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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앤느 Feb 13. 2021

"그 일보다 네가 더 소중해"


목요일 점심을 먹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의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아들이 배가 아파서 힘들어한다기에 지금 당장 데리러 가겠다고 하고선 달려갔다. 때마침 앞으로 2주간 방학이라 금요일도 그냥 집에 데리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교장이 먼저 그런다. 배가 아픈 것도 코로나의 증상일 수 있으니 병원에 가서 등교해도 괜찮다는 확인서를 받아오라고.


그런데 평생 아들을 봐온 엄마의 눈으로 아무리 요리조리 살펴도 많이 아픈 모양새가 아니다. 이건 그냥 많이 피곤한 아들이 밥을 먹다가 탈이난 느낌이었다.


당장 병원을 예약해서 데려가려면 갈 수도 있겠지만, 이번 학기 군소리 한 번 없이 씩씩하게 학교에 다녀온 아들이 오늘은 좀 쉬고 싶다고 했다. 금요일에도 집에 있고 싶다는 간절한 눈빛을 보낸다. 그래, 방학을 며칠 앞당긴다 생각하지 뭐.... 그렇게 방학이 시작되었다. (물론 어제 병원에 다녀온 아들은 엄마의 예상과 같이 정말 건강하다는 진단을 받아왔다.)


방학이면 여느 엄마나 다 느끼지만 하루가 정말 짧다.배가 고파도 엄마, 재밌는 걸 발견해도 엄마, 궁금한 게 있어도 엄마, 속상해도 엄마, 정말 엄마를 수도 없이 부른다. 주말에는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온전히 집중하기 때문에 맞춰줄 수 있는데, 방학 때는 온라인으로 어학원 수업도 하랴, 평소에 하던 일들도 재택으로 하면서 아이들까지 돌보려니 마음을 붙잡고 붙잡아도 나도 모르게 예민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방학의 첫날이었던 어제도 그랬다.

낮에는 한복 입은 아이들과 함께 설에 대한 영상도 찾아보고, 이야기도 하며 즐겁게 보냈는데, 어학원 수업이 시작된 뒤에도 수시로 문을 열고 들어와서 "엄마" 하는 아이들에게 반응을 해 주는 게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그러지 않으려 애를 쓰면서도 어쩌면 순간순간 말투나 표정에서 짜증이 묻어났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절정은 내가 한국어를 가르치는 수업을 진행하기 바로 직전에 일어났다.


아들은 평소에도 겁이 많아서 싸우는 장면이 나오는 만화영화는 보여주지도 않고 보지도 않고 지내왔는데, 며칠 전에 드래곤볼 카드가 생겼다기에 오랜만에 추억에 젖은 남편이 드래곤볼 주인공들 소개하는 영상을 함께 보았던 모양이다. 뭐 그리 심한 장면도 없었다는데 그 영상을 본 뒤로 아들은 저녁만 되면 무섭다고 우는 소리를 내며 내 품을 파고드는 것이었다.


수업 시간이 다 되어 수업 준비를 해야 하고, 곧 있으면 수업도 해야 하는데,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나가지 않겠다고 잉잉하는 아들에게 더는 곁을 주지 않고 쿨하게 "엄마 수업해야 되니까 이제 나가서 기다려. 괜찮아. 엄마 여기 있잖아"라고 말했다. 그러자 방금까지도 잉잉하던 아들이 안 되겠다 싶었는지 슬그머니 몸을 일으켜 마지못해 밖으로 나간다.


휴우, 다행이었다. 어쨌거나 오늘도 무사히 수업을 잘 마쳤다.




밤이 되고 아이들을 재우려 하는데도 아들은 여전히 그 상태였다. '무서워... 가슴이 답답해...' 하며 아빠 곁을 맴도는 아들을 바라본다. 엄마가 곁을 안 주니 찾아간 곳이 아빠구나 싶었다. 이제 이불을 다 깔고 잘 시간이라고 들어가자 하는데 아들이 가만히 아빠를 쳐다본다.


"아빠 할 일 많아?"

"응, 할 일이 좀 많지. 왜?"

"나 아빠랑 같이 자고 싶어. 너무 무서워."

"그래? 우리 아들이 그럼 아빠가 같이 자야지."

"아빠 그럼 일은 어떻게 해? 할 일 많잖아?"


"아 그거? 아빠한텐 그 일보다 네가 더 소중해."


남편의 그 한마디에 아들은 안심하고 남편의 품을 파고든다. 나는 부자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다 그만 뭉클하고 말았다.


그랬다. 나에게도 언제나 가장 소중한 것은 이들이었다. 그러나 일에 쫓기다 보면 그 중요한 사실은 너무도 쉽게 잊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바쁘다는 핑계로 그렇게 아이들의 마음을 쉽게 지나친 날이면 잠든 아이들을 바라보면 그렇게 안쓰럽고 미안했다. 그러나 또 바쁜 날이면 어김없이 나는 일을 따라가고야 마는 것이었다.



바쁘기로 치자면 남편이 나보다 훨씬 더 바빴다. 그건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남편은 아들의 마음을 지나치지 않았다. 엄마를 배려하느라 찾아든 아빠의 품에서 아들은 따스한 환대를 맛보았다. 아무리 많은 일을 해야 하고, 아무리 중요한 일들이 많다고 해도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너란다.... 아빠의 그 한마디에 막연한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다 사라진 것일까... 아침에 자고 일어난 아들은 씽긋 웃으며 말한다.


"이제 안 무서워. 마음이 시원해졌어."






"그 일보다 네가 더 소중해"



우리는 누구나 이런 존재가 되고 싶어 한다.

누군가에게  어떤 것과도 바꿀  없는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되길. 무엇을 잘할 , 무엇을 해낼  있을  기뻐해 주는 것보다도 오히려 아프고 힘들 , 아무것도   없을  같을 , 그럴  사실은 환대더욱 필요하다.


자신을 믿을  없을 , 자신을 사랑할  없을 , 그때 다가와 "너는 내게  무엇보다도 소중하단다.  모습 그대로도 너무나 사랑스럽단다"라고 말해줄  있는 그런 사람이 부모가 아닐까.

 

아빠 품에서 쉬고 난 뒤 다시 씩씩해져서 혼자 책을 읽고 있는 아들을 가만히 바라본다. 그 옆에서 오빠가 하는 냥 책을 떠듬떠듬 읽어가는 딸도 바라본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든, 내가 무엇을 이룰 수 있든, 그 어떤 것보다도 너희가 소중하다고... 너희는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정말로 소중한 존재들이라고... 그 말을 가슴에 새기며 가만히 한참을 바라본다.


너희가 지친 날개를 잠시 접고 내 품에 쉬이 숨어들 때마다 더 따스하게 맞아주는 엄마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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