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우리가 이 지구상에서 서로라는 존재를 처음 알게 된 지 겨우 한 달 된 시점이었다. 이번 주는 내가, 그다음 주는 네가 기차를 타고 와서 감격의 상봉을 하는 장거리 연애가 시작되었다.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것은 그제야 시작되었기에 만나면 만날수록 이상하고 이해되지 않는 것 투성이었다.
그는 아주 섬세했다. 그는 나를 만나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내가 좋다고 한 것들, 싫다고 한 것들을 메모장에 가득히 적어 놓고 기억하려 했다. 반면 나는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쿨쿨 자다 일어나서 덕질을 조금 하고, 어떤 새로운 취미 생활을 만들어볼까 고민하는 무심한 여자였다.
그는 화가 나거나 서운할 때 입을 닫았다. 그저 ‘내가 맞추겠다.’라고 했다. 나는 싸워야 직성이 풀렸다. 왠지 모르게 그의 마음이 편치 않음을 느끼는 날엔 일부러 그의 화를 돋워 그의 울분을 쏟아내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그가 서운해했음에 또 서운해했다. 더더욱 그는 입을 닫게 되었다.
어느 날은 바람 부는 섬에서 처음 만났을 때처럼 무조건적 끌림이 내 마음을 지배했지만 또 어느 날은 서로 알아가고 맞춰가는 것이 피로했다. 3시간가량을 이동한 후 만나서 오늘은 무엇을 할까, 여길 갈까 저길 갈까 하며 한나절을 보내다가 또 3시간 동안 기차에 몸을 싣고 돌아오는 여정도 귀찮아졌다. 때문에 우리는 수도 없이 헤어졌다 만났다를 반복해야만 했다.
자그마치 세 번째 이별을 했을 때이다. 데이트를 위해 미리 날을 비우고 차표 예약 등을 해두어야 하는 장거리 연애의 상황 상 그 주 주말에도 데이트가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날이 다가올수록 이제 이 만남을 그만두어야겠다는 마음이 커졌다. 그리고 그에게 ‘이번 주에 만나면 이제 우리는 그만 만날 거야.’하고 미리 선전포고를 해두었다.
약속된 데이트 날, 무거운 마음으로 기차역에 도착했다. 선전포고를 한 나를 만나러 온 그의 손에는 보라색 꽃다발이 들려있었다.
아.
이 연애를 시작하기로 한 날에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2년 전 그날에도 만나기 전부터 오고 가는 대화로 짐작을 할 수 있었다. 그 주 주말에 우리가 만나면 정식으로 만남을 약속하게 될 것을. 이별을 위해 미리 선전포고를 했듯이, 그때도 나는 미리 선전포고로 쐐기를 박았더랬다.
"나는 꽃을 좋아해요."
그로부터 2년 후, 다시 한번 꽃다발을 들고 서있는 그를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했다. 찬겨울 바다를 건너며 처음 보는 서로의 손을 잡고 의지했던 순간, 개구리 무늬의 작은 우산을 함께 썼던 순간, 밤새우며 메시지로 대화를 주고받았던 순간,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나타나서 고백하던 그날.
그렇게 눈물 나게 아쉬우면 헤어지지 않으면 될 것을. 서로 알아가고 맞춰가고 다투고 화해하며 느끼는 피로감을 애정이 식은 것으로 착각했던 것 같다.
고운 보라색 꽃다발을 받아 들고, 어색하게 밥을 먹고, 적당히 시간을 때운 후 ‘잘 지내’라고 인사를 나누고 기차에 올라탔다.
왜 그는 헤어지자는 나에게 꽃다발을 주었을까? 내가 꽃을 좋아한다고 해서 마지막으로 주고 싶었던 것일까? 그럼 그는 이렇게 변덕스러운 나여도 헤어지기 아쉬웠던 것일까? 헤어지지 말자고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못했던 것일까?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혹시 꽃에 무슨 의미가 담겨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망상에 까지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