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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앤느 Jun 21. 2021

프랑스 학교, 바야흐로 소풍의 계절이 돌아오다

"엄마 김밥 싸 줄 거지?"


지난주 금요일, 아들은 프랑스 학교에서 첫 소풍을 다녀왔다.


물론 작년 1학년 , 소풍보다는 견학에 가까운 박물관 방문이 있긴 했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수업의 일환으로 방문한 것이었고, 아직 프랑스 학교에 적응을 미처  하지 못한 아들에겐 설렘보다는 곤욕에 가까운 행사였다.


그리고 그 후에 코로나가 시작되었고,

작년 6, 바야흐로 소풍의 계절인 그 시간,  프랑스 학교들은 문을 닫은 , 가정 학습으로  학년을 마무리했다.



그러니 아들에겐 이것이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맞는 첫 소풍이었다.


간식은 뭘 가져갈까,

옷은 뭘 입을까,

모자는 뭘 쓸까..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묻고 꺼내보고 기대하던 아들.


그리고 그 아들의 요구는 그 무엇보다도 '김밥 도시락'이었다. 소풍은 김밥이라는 공식이, 가르쳐 준 적 없는데도 아들의 뇌리에 선연히 남아있는 걸 보면, 이런 게 문화의 되물림인가 싶기도 하다.


그리하여 나는 새벽부터 일어나 김밥천국의 모습을 재연해야 했다.


그리고 샌드위치나 빵을 싸온 프랑스 친구들 틈바구니에서 당당히 김밥을 꺼내 맛나게 먹었다는 아들. 프랑스 학교에서도 아들이 살아가는 삶은 참으로 한국적이지 않을 수 없다.







아들을 통해 프랑스 학교를 들여다보면서 느끼는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박물관 견학을 가든,

콘서트를 가든,

소풍을 가든,

여행을 가든,

여하튼 어디를 가든 간에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이라 할 지라도 무조건 걷고 지하철을 타고 혹은 기차를 타고 간다는 점이었다.


소풍이나 여행을 갈 때 보통 차를 대절하는 문화가 있는 한국과는 매우 다른 문화였기에 신기했다.


고작 7살, 8살 난 아이들이 그 거리를 걷는다고?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그것도 한 두 명도 아니고 그 많은 아이들을 다 데리고.. 그게 가능해? 아직 어린데? 애들이 힘들지 않을까? 위험하지 않을까?

 

그러나 나의 이 모든 의구심을 비웃듯 프랑스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어려도 차를 대절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 프랑스 친구이자 초등학교 교사인 파니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남부 소도시에 한국으로 3-4학년 아이를 가르치는 이 친구는, 얼마 전 기차로 1시간 거리의 다른 도시로 소풍을 다녀왔다. 물론 당일치기의 여행이었고, 역사 유적지를 돌아보는 일정이었는데, 기차를 타고 오갔을 뿐 아니라 그곳에서도 하루 종일 걷고 또 걸었다 한다.


아들의 경우 학교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까지 걸어갔다 했다. 하필 비 예보가 있었다. 아들의 준비물에는 우의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렇게 부슬부슬 비가 와도 비를 맞으며 걷는 식이었다. 다행히 그날은 비가 오지 않았지만 말이다.


한국에서는 늘 승용차 카시트에 앉아서 어디든 편하게 다니던 녀석이 프랑스에 오자 걸을 일이, 비를 맞으면서도 걸을 일이 많아졌다.


작년에 박물관을 갈 때만 해도,

다리 아프다고 징징대며 친구들 뒤를 겨우 쫓아 따라가던 녀석이, 비 맞는 건 너무 싫어하던 녀석이,

그 일 년 사이에 자라서 "오늘 너무 많이 걸었어. 허리랑 다리가 아파." 정도로 가벼이 지나간다. "비가 오면 모자 쓰면 되지" 스스로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리곤 힘들긴 했지만 재밌었다 하며 또 소풍을 가고 싶단다.




그러고 보니, 어쩌면 이게 프랑스에서 만큼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 공원이나 놀이터 혹은 길거리에서 어린아이가 쉼 없이 걷다 넘어지고 기다 다시 서고 하는 동안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부모의 모습들을 심심찮게 본다. 높은 곳에 매달리고 구멍만 보이면 기어들어가고 심지어는 맨발로 걸어 다니는 일도 허다하다.


 어머어머.. 저러다 다치는 거 아니야 싶어 아슬아슬한 가슴은 천상 뼛속까지 한국 엄마인 나의 것. 이곳 부모들은 정말 위험하다 싶은 일이 아니면 가만히 지켜보는 편을 더 선호하는 듯싶다.



어릴 적부터 여름이면 한 달씩 여행 다니는 부모들과 함께 걷고 또 걷는 일은 이미 익숙한 문화다.

게다가 주말이면 엄마 아빠 아이들이 농구를 하거나, 함께 롤러브레이드를 타거나, 테니스를 치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달리기를 하거나 하여간 그게 무엇이건 몸을 움직여 하거나 하거나 하거나다. 그러니 학교에서 소풍 간다고 걷는 일 그것쯤은 이 아이들에겐 별 일도 아닌 것 같다.



이런 풍경 앞에 설 때면 생각한다.

몸을 놀리는 일을 당연하게 여기고 도리어 더 즐기는 사람들, 그것이 쉼이고 즐거움이고 여가고 그리고 교감이 되는 문화, 그런 문화가 참 좋다고.

(물론 남편이 아이들과 몸을 놀려 놀아줄 때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체육도 졸업한 나는 주로 홀로 감상하는 처지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다시 내게 묻게 된다.

내가 이 아이들을 '아직은 어리다'라는 말로 너무 보호하려고만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의 보호하고 싶은 그 마음이, 아이가 스스로 뻗어나가야 할 지평을 제한해 버린 건 아니었을까.


비가 온다고,

날이 춥다고,

차가 많다고,

사람이 많다고,

더럽다고,

미끄럽다고,

다친다고,

위험하다고,

무수히 많은 이유들을 남발하며 설득했던 그 시간들이 그리고 '아직 어린애들이 어떻게?' 하며 쉬이 단정했던 그 순간들이 아이들에게 조금은 미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엄마의 애틋한 보호 덕분에(?)

모래 놀이하는 아이들 틈바구니에서도 엉덩이를 땅에 대고 푹 앉지 못하는, 맨발 벗고 걸어 다니다 퍼질러 앉았다 누웠다 하는 프랑스 친구들 사이에서 꼿꼿이 허리를 세우고 엉덩이를 들고 쪼그려 앉는 깔끔이들로 자란 것 같아 조금은 애처롭기도 하다.




이곳저곳으로 이어지는 많은 길들을 걷고,

넓은 운동장을 원 없이 달리고,

푸른 풀밭을 제 집처럼 누워 하늘을 보고 또 보며,

이리저리 몸을 놀리며 자신의 한계를 조금씩 넘어서는 그 즐거움을 누리며 자라길.


많이 웃고 많이 놀고 많이 생각하고 마음껏 사랑하며 그렇게 더더 너답게 자라가길.


프랑스 소풍을 바라보다,

나는 또 괜스레 내가 걸어온 삶을 돌아본다.

그리고 아이들이 걸어갈 삶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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