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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Aug 11. 2022

아이의 지킬 수 없는 약속

Photo by Ben White on Unsplash


아이는 종종 지킬 수 없는 약속 같은 것을 한다. "아빠, 꼬부랑 할아버지 될 때까지 로보트 변신시켜 주세요." 자신이 아직 잘 변신하지 못하는 장난감을 가져와서는 하는 말이다. 나는 약간 귀찮아 하면서도, 그 말이 아쉬워 또 로봇을 변신시켜준다. 내가 앞으로 이 로봇을 몇 번이나 더 변신시켜줄까 싶다. 조금 더 크면, 알아서 다 변신시키고 놀 테고, 그보다 더 크면 로봇도 갖고 놀지 않을 것이다. 


"엄마, 아빠랑 계속 계속 같이 살거야." 이런 말도 아이가 하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이다. 지금 아이는 엄마 아빠랑 같이 살지 않는 것은 상상조차 못하겠지만, 나중에는 독립하고 싶어 안달할 것이다. 확실히 아이는 커가면서 과거의 자기 자신과는 다른 존재가 되어갈 것이다. 과거의 욕망들을 모두 바꾸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른 욕망을 지닌 다른 사람이 되어갈 것이다. 


얼마 전, 아이가 작은 토끼 베개를 끌어안고 침대에서 말했다. "아빠, 슬퍼." "갑자기 왜?" "네 살때가 생각나서." "그런데 왜 슬퍼?" "그때가 되고 싶어서. 이 베개 배고 어린이집에서 낮잠 잤잖아." 아이는 네 살 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슬프다는 감정으로 이해한다. 이제는 기억할 줄 알고, 기억과 현재를 분리할 줄 알고, 기억과 현재의 거리를 슬픔으로 받아들일 줄 안다. 나는 그걸 거의 매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거의 매일 애도작업을 하고 있다. 


내가 나의 어린 시절과 벌어진 간극만큼, 아이도 이 시절과 벌어지는 간극 속에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평생 그것이 슬픈 일이라는 걸 배워갈 것이다. 부모로부터 떠나고, 부모를 떠나보내고, 다른 친구들과도 이별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면서 삶이란 계속 이어진다는 것을 이제 배우기 시작할 것이다. 삶에서 많은 것들을 배워야 하지만, 이별 만큼 잘 배워야 하는 것도 드물 것이다. 내게도 아직 많은 이별이 남았다. 인생 내내 하게 될 이별들이 아직 숱하게 남아 있고, 나는 그 이별들을 준비할 줄 알아야 한다. 


종종 지금도 전쟁에서 죽은 아이와 이별하는 어느 부모의 입장이나, 병이나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사람의 이야기들이, 그들의 삶이라고 나의 삶과 다르지 않다는 걸 이해하려 애쓴다. 만약 내가 그런 삶들보다 조금 더 긴 만남을 함께할 수 있고, 이별을 조금 더 지연할 수 있다면, 그만큼 약간의 시간을 더 얻은 운 좋은 삶일 뿐이다. 그러나 어느 삶이건 본질은 다르지 않다. 우리는 잠깐 살다 떠난다는 것 말이다. 


삶이란 어찌 보면 허무하기 짝이 없고, 다른 한편으로 보면 영원할 것도 같지만, 실은 그 사이 어디쯤에 있는 게 오늘이고 진짜 삶이 아닌가 싶다. 허무한 걸 알면서도 오늘을 사랑하고자 애쓰는 것이고,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아도 영원할 것처럼 또 오늘은 사랑해보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마치 임계점이나 특이점을 넘어버린 한 순간처럼, 삶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그저 이 삶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게 될 날을 맞이하는 것이다. 한 순간, 모든 걸 다 잃겠지만, 그래도 있는 동안, 살아 있는 동안, 존재하는 동안, 그저 사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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