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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Jul 11. 2022

그냥 사는 삶, 그저 잘사는 삶

Photo by TK on Unsplash


나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아이를 등원시키고, 돌아오면 설거지를 하고, 아이를 씻긴다. 아내는 거의 하루도 빠짐 없이, 아이를 하원시키고, 아이의 저녁을 먹이고, 아이를 재운다. 그리고 주말에는 같이 청소를 하거나 빨래를 한다. 이것이 우리에게 안착된 역할 분담이다. 그런데 이 분담이 제대로 되기까지는 꽤 시행착오가 많았고, 싸우기도 많이 했다. 지금은 거의 서로가 서로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 


우리는 맞벌이 부부이고, 다른 부부들처럼 함께 벌고, 함께 집안일하고, 함께 아이를 돌본다. 그러다 보면, 평일은 정말 정신없이 지나간다. 외식 한 번 하기도 쉽지 않다. 대개 주중 저녁에는 한 번 정도 외식하는 것 같다. 그런데 저녁이 되면 둘 다 피곤해서 그것도 쉽지 않다. 대신, 주말에는 꼭 외식을 하는 편이고, 셋이서 꽤나 힘차게 놀기도 한다. 사실, 주중에 아내가 이른 퇴근으로 아이 보는 시간이 좀 더 많아서, 주말에는 내가 좀 더 놀아주려고 한다. 그렇게 균형을 맞춘다. 


솔직히 우리 일상은 별로 화려할 게 없다. 부부 골프나 테니스를 치러 다니는 것도 아니고, 특급 호텔에서 자주 호캉스를 즐긴다든지, 근사한 레스토랑을 자주 가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딱히 전시할 만한 것도 별로 없다. 보통 현대인의 여가는 곧 소비생활이고, 어떤 소비생활을 하는지로 자기 인생을 증명한다고 한다. 화려한 소비는 대부분 전시하여 보여줄 때 의미있는 것이고, 그래서 열심히 소비하고 열심히 전시하며 자기 삶을 증명받는 게 현대인의 삶이다. 그러나 우리는 별로 전시할 만한 게 없다. 


여가 시간이라고 해봐야, 아이랑 공원에서 뛰어 놀거나, 둘이 넷플릭스 보거나, 혼자 책 읽는 게 다다. 집이 근사한 전경을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외제차를 타는 것도 아니다. 기껏해야 휴가 떠나면 전시할 일이 생기나 모르겠는데, 요즘에는 휴가 가도 그냥 놀기 바쁘지 근사하게 자랑할 만한 순간도 딱히 없다고 느낀다. 대개는 그냥 살고, 그냥 누리고, 그냥 느끼려고 하는 것 같다. 그냥 그게 좋아진 것 같다. 


그나마 나를 전시한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 방송에 나가거나 강연을 하는 일이 있을 때 정도인 것 같다. 말하자면, 사회생활의 일종이랄까, 주최측에 진 신세에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서랄까, 나도 이런 저런 활동을 하며 살고 있다는 걸 남겨두고 알리고 싶어서랄까, 그런 이유가 있어서인 것 같다. 그런데 그것도 화려한 소비생활과는 별반 상관 없는 걸 보면, 나는 그쪽과는 영 인연이 없는 것 같긴 하다. 


아무튼, 현대 사회에서도 나름대로의 삶의 리듬을 갖고 사는 게 가능하다고, 그래서 자기만의 리듬이라는 걸 찾아가는 것도 가능한 것 같다고 느낀다. 그리고 진정한 인생의 행복이라는 건 대개 그런 자기만의 라이프스타일과 관련되어 있는 듯하다. 매일 등하원시키고, 씻기고, 설거지하고, 주말에 뛰어 놀고, 동네 산책하고, 밤에 책 읽고, 글쓰고, 그러다 이 세월 다 보내는 게, 그저 잘 사는 삶이라고 느낀다. 나는 그저 그렇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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