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앤느 Feb 16. 2021

꿈에도 몰랐던 일


지난주, 프랑스에 온 뒤로 가장 추운 날들이었다.

아무리 추워도 영상인 프랑스가 지난주 내내 영하로 내려갔다. 영상이어도 집 자체가 추워서 한국보다 훨씬 춥게 느껴지는 이 나라에서 영하의 날씨를 견딜 방법은 뜨거운 물뿐.

뜨거운 차를 마시고 또 마시고, 그걸로도 견딜 수 없을 때 뜨거운 반신욕으로 잔뜩 긴장된 몸을 풀어준다. 


토요일 늦은 오후, 비도 오고 추우니 밖에 나가 놀 수도 없고 며칠째 집 안에서만 놀다 보니 슬슬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한 아이들. 이럴 때 최고의 처방은 단연 따뜻한 물이다. 추운 날씨에 잔뜩 몸을 웅크리고 학교에 다녔을 아이들에게 따뜻한 반신욕을 선사한다. 아이들은 신이 났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는 장난감을 가지고 한참을 놀다가 나온다. 실컷 놀고 난 아이들을 씻기는 일은 아빠의 차지. 


그런데 갑자기 딸아이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니, 미니 레고 조립해 놓은 것을 들고 들어간 녀석들은 기어이 그걸 물속에서 부시면서 놀았고, 그걸 몰랐던 아빠가 물을 빼자 그만 작은 조각들이 하수구를 따라 들어간 것.


그 전말을 들은 엄마의 눈은 도끼눈이 되고 만다.

"아니, 그러면 안 되지. 미니 블록은 하수구에 들어간단 말이야. 하수구 막히면 안 돼. 앞으론 미니블록은 들고 들어가지 마. 알았지?"


아빠를 이르고 위로라도 받아볼까 하고 엄마에게 와서 털어놓던 딸은 엄마의 다그침에 그만 입이 쏙 들어가고 만다. 그러자 아들이 저 멀리서 한 마디 거든다.


"엄마 우리는 그런 줄은 꿈에도 몰랐지."


오빠의 말을 듣고 힘을 얻은 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맞아 맞아, 우리는 정말로 그런 줄은 꿈에도 몰랐어." 

   



아이들의 그 말에 도끼눈을 뜨던 엄마는 그만 웃고 만다. 

맞다. 아이들의 말처럼 정말로 그렇다. 내 생각엔 당연한 것들이 아이들에겐 꿈에도 몰랐던 일이 얼마나 많았을까. 자고 먹고 입고 생각하고 자라는 그 모든 과정 중에 당연히 알고 있었던 것은 하나도 없을 터였다. 


그 하나하나가 다 꿈에도 몰랐던 새로운 것이며 아이들은 이렇게 실수하고 넘어지고 속상해하고 또 때로는 웃고 즐겁게 뛰어놀며 하나하나 배워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저 내 역할은 꿈에도 몰랐을 그것을 말해주고 아이들이 자라 가는 속도에 맞춰 함께 자라 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당연하게 알고 있는 이 모든 것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노고와 수고로 내게 남겨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나 역시도 꿈에도 모르고 자라 가는 그 누군가를 기다려주고 참아가며 함께 성숙해져 가는 것 일지도 모르겠다. 

 


"아 미안해, 꿈에도 몰랐구나.  ㅋㅋ 그럼 이번에 교훈을 얻자. 다음에는 그러지 말자. 알았지?"



엄마의 도끼눈이 사라지고 미소가 되살아나자, 

신이 난 딸이 한 마디를 더 거든다.



"괜찮아요 엄마.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니까요."



인심 좋은 딸은 오늘도 이렇게 도끼눈을 뜨던 엄마를 쉬이 눈감아 준다. 그 너그러움에 기대어 엄마는 오늘도 한 뼘 자라난다. 실수하고 용서하며, 이해하고 사랑하며 오늘도 함께 자라 간다. 너희가 태어나기 전에는 꿈에도 몰랐던, 오래 참는 '엄마의 사랑'을 오늘도 이렇게 배워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 일보다 네가 더 소중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