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앤느 Mar 06. 2021

과묵한 모녀의 찐한 사랑

7살 사춘기가 찾아온 것인지, 잘 해낸다 싶던 딸이 자꾸만 유치원이 가기 싫다고 울었다. 방학이 끝난 직후에다 평소 딸이 무척 따르던 담임선생님까지 이번 주 내내 유치원에 못 오고 계시는지라 오늘은 큰 맘먹고 딸의 땡땡이를 지지해줬다. 그래 이런 이유로 학교 빠지기도 올해 까지지... 



딸에게 땡땡이를 허하기는 했다만 막상 둘이서 집에 남으니 뭔가 적막이 흐른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집 수다 담당은 아빠와 아들. 예전부터 누굴 만나서 하루 종일 수다를 떨고 돌아오면 에너지가 방전돼 혼자 있는 시간 필수인 나였다. 사람은 좋아한다만 하루에 쓸 수 있는 말의 양은 한정된 사람, 그게 바로 나였다. 그런 나와 결혼한, 대화하길 좋아하는 남편은 내가 주방에 가면 주방에 따라와 수다를 떨고 양치를 하러 욕실에 가면 욕실로 따라와 수다를 떠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남편이 참 신기했다. 그런데 아들이 말을 하기 시작하니 아빠와 하는 냥이 똑같다. 아들의 마음 창고에서는 끝도 없이 말이 퍼 오르는 것 같았다. 그날 있었던 일부터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상의 나래까지 아들은 또 말하고 또 말했다. 


그런데 딸은 그렇질 않았다. 오빠와 둘이 있을 때도, 아빠와 둘이 있을 때도 조잘조잘 말을 잘하는 딸인데 유독 나하고 있으면 대화가 그렇게 길게 이어지질 않았다. 딸과 단둘이 있을 일이 그렇게 많지도 않았기에 별로 생각지 않았는데, 오늘 오전 문득 딸과 함께 먹으려 점심을 준비하다 애가 있는 집이 어쩜 이렇게 조용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모녀가 함께 있는데 어쩜 이렇게 말이 없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어린 시절 엄마와 나도 그랬다. 엄마도 말이 없었고, 나도 그런 엄마를 닮아서 그리 수다스러운 딸이 아니었다. 사춘기 무렵에는 엄마와 둘이 집에 있어도 대체로 홀로 방에서 책을 보거나 할 일을 하곤 했다. 그런 내게 엄마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은 말을 거는 게 아니었다. 다만 잘 깎아서 접시에 예쁘게 담은 사과 한 접시, 혹은 내가 제일 애정 하는 마른오징어를 잘게 먹기 좋게 잘라서 담은 그릇을 슬그머니 내 곁에 갖다 두는 것이었다.


조금 더 어렸던, 초등학교 시절에는 그래도 엄마와 무언가를 하는 일들이 왕왕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동네 대중목욕탕에 함께 가곤 했는데, 나는 그 시간이 가장 힘든 시간이기도 했고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엄마가 있는 힘껏 때를 미는 동안 꾹 참고 견뎌야 하는 것은 어린 나에게 힘든 일이었지만, 그렇게 함께 목욕을 마치고 상쾌한 기분으로 목욕탕 앞 작은 포장마차에서 떡볶이 한 접시를 함께 나눠 먹는 것은 기다려지는 일이었다. 


엄마가 시장에 장을 보러 갈 때면 엄마 손을 잡고 쫄래쫄래 따라갔던 기억이 아직도 아련히 남아있다. 그러다 엄마가 사주는 식혜 한 그릇에, 또 때로는 막 튀겨낸 군만두 한 접시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는 흐뭇해지던 그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별로 말이 없는 엄마였지만, 그래서 함께 목욕탕을 가도, 시장을 가도, 떡볶이를 먹고 식혜를 마셔도 별다른 대화는 없었지만, 엄마도 나와 무언가를 함께 하는 게 좋았던 걸까. 조금 더 커서 혼자 집에 있는 걸 좋아하던 무렵의 나에게 엄마는 "식혜 사 줄게, 시장 갈래?" 하고 구슬려보기도 했다. 그러면 기분이 좋은 어떤 날은 못 이기는 척 엄마를 따라나섰다. 시장 언덕길을 따라 오르면서 하나씩 늘어가는 엄마의 까만 봉지들을 곁에서 들어주며 식혜 한 그릇을 얻어 마시고는 엄마와 딸이 누릴 수 있는 작은 즐거움 하나를 함께 누리곤 했다.


엄마와 마지막으로 했던 외출도 역시 먹자골목이었다. 대구 동성로 뒷골목 먹자골목에서 엄마와 함께 먹었던 소라 한 접시가, 맛있다고 맛있다고, 네가 더 먹으라고 엄마가 더 드시라고, 서로 그러며 먹었던 그날의 그 데이트가 엄마와의 마지막 외출이 될 줄 그땐 몰랐지만 말이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니, 늘 그런 게 아쉬웠다. 

엄마와 함께 목욕탕에 가서, 엄마가 내게 그랬듯 나이 든 엄마의 등을 밀어주지 못할 거라는 사실이. 엄마와 떡볶이 한 접시, 군만두 한 접시를 사이좋게 나누어 먹으며 그렇게 잠시의 행복을 누릴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이. 늘 아쉽고 안타까웠다. 


아쉬운 걸 나열하자면 끝도 없이 많지만, 또 돌아보니 그 나름대로 엄마와 사랑을 나누었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와의 추억은 그렇게 그 소소한 것들 사이 어드매에 늘 존재하고 있었다.






그래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딸 엄마랑 데이트할까?" 


그렇게 점심을 먹고 딸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장을 봐야 했고, 어차피 나가야 했지만 말을 그렇게 꺼내고 보니 마음이 달랐다. 작은 장바구니 두 개를 들고, 한국 시장의 정스러움과 그 풍성한 먹거리의 향연을 감히 흉내도 낼 수 없는 파리 어드매의 마트지만, 그래도 딸의 손을 잡고 몇 군데를 휘휘 돈다. 


"이걸 살까? 아니면 저걸 살까?"

"이거!!"


"딸, 이거 어때? 마음에 들어?"

"우와 응 마음에 들어~~"


생각지 못했을 작은 선물도 하나 사 줘 본다. 초콜릿 하나 값도 안 하는 작은 머리핀이지만 딸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을 한다. 마치 목욕탕 앞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를 먹던 나처럼. 



딸과 단 둘이 나선 장보기가 처음은 아니지만, 오늘은 이제까지와 사뭇 달랐다. 


장을 봐야 하는데 딸이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딸을 데리고 빠르게 신속하게 미션을 수행하던 내가, 오늘은 딸과 함께 거닌다. 딸이 물건 하나 앞에 멈춰 뭐라고 말문을 트면 함께 멈추고, 딸이 저기로 가자고 하면 함께 걷는다. 무거운 짐을 들고 나는 그렇게 비생산적인 장보기를 한다. 가방을 들어주겠노라 하는 딸에게 작은 장바구니를 넘겨주기 위해, 두 가방에 고루 나눠 담았던 물건을 한 곳에 모으고 가벼운 가방을 만들어 들게 한다. 


"엄마 내가 들어주니까 가벼워?"

"그럼 가볍지. 고마워."


딸은 엄마를 돕겠노라 하지만 사실은 내가 딸을 즐겁게 해 주려 한다는 이 비밀을 딸도 언젠가 먼 훗날 알게 될까? 딸과 함께 거니는 그 걸음 속에 엄마가 그리고 엄마와  함께 거닐 던 어린 내가 겹쳐진다.


그랬다. 엄마도 그랬을 것이다. 식혜 한 그릇 속에, 빨간 떡볶이 한 접시 속에, 그렇게 숨겨진 엄마만의 비밀이 있었을 것이다. 때론 고단하고 힘겨운 일이었을 그 모든 순간들이, 그 모든 손길들이 오늘의 나에겐 추억이고 아련한 그리움이다. 그리고 그걸 곱씹으며 나는 오늘을 또 사는 것이다. 


딸과 함께 하는 이 모든 순간들도 딸에게 그럴 것이다. 이 찰나의 행복이 이 아이의 삶을 지탱하는 사랑이 되고 힘이 되기를 바란다. 이왕이면 그 사랑 탱크가 이 사소한 기쁨들로 인해 가득 채워져 평생 꺼내 쓰고 또 꺼내 써도 모자라지 않기를 바란다. 그 마음을 이 잠깐의 순간에 담아본다. 딸의 보드라운 마음에 작은 풀꽃 하나를 심는 심정으로.

 






오늘도 나는 딸과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아들이 돌아오니 딸은 금세 수다쟁이가 된다. 오빠를 졸졸 쫓아다니며 쉴 새 없이 수다를 떤다. 아무래도 과묵한 엄마와 과묵한 딸의 조화는 대화보다는 함께 있는 것 그 자체인가 보다. 그래도 오늘은 혼자 두기만 한 것 같아서 미안하지는 않다. 엄마가 내게 그랬듯 말보다 진한 사랑을 주었으니 그걸로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꿈에도 몰랐던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