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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Jul 20. 2022

아이랑 보내는 시간의 기적


Photo by Nathan Dumlao on Unsplash


아이랑 보내는 시간은 종종 기적같이 느껴진다. 아이가 곁에 있는 순간, 나는 잠시 휴대폰을 내려놓고 다른 것들을 본다. 오늘은 아이와 둘이서 산책을 나섰는데, 하늘이 너무도 예뻐서 아이에게 하늘이 무엇 같냐고 물어보았다. "솜사탕 같아. 아빠는?"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아빠는, 거품들 같아." "나는 솜사탕 같아." 우리는 그렇게 편의점 앞 의자에서 쌍쌍바를 하나씩 나눠 먹으며 하늘을 보았다. 


일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거의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서, 아이랑 부지런히 뛰어 놀았다. 아이가 없었다면, 내가 이렇게 숨이 가빠질 정도로 땀을 흘리며 달리는 일이 있을까. 누구를 잡거나, 누구에게서 도망치며 이렇게 뛸 일이 있을까. 길에서 아이가 주운 물총에 온 몸이 흠뻑 젖도록 물을 맞아가면서, 나도 수돗가에서 손 한 가득 물을 담아 아이에게 뿌려대면서, 그렇게 수백번씩 깔깔대며 공원을 뛰어다닐 일이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이건 기적이 아니면 무엇일까. 


셋이서 거닐 때는, 잠시 현실을 잊는다. 현실은 하나부터 열까지 걱정 투성이, 챙기고 신경쓸 것 투성이다. 자주 도망가고 싶은 것들이 그냥 현실 속에 널려 있다. 마감을 지켜 제출해야 하는 서면들, 전세 자금 대출, 자동차 보험, 민방위 훈련, 칼럼 마감, 북토크 모집, 이런 것들이 스케쥴러에 늘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잠시라도 마음을 놓아버린다면, 그 모든 걸 놓쳐버리고 나는 시냇물에 떠내려가는 낙엽마냥 허물어져 버릴 것만 같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거니는 순간은, 그 모든 걸 잠시 잊을 수 있다. 대신 눈 앞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눈 앞의 세계. 머릿속의 기묘한 관념을 지워버린 채, 있는 그대로 만나는 세상. 해질녘의 아파트 색깔, 담벼락의 모양, 거미줄에 걸린 벌레들, 솜사탕을 닮은 구름들과 도깨비처럼 생긴 자동차, 공원 모래놀이장이라는 하나의 세계, 너무도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웃음소리,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불현듯 들려오는 매미 소리, 그 모든 게 눈앞에 있고, 나는 그 세계의 일원이다. 나는 현재의 주민이고, 지금의 시민이다. 


요즘 나는 스마트폰을 내려놓는 순간들에 대해 생각한다. 물론, 스마트폰 덕분에 언제 어디에서나 수시로 글을 쓸 수 있고, 전자책도 읽을 수 있고, SNS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거나 좋은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혜택이다. 그러나 자주 정도를 넘어서 스마트폰을 만진다든지 신경 쓸 때가 있고, 그럴 때면, 삶의 균형을 지켜줄 다른 무게추들이 무엇이 있는지 헤아려보곤 한다. 내겐 그 순간은, 첫째로, 구체적인 손 끝의 감각을 느끼며 약간 어두운 불빛 아래서 하는 독서의 시간이다. 그리고 두번째로, 아내와 아이랑 함게 거니는 세계의 시간이다. 


아이는 내게 기적이다. 아이랑 함께 있으면 세계를 되돌려 받는다. 얼마 전, 나는 아내가 어느 오후에 보내온, 아이가 모래놀이를 하는 사진을 보고는, 내가 평생 아이와 모래놀이를 하던 그 시간을 그리워할 거라는 걸 깨달았다. 나뭇잎 사이로 떨어지는 조각난 햇빛들로 얼룩진 모래, 그 가운데 아이랑 부지런히 물을 퍼 날라 만든 웅덩이, 물이 이어지는 모래로 만든 수로들, 잔뜩 몰입한 아이의 눈빛, 몸을 타고 흐르는 땀, 모든 것들이 청명하게만 느껴지는 그 시간을 영원히 그리워할 것이다. 죽기 전에도 그 시간을 떠올릴 것이다. 내가 세계 속에 있었고, 살아 있었고, 그래서 세계를 사랑한다고 너무나 생생하게 확신했던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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