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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 척!

-제주에서 서울로

by 지우

비 오는 소리에 눈을 떴다. 블라인드를 걷어보니 세상이 촉촉하다. 여행 마지막 날엔 항상 비가 왔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의 우울감도 함께 왔다.



모든 것이 좋았다.


첫날 비가 아주 많이 와서 비행기가 한 시간 연착되었다. 구름 속에서 비틀거리며 뚝뚝 떨어지는 느낌까지도 좋았다. 이게 여행이지.

둘째 날부터 푹푹 찌는 더위에 땀이 절로 나도. 모든 게 맛있었고 모든 장면이 아름다웠다.

벌써 셋째 날이야! 그러니 더 열심히 다녀보자! 더 여행을 만끽해 보자며 걷는 발길을 재촉하는 순간도 좋았다.

그리고 어김없이 다섯째 날 아침이 밝았다.

시간은 내 편인 듯 느리게 가더니, 넷째 날은 후루룩 사라져 버렸다.


늦은 오후 비행기라도 떠나는 날엔 마음이 분주하다. 짐을 싸고, 선물할 것들을 마련하고, 잠깐이라도 더 이 땅에 발붙이고 싶어서 기웃거리게 된다.

더 이상 뒷걸음질조차 칠 수 없는 시간이 되어 렌터카를 반납하러 갔다. 야속한 스태프는 1분 만에 "다 됐습니다. 셔틀 타세요"라고 외치신다.


이미 만석인 렌터카 셔틀. 다들 침울한 분위기다. 살포시 오는 비와 떠난다는 생각에 나처럼 우울한 거겠지. 자리마다 놓인 오메기떡 상자가 보였다. 저 상자만이 내가 제주에 있었다는 증거인 듯 (나 빼고) 모두가 다 들고 있었다.


공항행 셔틀이 출발했다. 비가 그쳤다. 순간 라디오에서 경쾌한 노래가 나온다. 잘 모르는 노래지만 후렴구는 안다. "엄지 엄지 척, 엄지 엄지 척!" 애써 노래를 따라 해 본다. 밝게 웃으며 엄지를 치켜 들어본다. "너의 여행 계획은 최고였어." 고서방에게 엄지를 들어 보인다.


"아침되면 눈도 딱 떠졌고 밖에 새소리도 좋았고. 너무 좋았거든? 근데 너무 피곤해. 개운한데 피곤해."

그 얘기가 뭐 그리 웃기다고 둘이 킥킥대고 웃었다. 순간 햇살이 창을 뚫고 들어왔다. "아! 눈부셔! 내 기미!!" 그 말에 고서방, 다정하게 웃으며 "우산 펴줄까?" 한다. "아우. 오바하지 말자. 엄지가 쏙 들어가네."


하하 웃다보니 공항에 도착했다. 인파에 밀려 들어가다 보니 게이트 앞이었다. 이제 갈 시간이야, 집으로. 일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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