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앤느 Feb 09. 2022

'운'이 좋은 엄마

며칠 전 아이 학교에 상담을 하러 다녀왔다.


프랑스 학교에서도 학부모 상담은 1년에 한 차례 정도 이루어진다. 보통은 1학기가 끝나갈 무렵, 한 학기의 생활을 돌아보며 부모들에게 아이 학교 생활을 설명해주고 안심시켜 주고자 마련하는 자리인 듯하다.


2년 전, 아들이 1학년이 되었을 때 처음 학부모 상담을 했고 그리고 며칠 전에, 올해 1학년이 된 딸의 담임이 상담을 하러 오라고 했다.

(작년엔 코로나 때문인지 상담이 없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아들의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현재 딸의 담임 선생님이시니, 우리로서는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프랑스에 와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할 때 아들을 맡겼었고, 그때 어떻게 아들을 돌보아주셨는지를 다 기억하고 있었기에, 내심 딸도 이 선생님과 만날 수 있길 바랐었다. 그리고 2년 만에 그 선생님이 다시 한번 우리를 초대하신 셈이었다.

 



2년이란 세월이 길진 않지만,

그래도 꽤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그땐 통역을 대동하고 나아갔던 상담 길, 이제는 남편과 둘이 가도 웬만큼은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사이에 프랑스 생활이 조금은 익숙해져서 이런 일이 이제 아주 큰 부담도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편하지는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들이, 그리고 딸이 무던히 자라주었다. 키가 자라듯, 마음도 조금 더 자라고 단단해져서, 낯선 이국 생활 앞에서도 묵묵히 잘 견뎌주고 있었다. 그것은 참 감사한 일이었다.



한국에서도 그렇듯, 프랑스에서도 어찌 되었건 아이들의 학교 생활을 설명하기 위해 성적표가 빠질 수는 없다. 한국처럼 점수로 표기되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주의가 필요함, 노력이 필요함, 잘하고 있음, 아주 잘하고 있음) 정도의 단계로 나누고 각 영역이 어느 정도 발달했는지, 어느 영역에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등을 설명해 준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은 '격려'와 '칭찬'이었다.


2년 전에도, 올해도, 나는 동일하게 그걸 느꼈다.

"tres bien!!" 아주 잘하고 있어요. 선생님은 말끝마다 그 말씀을 하셨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 끝에도 '그러나 아주 잘하고 있어요 나는 이 아이에게 정말로 만족한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불어를 하나도 못하던 아들에게도, 이제 곧잘 뭐라도 말해보려고 애를 쓰지만 그래도 프랑스 아이들과 비교하자면 겨우 네다섯 살 수준의 언어를 구사하는 딸을 향해서도, 선생님은 계속해서 너무나 잘하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상담을 가기 전에는 걱정스럽던 마음도, 신기하게도 선생님을 만나고 나면 한결 가벼워졌다.


그렇지... 이 아이들이... 이만큼 견뎌주는 것만도, 이만큼 해내는 것만도 참 잘하고 있는 거지...


그것은 상담의 마법이었다.



그리고 진짜 진한 감동은 그 뒤에 이어졌다.


"당신은 참 운이 좋으세요. 제가 당신의 아들도 봤고, 딸도 봤잖아요? 이 두 아이는 정말 좋은 아이들이에요. 이런 아이들을 둘이나 기를 수 있다니... 당신은 정말 운이 좋으세요."


쾌활하고 발랄하게,

그러나 진심을 담아 눈을 마주 보며 선생님은 내게

'운이 좋다'라고 말했다.


상담 내내

나는 그저 감사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

돌아서서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계속해서 그 말이 내 주변을 맴돌았다.


운이 좋다...

운이 좋다...



만약 선생님께서, 당신은 참 훌륭한 엄마입니다.

당신이 노력했기에 이렇게 아이들이 잘 클 수 있었습니다 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모든 부모를 향해서 건네 졌을 친절한 인사 한 마디에 모든 의미를 부여하며 나는 금세 세상을 다 가진 듯 뿌듯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족쇄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아이가 무언가를 잘못하는 순간, 그것은 '훌륭한 엄마'라는 내 명예에, 먹칠을 하는 것이 될 테니... 나는 있는 힘껏 무언가를 더 해서 아이를 더 훌륭하게 유지하고 길러내야 한다는 압박을 가졌을 게 분명하다.


그러나 선생님은 내게 당신은 운이 좋다고 말했다.

아이는 아이의 고유성을 가지고 태어났을 뿐이고, 이런 아이를 만난 것은 당신의 행운이다.


이 역시도 모든 부모를 향해서 동일하게 건네 졌을 친절한 인사지만, 이것은 조금 다른 의미에서 나를 기쁘게 했다.


내 자질과 노력, 수고와 공로를 인정받아서 기쁜 것이 아니라, 그것은 오히려 내가 한 것에 비해 큰 선물을 받았음을, 내가 놓치고 있던 중요한 사실을 깨달음으로써 누리는 기쁨과도 같았다.


나는 작아지고,

이런 작은 내 품에서도 잘 자라준 아이들,

그리고 그 아아들을 내 품에 안겨준 놀라운 신비

같은 것들만이 한없이 강조되어 보이는

마법과도 같은 한 마디였다.

   


그랬다.

나는 운이 좋은 엄마였다.


더 좋은 엄마가 되려고 결심한 무수한 밤들이 있었지만, 그 무수한 결심의 밤들만큼이나 실수한 낮들이 있었다.


안아주고 싶고 받아주고 싶은 마음과 달리

실수하고 실패하고 상처 주고 마음을 아프게 했던 순간도 분명 많았다.


아이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지만

사실은 어떤 것이 가장 좋은 것인지도 잘 알 수가 없어 주저하는 순간들도 많았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서툰 엄마의 무수한 시행착오들 속에서도 아이들은 나름의 가지를 뻗고 나름의 열매를 맺으며

여기까지 자라왔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과 함께하며 삶의 여정을 지켜볼 수 있는 자격을, 단지 엄마라는 이유로 얻은 셈이었다.

 

그랬다.

내가 얻어낸 것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것.

내가 그럴만해서가 아니라,

그저 우연처럼, 운명처럼 주어진 것.

그것은 참으로 운이 좋은 것이었고,

감사한 일이었으며,

감격할 만한 일이고,


그리고... 은혜였다.

 



며칠 후,

아이들을 재우려 잠든 척 눈을 꾹 감고 있던 밤이었다. 살갑디 살가운 아들이 이미 잠든 것처럼 보이는 엄마의 팔을 꼭 잡아당기며


한 마디를 속삭인다.


"엄마, 나는 엄마가 내 엄마라서 참 좋아.

 나는 말이야, 엄마가 내 엄마이기 이전부터 엄마가 내 엄마이길 바랬어.

 엄마 사랑해"


엄마가 듣든지 말든지 홀로 독백하듯 수줍게 속삭이더니 어느새 쿨쿨대며 쉬이 잠든 아들 옆에서

나는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그랬다.

나는 참 운이 좋은 엄마였다.

단지 엄마라는 이유로,

이렇게 벅찬 사랑을 받을 수 있으니.

너희가 자라 가는 이 여정을 함께 걸아갈 수 있으니.

풍성치 않을 지라도, 너희에게 내 사랑을

너르지 않을 지라도, 너희에게 내 품을

넉넉지 않을 지라도, 너희에게 내 가진 것들을

나누어 줄 수 있으니.


그 부족함 속에서도 너희는 그걸 사랑이라 부르며

이렇게 잘 자라주니..


모든 게 감사하다.

훌륭하진 않지만 운이 좋은 엄마라서,

그래서...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는 어느새 이만큼 자라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