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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콘치 Feb 05. 2024

지구로 가는 티켓

영화 <소울>을 보고

픽사 영화  <소울> 은 나의 인생 영화로 꼽는 영화이다.  평소 흥미 있게 느끼던 재즈를 소재로 했다는 것과, 내 동생의 힘들었던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 멘토가 멘티를 이끌어가는 줄거리의 큰 흐름 등이 내 가슴에 꽂혀들어왔기 때문인 것 같다. 그중에서도 가장 나에게 와닿았던 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영혼이 세상에 태어나기 위한 자격을 갖는 과정이었다. 영화 속에서 아직 태어나기 전의 세계에 있는 아기 영혼들은 ‘유 세미나’에서 “불꽃(inspire)”이라 불리는 자신만의 몇 가지 항목을 찾아야만 지구로 가는 티켓이 주어진다.  어떤 계기로  주인공 조 가드너는 아기 영혼이 아님에도 유 세미나에 오게 된다. 조 가드너는 그곳에서 22번 영혼을 만나 불꽃을 찾는 것을 도와주게 되면서 이 불꽃을 재능이나 인생의 목표로 이해한다. 그러나 유 세미나의 멘토들은 불꽃을 ‘인생의 목표’로 여기는 인간들이 한심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소울>에서 말하는 불꽃은 무엇이기에 지구에서의 삶을 살기 위해 꼭 필요하다 말하는 걸까.

영화 속에서 '불꽃'으로 번역된, ‘inspire’의 뜻풀이를 찾아보았다.

Inspire

1. to make someone feel that they want to do something and can do it

2. to make someone have a particular strong feeling or reaction

첫 번째 뜻은 ‘누군가가 뭔가를 하고 싶고 할 수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고,  두 번째 뜻은 ‘누군가에게 특별한 강한 느낌이나 반응을 갖게 하다'라는 뜻이다. 그 뜻을 찾아보니 내가 일하고 있는 유치원의 아이들이 떠올랐다.

유치원 아이들의 가방이나 주머니 속을 살펴보면 다양한 것들이 들어있다. 이것이 과연 소중해서 들고 다니는 건지, 버리려다가 깜빡 잊어버린 것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 은박지, 사탕 껍질과 꽃잎, 다 말라 부서진 나뭇잎이나 돌멩이 등등. 가방 안에 그런 것들이 있었는지 아이들 자신조차도 잊어버린 경우도 많았지만 이것들을 함부로 버릴 순 없다. 내가 혹시나 버려도 되는지 물어보면 놀란 토끼눈을 하며 다급하게 “어! 안 돼요!”라고 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또, 내가 교실에서 무언가를 만들 때면 남은 재료 조각을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며 다가오는 아이가 반드시 한 명은 꼭 나타난다. 그리곤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 저 이거 가져도 돼요?” 그래서 그 이유를 물으면 “그냥요”라는 두루뭉술한 대답이 나온다. 마치 영화 속의 22번 영혼이 그러했던 것처럼, 아이들에겐 그런 소소한 것들이 나는 알지 못하는 어떤 특별한 느낌을 주는 것 같다.

영화 <소울>에서는 우리가 지구에 태어나기 위해 갖춰야 했던 것은 재능이나 목표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그저 사소하더라도 무언가를 좋아하고 마음을 쏟을 준비, 무언가에 끌리게 될 마음의 준비가 더 필요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영화 <너의 이름은>에서 말하는 것처럼 운명적 사랑의 상대일 수도 있고, <소울>에서 재즈를 연주하는 조 가드너처럼 나의 직업이 될 어떤 역할일 수도 있다. 혹은 생산적이진 않지만 나에게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을 안겨 줄 취미나 여가활동이 될 수도 있다. 어쩌면 그보다 더 작은 것도 해당될지 모른다. 22번 영혼이 빙글빙글 떨어지는 단풍나무 씨앗을 보며 지구의 낭만에 빠졌던 것처럼 어깨나 마음에 무거운 짐을 한껏 들고 있어 여유가 없는 와중에도 피식, 웃음이 나게 해주는 그런 것들이면 무엇이든 말이다. 예쁘다며 감탄스럽게 심미감에 젖게 하고, 따듯한 주머니 속에서 말랑하게 녹은 초콜릿처럼 내 마음을 녹여주는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그리 작은 것이어도 나에게 확실한 행복을 안겨준다면 고단한 지구에서의 삶을 위해 꼭 필요했던 것이다.

인지 심리학자 김경일 교수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인구가 줄어듦에 따라 노동 인력이 급격히 소멸되고 있기에 현 세대 청년들의 노후는 현재 기성세대와 달리, 나이 들어서도 평생을 일해야 하는 세대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평생 일하는 삶을 살아내야 되는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이란 것이 중요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행복한 삶을 지속적으로 살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행복의 강도보다 얼마나 행복을 자주 느낄 수 있는지에 따른 ‘빈도’라고 한다. 몇 년을 참다가 한 번 짧게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비교적 한 순간의 행복을 추구하기보다는, 내가 자주 쉽게 바로 찾아서 힘들 때마다 위안을 얻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삶 전반을 행복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일명 ‘소확행’이라 불리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아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 꼭 필요해졌다.

아마 유 세미나에서도 그런 것을 가르쳐 준 것이 아닐까. 내가 하고 싶다 느껴지고 마음이 끌려가는 것들이 지구에서의 내 삶을 행복하게 지속시켜 줄 수 있다는 것. 그러니 다소 고단할 지구에서의 삶을 살고자 한다면 그 속에서 나를 지켜나갈 수 있는 나만의 소소하지만 확실한 불꽃을 찾아야 한다는 것. 태어난 지 몇 년 밖에 되지 않은 유아들은 주머니와 가방 속에 자신만의 불꽃들을 열심히 모으며 유 세미나에서 배운 것들을 잊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반면 어른들은 거창한 불꽃만이 행복이라 여기며 목표, 성취, 성공, 재능 같은 화려함에 현혹되어 그것만이 오직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불꽃이라 착각하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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