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앤느 Jul 16. 2021

너는 어느새 이만큼 자라서,

"엄마 나 이제 혼자서 머리도 감을 수 있어.

아빠가 가르쳐 줬거든.

그니까 내 옆에 서서 가만히 보기만 해. 알았지?"


한국 나이로 이제 9살인 아들이 며칠 전 내게 한 말이었다. 8살부터 머리를 감겨준 뒤에 샤워는 혼자서 하도록 가르쳐 주고 씻을 동안 곁에 있어주기만 했는데, 1학년을 마치고 이제 2학년에 올라간다 생각하니 덩달아 독립심이 고양되었는지 아들은 머리도 스스로 감아보겠노라 했다. 어찌나 기특하던지.


그렇게 아빠의 도움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샤워 혼자 해 내기'에 성공한 아들은 다음날 엄마를 욕실로 초대했다. 그리곤 스스로 하는 양을 가만히 지켜보란다. 감개가 무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머리를 감는 일이라 더욱 그랬다.






'머리 감기기'는 아들을 키우는 동안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였다. 갓난아기 때야 품에 안고 뒤로 고개를 젖혀서 감기니 별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돌을 지나고 앉아서 혹은 서서 목욕을 하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아들은 물이 얼굴로 흐르는 것을 너무나 싫어했다. 감각이 예민한 아이였다. 물이 흐르지 않도록 하려고 아기 때처럼 품에 안고 머리를 감기기엔 아이가 너무도 컸다. 더군다나 우리 아들은 크는 내내 아주 잘 자란 축에 속했다. 가뜩이나 저질체력인 내가 아들을 그렇게 씻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도 고분고분 안겨 있으면 해 보련만, 아들은 머리 감는 일을 아주 필사적으로 싫어했다. 겨우 설득해서 무릎에 눕혀 놓아도 물이 닿으면 온몸으로 저항하고 울고 떼쓰기 시작했다. 그런 아들과 사투를 하며 머리를 겨우 감기고 나면 나는 온몸이 다 젖어 있었다.  머리 감기는 모자니, 머리 감기는 의자니 하는 도구들도 죄다 들여놓고 시도를 해 보았다. 그러나 어떤 것으로 시작할 지라도 귀결은 늘 아들의 우렁찬 울음소리와 나의 젖은 옷이었다.


그러나 젖은 옷 따위는 아랑곳 않고 아들 감기 걸릴까 이리저리 도망 다니는 아들 따라다니며 닦이고 머리 말리고 옷을 입히고 나서 씻으러 욕실에 들어가면 그제서야 축축하게 젖은 그 촉감이 온몸에 느껴졌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지친 나를 마주 보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얼마나 이런 날들이 더 반복될까...'



그랬다. 매일의 그 사투가 힘겨웠다. 그러나 그 힘듦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이런 일들을 아들이 극복해내도록 잘 돕는 게 엄마의 역할일 텐데 내가 그걸 잘하고 있지 못하다는 좌절이었던 것 같다. 머리를 감기는 이 사소한 일도, 가장 일상적이고 당연한 일도 아들이 편안하게 느끼도록,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잘 돌보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에 목욕을 시킬 때면 '나쁜 어머니표'라도 받은 냥 불편하고 불안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겨우 20개월 차이가 나는 두 아이를 주말부부를 하며 홀로 기르던 엄마였다. 힘들다 라는 단어 뒤에 숨어 있는 마음의 이면을 들여다볼 여유는 1도  없었다.


그러니 그저 사투에 사투를 벌이며, 달래도 봤다가, 얼러도 봤다가, 화도 냈다가, 함께 울기도 하며,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거진 2년에 가까운 시간을 머리 감는 일로 아이와 실랑이를 한다는 건 작은 전쟁을 치르는 냥 힘든 일이었다. 때론 나에게 매일 큰 부담을 안기는 아들이 밉기도 했다. 그리고 아들을 미워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이 들어 잠든 아들을 바라보며 눈물을 떨구기도 했다. 기도를 하며 겨우 마음을 추스르며 다시 내일 또 해 보자 다독이던 그런 날들의 반복이었다.




둘째까지 어린이집에 가고 난 후에야 나는 겨우 한시름을 놓았다. 24시간을 내내 누군가와 붙어있던 시간에서 처음으로 놓여나 그 낯선 느낌에 적응을 해 가던 어느 날이었다. 나를 위해 선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미용실로 향했다. 큰 맘먹고 시간이 많이 들더라도 펌을 하겠노라고 다짐했다. 두 아이를 기르는 동안 겨우겨우 시간을 내서, 집 가까운 미용실 아무 곳이나 달려가 겨우겨우 커트만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던 3년의 시간을 보상하듯 말이다.


창밖이 내다보이는 높은 건물에 있는 미용실에는 잔잔한 클래식이 흐르고 있었고, 감사하게도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나는 머리를 만져주는 누군가의 손길을 느끼며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누렸다. 누군가가 내려준 커피 한 잔을 홀짝이며 평소엔 보지도 않는 잡지책을 뒤적이며 시간을 때우는 그 사치가 그토록 좋았다. 그리고 머리를 감겨주겠다는 직원을 따라갔다. 편안한 의자에 기대어 눕자 직원이 작은 수건을 내 얼굴에 올려주었다. 행여라도 물이 튈까 나를 배려하는 그 손길이 참 고마웠다.


"혹시 물 온도가 불편하시면 말씀해 주세요."


직원의 친절한 목소리에 왠지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편안했다. 매일 내가 내 손으로 문질러 감던 것과는 다르게 누군가가 감겨주는 그 느낌이 이렇게 좋다니.


그리곤 또 아들 생각이 났다. 눈물이 핑 돌았다.


아들에게 내가 무엇을 더 해줄 수 있을까. 이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아들이 매일 느낄 수 있다면,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 품에서 머리를 감는 그 시간이 편안하고 안전한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조금 더 편하고 싶다는 마음을 넘어서서 아들이 조금 더 편했으면 좋겠다는 마음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지친 나에게도 쉼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그날부터였다.


나는 아들의 이마 위에 그 직원이 하는 냥 수건을 올려주었다. 머리를 감기 전에 손에 물을 살며시 적셔주며 온도가 괜찮냐고도 물었다. 엄마 옷이 젖어도 좋으니 엄마 무릎에다 머리를 기대라고도 했다. 불편하면 언제든지 말하라고도 했다.


그렇게 아들과 나의 머리 기기 소동은 마무리가 되었다. 아들도 더는 울지 않았고, 나도 더는 울지 않았다. 어느 순간에는 머리 감자 하고 말하면 아들이  수건을 꺼내 눈을 가렸다. 엄마에게 기댈 필요도 없었다. 목을 뒤로 잔뜩 젖히고는 수건을 가리고는 머리를 감기는 동안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들은 자라 갔다. 그리고 아들이 자라는 꼭 그만큼만 내가 자라 갔다. 그러나 또 어떤 시점에는 내가 먼저 한 걸음을 더 자랐다. 그리고 내가 아들을 품는 만큼 꼭 그만큼만 아들이 자라 갔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들은 스스로 머리를 감는다. 머리를 감고 나니 세상 그 무엇이라도 다 스스로 할 수 있겠다 싶은지 자신감이 하늘을 찌른다.


"엄마 내일은 나 혼자 반신욕 할 거야. 그니까 노래도 꼭 틀어줘야 돼. 알았지?"



그 불안하고 힘들었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이렇게 잘 자란 아들을 보니 감사하다. 그리고 뭘 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흔들렸던 나의 연약함들도 다 과정이었구나 싶다. 조금 더 편안하게 바라봤더라면 더 쉬이 지나갈 일들도 나의 불안이 더 크게 느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이제서야 해 본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9살 아들을 바라보며 또 다른 고민들을 하고 있다. 어쩌면 엄마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무수한 실수를 통해 한 가지는 분명히 배웠다. 사랑을 충분히 먹고 자란다면 시간이 흐르고 때가 되었을 때 아이는 또 잘 해낼 것이라는 것을.

그러니 불안해하고 걱정하는 마음보다, 그 사실을 믿어주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지나온 그 시간들을 돌아보며,

그렇게 나는 다시 믿어주는 엄마의 자리에 나를 데려다 놓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네가 가진 것이 가장 좋은 거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