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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Jul 29. 2022

나는 어머니의 고독을 좋아했다


어릴 적, 나는 늦은 밤 어머니의 고독을 보는 걸 좋아했다. 가령, 부엌에서 작은 등만 켜놓은 채 주전자에 무언가를 끓이며 가만히 식탁에 앉아 있는 어머니, 늦은 밤 안경을 쓰고 방에서 혼자 책을 읽는 어머니, 작은 공간에서 음악을 들으며 그림을 그리는 어머니의 모습이 좋았다. 그 고독은 다른 무엇보다도 내게 묘한 안정감을 주었던 것 같다. 어두운 방, 작은 불빛, 혼자만의 고요한 그 장면의 느낌을 잊을 수 없다. 


얼마 전, 어머니와 내가 MBTI가 같다는 걸 알았다.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MBTI 유형 중에서 가장 드문 유형이 INFJ라는데, 어머니와 나는 그 작은 확률을 뚫고 어쨌든 '비슷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수록, 어머니가 삶을 대하고 견디던 방식을 떠올린다. 이를테면, 서른 중반 무렵의 어머니, 작은 화방을 차려 자기만의 공간을 필사적으로 가꾸었던 어머니, 그것이 내게 어떤 원형 같은 느낌을 준다. 


나는 또 어머니를 생각하면, 자주 운전하던 모습을 떠올린다. 운전하면서 늘 음악을 듣고, 노래를 부르고, 무언가 이야기를 들려주던 어머니는 꼭 잠자리에서의 어머니와 비슷했다. 잠자리에서도, 방에 모든 불을 끈 채 어머니는 노래를 불러주거나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그 모든 순간들에 어떤 고독이나 적막이, 고요함이 묻어 있다. 어머니가 시끄럽거나 정신 없거나 활력적이라는 느낌은 전혀 없다. 고요하면서 강하고, 낮게 흐르고, 그러면서도 우리를 부드럽게 지켜주는 존재였다. 


내가 어머니에게 배운 건 그런 고독의 장면, 또는 고독의 분위기였던 것 같다. 나는 삶이라는 게 저 바깥을 향해 마냥 펼쳐져 있는 게 아니라, 어두운 밤 부엌에 작게 불들어온 가스레인지 전등 아래 주전자 물꿇는 소리 근처 어디에 더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이라는 걸 배웠던 듯하다. 아이를 껴안고 늦은 밤 노래 불러주는 순간, 아이를 데리고 어딘가 떠나는 작은 자동차 안, 그런 것 속에 삶이 있다는 걸 온 몸으로 배웠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저 바깥의 세상이나 현실 어딘가로 나서도, 매일 삶이 있는 어느 어두운 방으로 되돌아온다고 느끼곤 한다. 글쓰는 방, 책 읽는 방, 무언가를 기억하거나 떠올리는 방, 결코 화려하지도 않고 화사하지도 않은, 약간 고요한 방구석 어딘가에 붙박여 있을 때, 나는 삶에 돌아와 있다는 걸 깨닫곤 한다. 그리고 아주 먼 미래에도, 나는 그저 어느 늦은 밤 내게 부여된 그 작은 안정감이 여전히 삶의 증거라고 느끼면서, 고요히 주전자 물 끓이는 순간을 사랑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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