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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Jun 10. 2022

생명을 처음 느꼈던 순간


Photo by Afra Ramió on Unsplash


어릴 적, 생명이라는 걸 처음 느꼈던 순간이 있다. 아마 그 전에도 생명을 알고는 있었겠지만, 그 순간, 나는 속으로 '아, 이게 생명이구나.'하고 어딘지 깨달아버린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이 너무 강렬해서, 나는 그만, 그 때야말로 내가 처음 생명을 안 순간이라고 스스로 각인시켜 버렸다. 열다섯 무렵, 나의 작은 병아리를 내 두 손 안에 담았던 순간이었다. 


병아리는 놀이터에서 아이들에게 학대를 당하고 있었다. 초등학생 정도 되는 아이들은 학교 앞에서 500원 주고 산 병아리를 데리고 놀다가, 모래에 파묻어 버리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어쩐지 심장이 덜컥 내려 앉아서, 아이들한테 가서 왜 그러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아이 중 하나는 엄마가 밖에 버리라고 해서 그런다고 했다. 나는 충동적으로 주머니에 있던 5000원짜리 지폐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병아리를 달라고 했다. 아이는 순순히 돈을 받고 병아리를 건네주었다. 5000원을 잃은 나는 PC방에 가지 못하고, 병아리를 데리고, 어머니의 화실로 갔다. 


당시 아이들을 가르치던 어머니의 반지하 화실에서, 어머니와 여동생, 그리고 나는 병아리를 돌보기 시작했다. 노란 전구와 박스로 병아리 집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힘 없이 늘어진 병아리를 두 손에 담아 들여다보는데, 이렇게 작은 생명에게도 심장이 있고, 두 눈이 있어 껌벅이고, 나를 바라보며 입을 작게 벌렸다 다물었다 한다는 것이, 너무나 이상하고도 신비로웠다. 그 작은 생명 앞에서 느꼈던 그 뭉클함이 무엇이었는지는 아직도 명확히 표현하기가 어렵다. 연민인지, 사랑인지, 무엇인지 모를 그저 어떤 뭉클함, 눈물이 날 것 같은 부드러운 반짝임, 그런 게 있을 따름이었다. 


아마도 그 다음 날, 병아리는 죽었던 것 같다. 나는 심장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랬을 것이다. 이후 화실에 다니던 아이들이 데려온 병아리가 셋이 더 있었다. 그 셋은, 어머니가 어딘가에서 구해온 항생제 알약을 나눠 먹고는, 놀랍도록 건강하게 자랐다. 여동생과 나는 병아리들을 너무 사랑해서, 매일 땅 파서  애벌레를 잡아주고, 병아리를 데리고 호숫가며 산이며 바다에 가곤 했다. 강아지도 아닌 병아리를 그렇게 온데간데 데리고 다니면서 산책시키고 애지중지 키운 경우도 드물 것이다. 그래도 그건 사랑이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몇 년 뒤, 나는 내 손에서 태어나 나의 책상 아래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살았던 강아지들, 산, 바다, 강에게 비슷한 마음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십년도 더 지난 뒤, 나는 내 품에 아이를 안았다. 아이가 잘 잠들기를 바라며 품에 안고 밤새 노래를 부르고, 젖병을 물리고, 등을 두드리고, 아이가 잠든 밤에도 곁을 지키며 책장을 넘기곤 했다. 


그렇게 몇 년인가를 보내고, 이제 쉴 새 없이 재잘되는 어린이가 되어가는 아이와 한참 눈밭을 뒹굴고 나서는, 어느 밤, 문득 병아리를 떠올렸다. 그때의 뭉클함이라는 걸 어째서인지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또 다시, 우유를 묻힌 내 손가락을 빨던 어린 강아지를, 언제고 나를 바라보던 나의 어린 강아지를 또 떠올리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느끼는 것은 다행스러움이었다. 내가 어느 작은 존재를 이렇게 사랑할 수 있어서, 그런 삶을 살아서, 너무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그렇게나 절절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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