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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앤느 Jul 05. 2021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마음은 통한다

이제 이틀 뒤면,

프랑스에서는 두 달의 기나긴 여름방학이 시작된다.


한국의 2월처럼, 프랑스도 학기 말이 되자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선생님들은 바쁘다. 1년 동안 배웠던 것들을 잘 모아두었다가 다 집으로 돌려보내고, 평일 오전 등교 시간에 맞춰 학부모들을 학교로 초대해 아주 간단한 콘서트를 열기도 한다. 게다가 나름대로 1년의 학교 생활을 마무리하는 성적표도 만들어 보내려니 여간 바쁜 게 아닐 테다.


여하튼 교사들이 바쁜 만큼

학부모들도 분주하긴 마찬가지다.

아이들 소풍에 함께 가고, 콘서트에 참석하고, 아이들 가져온 1년의 작품들을 보며 손뼉도 쳐 줘야 하고, 절대로 버리지 않겠다는 그 물건들 고이 보관하려면 집구석구석 정리하고 '잘 숨겨두기' 실력을 보여야 한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선생님들 선물을 고르고 준비하는 일이다.




프랑스에는 스승의 날이 따로 없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1년에 두 번 정도, 크리스마스(프랑스에서는 크리스마스가 우리의 설과 비견될 정도로 중요한 명절이다)와 그리고 학년 말에 선물을 하는 것 같다. 크리스마스는 사실 마음이 있는 사람들만 선물을 하지만, 학년 말에는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하는 것 같다. 교사들도 학부모들도 당연시 여기는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강제는 아니다. 그리고 통상적으로 아주 비싸지 않은 정도 2-3만 원 수준의 초콜릿이나 컵, 차 등의 선물들이 일반적인 듯했다.



나는 프랑스의 이런 문화가 참 마음에 들었다.


사실 한국에서 학교에 근무하던 시절에도, 한국에서 학부모로 아이들을 기르던 시절에도, 나는 스승의 날이 너무 학기 초인 게 좀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과 아이들 사이에 아직 유대가 생기기도 전에 뭔가 감사부터 받고 보는 그런 느낌이랄까.


선물을 하는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스승의 날인데, 선물을 안 하긴 미안하고 하자니 꼭 우리 아이 잘 봐달라고 청탁이라도 하는 냥 영 마음이 불편했다. 학교도 아니고 어린이집인데도 늘 그런 찜찜함이 있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고안했던 방법이, 스승의 날에는 아이들에게 편지를 써서 드리게 하고 학년을 마치는 날 또 한 번 아이들의 편지와 함께 작은 선물을 준비해서 한 해 동안 감사했다고 인사를 드리는 방법이었다.


신기하게도, 1년을 함께 울고 웃는 시간을 보낸 뒤에는 아이들의 편지에 더 많은 마음이 담기곤 했다. 1년이라는 세월 동안 아이들이 더 자라서인 건지, 아니면 선생님에 대한 감사가 쌓이고 정이 쌓여서 인 건지는 여전히 미지수지만 말이다.




그렇게 프랑스에 와서 2년을 보낸 우리는 아들 딸 각각 두 번의 선물을 두 명의 선생님께 했다. 어떤 선물이 좋을까 수도 없이 고민하고 고민하다 내린 우리의 결론은 초콜릿과 텀블러와 유자차였다.  크리스마스 땐 프랑스 사람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초콜릿을 선물하고 그리고 학년 말이 되면 텀블러와 함께 한국스러움이 물씬 묻어나는 유자차를 건넨다.


프랑스에서 한국인으로 살면서 그래도 한국적인 것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드는 걸 보면, 우리 것 중에 좋은 것을 이렇게라도 알려주고 싶고 선물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 보면 천상 한국인인 모양이다.  



선물을 고르고 나서 아이들은 정성을 다해 편지를 써 내려갔다.


삐뚤빼뚤 아직 서투른 필기체로 그렇게 정성스레 써 내려간 편지에는 아이들의 마음이 담뿍 담겨있었다.

아이들은 편지를 쓰는 동안 선생님이 자신들을 어떻게 대해줬는지를 떠올리고 조잘조잘 쏟아냈다. 말이 다 통하지 않아도 자신들을 돌보아준 그 손길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때로 막막함에 눈물이 터졌던 그 순간에 외면하지 않고 품을 내어 안아주던 선생님의 기억이, 괜찮다고 말해주던 그 목소리가, 어렵사리 한 마디 불어를 끄집어냈을 때 브라보!라고 외쳐주던 선생님의 그 모습을 아이들은 기억하고 되새기며 몇 마디 짧은 문장 속에 그 마음을 담았다.



그리고 이 여정을 함께 지나며 선물을 준비하다 보면 내 마음속에도 감사가 가득 채워지곤 했다.

그래, 올해도, 이 낯선 땅에서, 이 분들 덕분에... 감사하다. 참 감사하다...


편지에도 선물에도 그렇게 우리 마음이 잔뜩 부어지곤 했다.




그래서였을까?

아이들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이 그 선물과 편지 어딘가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작년, 아들의 1학년 때 선생님은 그 유자차를 받아 들고는 옆반까지 달려가서 자랑을 했다고 한다. 그리곤 하교길에 우리에게 달려와서 고맙다고 정말 고맙다고 몇 번이나 인사를 하셨다. 나는 그것으로도 너무나 족했다. 충분하고도 넘치도록 충분했다. 이만하면 서로의 마음이 충분히 닿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아들의 가방을 정리하다가 아들이 건네는 작은 편지봉투를 열어보곤 또 눈물이 핑 돌고 말았다.


선생님은 고맙다는 말만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었던 자신의 마음을 편지에 담아 아들을 통해 보내주셨다. 아들과 함께한 1년이 정말 행복했다고. 정말 감사했다고. 그리고 편지의 말미에는 한글로 "고맙습니다"라고 적혀있었다.




아들에게 물어보니, 선생님이 아들에게 고맙습니다를 어떻게 쓰냐고 물어보고, 아들이  준걸 직접 따라 쓰셨다고 했다.


순간은 내게 잊을  없는 순간이 되었다. 프랑스에 와서 1 동안 웅크리고 있던  마음이 10센티쯤 펴지는 순간이었다. 생각지 못했던 환대 앞에 감격이 몰려왔고 나는 프랑스가 조금  좋아졌다. 여전히 한국이 훨씬 그립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며칠 전, 아들의 2학년 담임 역시도 편지를 보내왔다. 선물이 고맙다는 내용으로 시작된 그의 편지에는 한글까지 쓰여 있지는 않았지만, 선생님의 진심 어린 마음이 느껴졌다. 그 꼭꼭 눌러쓴 편지 속에 함께 꼭꼭 눌러 담은 선생님의 따스한 정스러움이 내 마음으로 흘러와 해처럼 비추인다.



달콤하고도 따뜻한 유자차 덕분인지, 아들의 진심 어린 편지 덕분인지, 나의 간절한 고마움 덕분인지, 그것도 아니면 우리로 시크한 프랑스에 정을 붙이게 하려는 놀라운 섭리 덕분인지 도무지 알 길은 없지만, 그래도 참 고맙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할 수 있고,

낯선 환경 속에도 돕는 손길이 늘 함께하고 있으며,

서로 다른 문화 속에서 오래 살아왔다 할 지라도 서로를 존중하고 감사할 수 있다는 그 사실을 느끼며 살 수 있어서...


이 모든 사소한 경험 덕분에,

막막한 프랑스 살이 가운데 해처럼 빛나는 따스한 위로의 순간를 누리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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