 아빠한테 미안하긴 한 건지, 아니면 “아빠 힘드셔” 하고 말하는 엄마의 말에 괜히 마음이 쓰이는 건지...


“아빠 무거워? 아빠 힘들어?”

하고 아빠를 빤히 쳐다보기도 한다.

그럴 때면 갑자기 남편은 자신이 어벤저스의 주인공이라도 되느냥 말한다.


“아니 하나도 안 무거워.

아빠 우리 딸 백 살까지 안아줄 수 있어.

아빠가 열심히 운동할게”



그럴 때면 아빠의 사랑은 저런 것일까 싶기도 하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엄마에 비해 현저히 적을 수밖에 없는 아빠가, 이미 태에 품었을 때부터 같이 호흡하고 같이 살아온 엄마에게 어느 면으로나 절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는 아빠가, 그래도 아이들과 사랑을 나누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은 어쩌면 저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저녁이었다.

아이들은 거실에서 신나게 놀고 있었다. 갑자기 방에서 헉헉 대는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남편이 운동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호기심 많은 아들이 “어? 뭐지?” 하고 방으로 달려간다. 그러자 호기로운 딸이 한 마디를 던진다.


“아 그거? 아빠가 나 백 살까지 안아 줄라고 운동하는 거야.”



딸의 그 자신감 넘치는 한 마디에 나는 웃고 말았다.  


‘그래.. 너희 아빠는 아마도 그럴 것 같아...’


백 살이 훨씬 넘어 구부정하게 늙은 남편이 백 살 된 딸을 업고 가는 모습을 떠올려본다. 그 이상하고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가 왠지 믿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 안아주라는 구박은 그만해야겠다.



남편은 그렇게 3년의 빈자리를 메워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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