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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Jun 30. 2022

아이는 "내가 다섯살로 떠나가고 있어."라면서 울었다


아이는 "내가 다섯살로 떠나가고 있어."라면서 울었다. 다섯살이 뭔지는 몰라도, 되기 싫다고 했다. 이제 내일이면 다섯살로 떠나야 하는데 그러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아마 아이에게 네살이라는 것은 지금 여기이고, 다섯살이라는 것은 어딘가로 떠나는 일인가보다. 오늘과 이별하는 일인가보다. 


요즘 아이는 종종 크고 싶지 않다고 한다. 아마도 우리가 종종 지금이 너무 아쉽다고, 커나가는 게 아쉽다고 이야기 하는 걸 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형은 멋지지만 형이 되기 보다는, 아기가 되고 싶다고 하기도 한다. 명확히 이해하는 건 아닐지라도, 어렴풋이, 커나가는 일이라는 건 자신이 있는 부모의 품 속에서 조금씩 떠나가는 일이라는 걸 예감할지도 모르겠다. 


종종 아내와 식당이나 카페를 가면, 옆에 붙어 있는 아이가 신기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어디를 가든 우리를 따라다니는 존재, 너는 무엇이길래 항상 이렇게 우리 옆에 있니, 우리가 커피 마시러 왔는데 왜 너는 옆에 앉아 있고, 우리가 먹으려고 시켰는데 너는 왜 옆에서 얼굴만 내밀고 있니,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들 때가 있다. 품 안의 자식인데, 그것도 벌써 얼마 남지 않은 일이란 걸 느끼곤 한다. 


어머니는 종종 자신의 젊은 시절이 엊그제 같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요즘에서야 나도 그 말을 이해한다. 사실, 어떤 면에서 나는 아직 대학생 시절의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만 같다. 스무살도 그리 옛날이 아닌 것 같다. 그런데 15년 전이다. 스무살 때, 25살쯤 되는 복학생 형들은 정말 대단히 아저씨 같았다. 그러나 나는 35살이고, 라떼 클럽에 어울리는 입장이 되었다. 그런데 마음은 한참 늦게 따라온다. 내 아이는 아직 아기 같은데, 이제 어린이가 다 되었다. 


아마도 우리가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방식이나, 마음이 시간을 따라가는 방식, 몸이 부쩍 커가거나 나이 들어가는 방식 같은 것들은 서로 딱 맞지 않도록 만들어져 있는 것 같다. 불협화음이 삶의 기본 원칙이랄까. 아이도 그저 이곳에 머물고 싶지만, 결국 마음만 남겨진 채로 흘러가는 시간에 대해 무언가를 느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마음을 두고, 시간은 부지런히 간다. 그 마음을 다 일일이 회수할 수도 없다. 


아내랑 아이와 셋이 보낸 날들이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은데, 그 시간 만큼만 더 정신없이 보내면, 10년을 함께 한 셈이 된다. 그 10년이란 시간은 또 얼마나 쏜살같이 지나온 기분이 들지, 약간 두렵기도 한다. 매년은 어쩜 이리도 정신없이 지나가는 것 같은지, 시간이라는 건 그저 이렇게 다 지나가버리고 마는 것인지, 이러다 삶도 금방 다 끝나버리는 건 아닌지, 그런 조마조마함이 들기도 하는 듯하다. 소중한 사람과 하루 더 보내고, 얼굴 한 번 더 보고, 간신히 그렇게 애쓰고 나면, 역시 삶이라는 것이 다 끝나 있을 것만 같다. 가끔은 나도 아이처럼, "내가 내일로 떠나가고 있어."라면서 울고 싶은 기분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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