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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Aug 30. 2022

이렇게 살려고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애썼던 걸까?

Photo by Kelli McClintock on Unsplash



요즘 아내와 나누는 묘한 대화가 있다. "우리는 이렇게 살려고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애썼던 걸까?" 어느 저녁이면, 주말에 나들이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면 종종 이와 비슷한 질문을 서로에게 던진다. 그저 매일 출퇴근하고, 아이 하나 키우고,주말이면 아울렛이나 한 번씩 다녀오고, 휴가철에는 여행 한 번쯤 다녀오는, 그런 삶 말이다. 남들과 다를 것 하나 없는, 그저 이 평범한 삶 하나 영위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면, 늘 거의 비슷한 대답을 서로 하게 된다. "그렇지, 뭐." 인생이란 게 그렇게 대단한 어딘가에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매번 확인한다. 아마 조금씩 나아지는 건 있을 것이다. 아마 나중에는 지금보다 조금은 더 좋은 집에 살거나, 조금은 더 좋은 차를 탈지도 모른다. 조금 더 비싼 밥을 조금 더 자주 먹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모든 게 어릴 적 꿈꾸었던 것처럼, 저 하늘 너머에 있는 대단한 삶은 아니다. 그저 우리가 어릴 적 어린이로 살았던 삶을 이제 어른의 입장에서 살게 되는 것 뿐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 평범한 삶을 넘어선 바깥의 어딘가에 그리 엄청난 삶이 있다 한들, 그런 삶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다. 가령, 하와이에 별장을 짓고 매일 해수욕 하는 삶이라든지, 거대한 저택을 짓고 호랑이 키우는 삶이라든지, 출퇴근도 없이 매일 여행다니는 삶 같은 것을 살려고 했던 것도 아니다. 그런 삶이 있는지 없는지, 좋은지 나쁜지조차 모른다. 사실, 우리는 응당 도착해야 할 그런 삶에 도착한 것이다. 스스로와 서로를 책임지며 나이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삶, 말이다. 


오늘 저녁에 아내랑 맥주 한잔을 하면서, "나는 항상 바다가 있는 어떤 삶을, 거의 매일 꿈꾸는 것 같아."라고 말했다. 아내는 "그 이야기 거의 맨날 하는 것 같은데."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말하면서도, 바다에 가서 살 용기는 별로 생기지 않는다. 어쩌면 바닷가에서 살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이라는 걸 알기 때문일 것이다. 출퇴근하고, 셋이서 나들이 가고, 돈 걱정하고, 때론 맥주 한잔하고, 늦은 밤 책 읽거나 드라마 보는 일을 좋아하며, 그냥 그렇게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 또 이렇게 물을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살려고 여기까지 떠나온 걸까?" 


얼마 전에, 아내와 아이랑 우연히 힙한 '청춘'들의 거리랄 것에 흘러들어갔던 적이 있었다. 남녀들이 짝지어 즐비한 거리 속에서, 우리는 약간 농담하듯 이렇게 말했다. "결국 그렇게 열심히 연애하고 데이트하며 사랑했던 게, 다 이렇게 살려고 그랬던 거네." 어느덧, 청춘의 거리나 심정이랄 것도 멀어진 지금에서, 가족이 되어 반복적인 삶을 꾸려나가는 입장에서, 우리는 그렇게 청춘과의 거리를 메우려 해본다. 이렇게 계속 흘러갈 삶을 받아들인다. 


아이는 점점 커나갈 것이고, 그렇게 우리로부터 멀어지고 떠날 일이 남았다. 아내와 나는 이 가정을 지키면서 조금씩 단단한 울타리를 만들어가려 애쓸 것이다. 우리는 또 여행을 떠날 것이지만 돌아올 것이고, 또 재밌는 드라마 몇 편 더 남은 생 동안 함께 볼 것이고, 새로운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여러번 같이 먹을 것이다. 몇 가지 일들에 함께 기뻐하거나 슬퍼하고, 다른 모두처럼 늙어갈 것이다. 그렇게 그저 매일 도착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너무 멀리 갈 것 없이, 매일 돌아오는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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