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바닷바람에 손이 빨개지고, 호- 호- 손을 불어보고 조물조물 주물러봐도 온몸이 오들오들 떨릴 지경이었다. 물길이 열리기로 예정되어 있던 시간보다 거진 한 시간가량 늦어진 시간이 되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생각한 몇몇 사람들은 그 한겨울에 바지를 무릎까지 돌돌 말아올리고, 신발과 양말을 벗어서 손에 들었다. 그리고 뒤이어 선두로 나선 사람 뒤를 따라서 바지를 걷어붙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런 사람들을 보며 우리도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건널까? 기다릴까?”
이래도 춥고, 저래도 추울 것 같았다. 고민하는 사이에 물길이 열리는 속도가 빨라졌는지 바닷물은 발목 정도에서 찰박찰박한 정도까지 이르렀다.
코트 입은 남자는 자기가 먼저 가보겠다고 하였다. 다 같이 그 앞에 서서 몇 마디 나누었다고 나에게도 용기가 생겼는지, 나는 “그럼 저도 갈래요!” 하고 그를 따라나섰다. 아직 물이 완전히 빠지지 않았었기 때문에 파도가 밀려오면 조금 높은 돌 위로 폴짝 뛰어올라 물을 피해야 했다. 그러다 보면 중심을 잃고 비틀비틀하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코트 입은 남자가 내 손을 잡아서 끌어주었다.
우리는 모두 등대섬의 정상까지 올랐다. 함께 추운 시간을 견디며 겨울 바다를 가로질러 왔다는 전우애 같은 것이 생겨서 정상에서 기념으로 다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날도 추운데, 통영 육지로 돌아가면 다 같이 뜨끈한 국밥이나 먹자며 아예 일행을 이루게 되었다.
육지로 돌아오는 배 안에서 점점 커져 가는 호기심이 나의 극심한 내향성조차 삼켜버리고 있음을 느꼈다. 코트 입은 남자 옆에 딱 붙어 계속해서 질문을 쏟아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어디에 사는지, 몇 살인지, 학교는 어디를 다니는지, 여행은 왜 왔는지, 혼자 왔는지, 일행이 있는지, 언제 왔고 언제 가는지, 숙소는 어디인지, 담배는 피우는지 안 피는지 등등.. 그런 대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알고 싶은 것은 ‘여자친구가 있는지’였다. 이런저런 대화를 통해 유추한 결과, 그는 여자친구가 없었다! 그렇게 그는 그도 모르게 모든 관문을 통과했고, 나에게 합격 도장을 받았다.
마침 육지에 도착하니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우산이 없었고, 나에게는 작은 휴대용 우산이 있었다. 나는 그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한 우산을 쓰게 되었다. 우리는 정상에서 찍은 사진을 공유 받기 위해 서로 번호를 교환하고 카톡 방을 만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메신저 대화는 각자의 숙소로 돌아간 후 밤늦게까지 계속되었고, 다들 잠이 든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눈 건 나와 그 밖에 없었기에 우리는 개인 톡으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