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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앤느 Jul 03. 2021

사소하지만 의미있는 친절 덕분에,


어느 날이었다. 프랑스 생활을 시작하고선 하루 한 번 정도 꾸준히 들어가는 한인 카페가 생겼고, 그날도 별생각 없이 그 카페를 들어가 혹시 내가 알아둬야 할 새로운 정보는 없나 하고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때 어떤 글이 눈에 띄었다.

<깻잎 씨앗 필요하신 분 나눠드립니다>


어라, 이렇게 반가울 때가. 프랑스에서의 깻잎은 금 잎이라고들 한다. 일단 일반 마트에서는 구경하기도 힘든 데다 한인마트에 가도 겨우 열장 남짓 포장된 묶음이 한국으로 치자면 거진 오육천 원에 육박하니, 정말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는 깻잎을 구경할 일이 없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클릭을 하고 글을 읽기 시작했다. 글의 요지는 깻잎 씨앗이 많아서 몇 사람에게 나누고 싶으니 쪽지로 집 주소를 보내라는 것이었다.


'아니, 이렇게 친절하실 수가!' 하는 감탄과 동시에 '그런데..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집주소를 덜컥 알려줘도 될까' 하는 생각과 '정말로 보내줄까?' 하는 생각도 스물스물 올라왔다. 봄이 되면 모종을 판다는 글은 종종 올라왔다. 깻잎 모종 하나가 5유로 안팎이었다. 그러나 나눈다는 글은 적어도 내가 목격한 글은 처음이었다. 생소한 경험이었다.


것도 그럴 것이, 외국인으로 낯선 땅에서 살아간다는 건 이미 그 자체가 중력을 거스르는 것 같은 스트레스와 함께 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일일이 주소를 받고 봉투에 담고 우체국을 가서 내 돈 들여 씨앗을 발송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었다. 벌써 나만해도 설령 마음이 그렇다 할지라도 그걸 실천하기까지는 언제나 한국에서보다 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나는 조용히 카페 창을 닫고 나왔다.

우리 집엔 테라스가 없었다. 화분도 없고, 흙도 없었다. 설령 씨앗을 받는다고 해도 어떻게 키울까 싶었다. 게다가 한 번도 씨앗을 심어서 길러본 적이 없었다. 어느 정도 자란 모종이라면 모를까, 새싹이라니... 아무래도 여러모로 다 무리다 싶었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록 이상하게 마음에 미련이 남았다. 깻잎이 먹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그 글을 올린 이의 사소하지만 의미 있는 그 친절이 내게 필요했던 걸까.


나는 결국 다시 카페 창을 열었다. 그리고 그 글쓴이에게 쪽지를 남겼다.


"안녕하세요, 깻잎 씨앗을 나누신다는 글을 읽고 조심스레 쪽지를 드립니다. 혹시 저도 받을 수 있을까요?"


몇 분이 지나자 친절한 답이 돌아왔다.


"네 그럼요. 주소를 보내 주세요."


그분의 그 쪽지에 이상하게 마음에 안도함이 찾아왔다. 주소와 함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보내고 카페를 나왔다. 깻잎 씨앗을 아직 받기도 전, "그럼요"라고 적힌 그 쪽지만으로도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그리곤 깻잎은 새까맣게 잊고 또 하루하루 부지런히 바쁘게 살고 있었다.


한 두 주가 지났을까, 우편함을 열어 본 남편이 작은 편지봉투를 들고 왔다. 봉투를 열어보니 갈색빛이 도는 작은 씨앗이 잔뜩 들어있었다. 뭐라고 글자 한 자 남겨지지 않은, 그저 종이에 투박스럽게 담긴 씨앗만이 가득한 그 작은 편지 봉투를 보는데 왠지 코끝이 찡했다.


내가 누군지 알지 못하는 어떤  사람이, 나를 위해 사소한 수고를 아무런 대가도 없이  주었다는 사실은  의미로 다가왔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나누어주는 사소한 친절은 어쩐지 여름이 와도 서늘하게만 느껴지던 파리에서의  마음  켠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것이었다.



씨앗을 펼쳐놓고 한 참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집에는 테라스가 없고, 화분도 없고, 흙도 없었다. 이 씨앗을 잘 심고 기를 만한 기술도 지식도 없었다. 그러나 왠지 모든 게 잘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부랴부랴 흙을 주문하고, 씨앗을 키친 타월에 담아 물을 잔뜩 뿌려 놓고 아침저녁으로 싹이 트길 기다리며 들여다보던 그 시간들.



누군지 모르는 한 사람의 친절에서 시작된 이 씨앗은, 그렇게 내 마음에 조금씩 심기웠다. 마치 그 씨앗이 나 자신이라도 되는 냥, 오며 가며 물을 뿌리고 들여다보고 간절했던 그 시간들. 그러나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물이 말라 있으면 큰 일이라도 난 듯 호들갑을 떨면서, 그렇게 요란스레 싹이 트길 기다리고 있었다.



한 주가 지났다. 그러나 어느 하나의 씨앗도 꿈쩍하지 않고 있었다. 아주 조금 슬펐다. 내가 잘 못 돌봐서 그런가, 아니면 테라스가 없어서? 너무 늦게 심었나? 하루에도 여러 번 의문이 머릿속에 차올랐고, 딱 일주일이 되던 날, 나는 내일까지 기다려보고 그때도 싹이 나지 않으면 포기하리라 했다.



다음 날 아침 놀랍게 싹이 나 있었다. 그렇게 깻잎은 자라기 시작했다. 쑥쑥. 작은 통에 심기웠다, 다시 큰 화분으로 옮겨지고, 창가에 놓여졌다, 현관 앞으로 옮겨지기도 하며, 그렇게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와 함께하며 놀랍게 쑥쑥 자라고 있다.




어느 아침 물을 주다 문득 나에게 묻는다. 깻잎 씨앗이 뭐라고 그렇게 애틋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나에게 보여준 그 사람의 까닭 없는 친절은,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것이 심기우고 자라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씨앗이었다는 것은, 어쩌면 나를 위로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친절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프랑스에서 살아가는 날들 동안 나는 때때로 내 자신이 척박한 땅에 아무렇게나 심긴 씨앗 같았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싹이 틀지도 알 수가 없었다.


어서 빨리 푸르고 예쁜 싹을 틔우고 싶지만, 바람이 너무 세찼고, 해가 나질 않았고, 비만 주룩주룩 내렸다. 그 시간들은 언제일까, 언제일까 싹 틔울 그날을 위해 기다리고 애태우는 시간들이었다.

 


이제나 저제나 애가 타던 내게 찾아와 이렇게 아름답게 싹을 드리우는 생명을 보니 자꾸만 눈물이 난다. 물 밖에 주는 게 없는데도, 초보자의 손길에도 굳게 뿌리 내리며 잎을 내며 섭리대로 자라가는 그 생명의 경이로움.


그 싹이 나를 향해 잘하고 있다고, 너도 쑥쑥 자라고 있다고, 조급하지 말라고, 서두르지 말라고, 이미 충분하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아침마다 깻잎에게 물을 주며 나는 눈물이 반짝, 그리고 미소가 담뿍 가슴에 담긴다.


싹을 기르고 물을 주며, 날마다 내 영혼에도 물을 주고, 위로를 주고, 격려를 준다.



누군가의 이유를 알 수 없는 그 사소하고도 중요한 작은 친절 덕분에, 나는 또 이렇게 여러 가지 이유를 만들어 가며 낯선 프랑스에 조금 더 뿌리를 내려본다. 나도 또 누군가에게 이처럼 사소하고도 중요한 작은 친절을 베풀며 살아가리라 마음먹으며, 내게 주어진 이 척박한 한 평 땅에 더 깊이깊이 사랑의 뿌리를 내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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