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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콘치 Aug 04. 2024

우연 - 어깨 위에 새들이 모여앉듯 (2)

울렁울렁 대며 배가 소매물도에 정박했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난 일행들과 나는 김밥 집 사장님에게 얻어온 여행 팁을 따라보기로 했다. 배에서 내린 사람들 모두가 나무 데크로 된 관광로를 향했고, 우리만 그 옆의 산길로 향했다.



산길은 생각보다 가팔랐다. 중간중간 나무 사이로 푸르고 광활한 바다가 펼쳐져 “우아-” 하고 감탄하긴 했으나 너무 숨이 차서 그 풍경을 즐기지는 못했다. 게다가 어두컴컴하게 흐린 날 아침 산행에 여자 셋 밖에 없으니 조금 무섭기도 했다.

“우리 잘못 온 것이 아닐까..?”

“그런데 옆길이 이 길 말고는 없었잖아..? 그럼 맞겠지?”

확신 없는 대화를 나누며 일단 계속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가다 보니 한편으로는 우리 밖에 없는 산이 자유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는 점점 큰소리로 깔깔 웃기도 하고, “허억.. 허억..” 하고 산적처럼 마음껏 거친 숨을 몰아쉬기도 하면서 나름대로 적막한 산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어떤 남자가 나타나 재빠르게 우리를 앞질러 갔다. “엄마야!” “꺄악!” 우리는 너무 놀라 소리를 질렀다. 남자는 놀란 우리를 아랑곳하지 않고 무릎까지 오는 긴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빠르게 사라졌다. “분명히 우리밖에 없었는데, 어디서 나타난 거지?” 놀라서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아까 배에서 내리기 전에 본 코트 입은 남자였던 것 같았다.



어느 정도 넘어오니 데크 관광로와 이어지는 부분이 나왔다. 길을 맞게 찾아왔다는 안도감이 들어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그런데 저 앞에 아까 우리를 앞질러 갔던 코트 입은 남자가 데크 울타리에 기대어 서있었다. 뿔테안경이 주는 지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들긴 했지만 나는 절대 말을 걸 성격은 못된다. 그러니 애써 못 본 척하고 지나려던 찰나였다.



우리 일행 중 굉장히 외향적 성향을 가진 한 사람이 대뜸 그 남자에게 다가가서  “아까 저희랑 같은 쪽에서 오셨죠? 혼자 오셨으면 사진 찍어드릴까요?” 라고 물었다. 남자는 당황한듯더니 “아니요.”라고 짧게 답했다. 그 어조는 아주 단호하지만, 정중하면서도 차갑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절대 할 수 없는, 일행의 그러한 돌발 행동(?)이 웃기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뜬금없는 대화를 옆에서 지켜본 결과, ‘저 남자는 우리랑 절대 말을 섞고 싶진 않은 것 같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곳에 온 사람들의 목적지는 하나였다. 일출과 함께 물길이 열리면 바닷물 사이를 가로질러 등대섬으로 가는 것! 우리도 물길이 열리는 위치까지 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날은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이 어두컴컴하고 흐린 날씨였던 탓에 일출 시간이 지났음에도 물이 아직 빠지지 않고 있었다.



등대섬으로 가려는 사람들은 아직 차가운 겨울 바닷물이 찰박찰박한 그 길 앞에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흐린 겨울날, 바닷바람까지 강하게 불며 점점 체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오들오들 떨면서 점점 가까이 가까이 모이며 말을 섞게 되었다. 우리도 각자 혼자서 이곳을 찾아온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코트 입은 남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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