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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Feb 17. 2021

단 둘이 떠난 아이와의 월미도 여행


오늘은 아이와 둘이서 월미도를 다녀왔다. 그동안 여러모로 고생했던 아내는 모처럼 친구들과 짧은 여행을 떠났다. 나는 아이와 둘이서 무얼 할까 고민하다가, 어영부영 하루를 보내느니, 둘만의 추억을 쌓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 일 아닌 외출인데도, 출발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들었는데, 차를 타서도 흐린 날씨 같은 것 따위가 발목을 잡는 것 같았다.그래도 이왕 출발한 거, 끝까지 달려보자 싶었다. 


차를 주차장에 세우고 잠든 아이를 번쩍 들어 유모차에 태우니 아이는 어리둥절하며, 비몽사몽인가 싶더니, 커다란 대관람차를 보고는 눈이 번쩍 뜨여 "저게 므에여?' 하고 물었다. 나는 관람차라고 하고는, 유모차를 밀고 곧장 놀이동산 안으로 달렸다.  아이는 언제 졸았냐는 듯이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회전목마 타자!" 하고 소리치곤 했다. 


나는 내심 바다를 보고 싶은 마음이 커서, 냅다 놀이동산을 통과해서 바다까지 걸었다. 바다를 보는 것만으로도, 요즘 마음의 무기력 같은 것이 조금 나아지리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약간 약물 중독자의 금단현상처럼 바다 결핍증을 앓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기 때문이다. 짙은 안개 때문에 바다가 잘 보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바다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약간 마음이 펼쳐지고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아이는 고래 있어요? 게 있어요? 거북이 있어요? 하고 연신 물었는데, 사실, 그 중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아이도 조금 흥분하고 신난 것 같았다. 


바다와 갈매기를 조금 구경하고 나서는, 놀이동산으로 돌아갔다. 미니 후룸라이드라는 게 있어서, 아이랑 처음으로 '배탄다'고 생각하고 타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매표소에 가서 물었는데, 일단 아이는 너무 어려서 혼자 탈 수 없고, 어른이랑 같이 탈 수 있는데 '엄마'랑만 같이 탈 수 있다고 했다. 그 순간 조금 서러운 기분이 들었는데, 아빠랑만 같이 와서 아빠랑 같이 타야만 한다고 조금 항변해보았으나, 무게 제한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아이가 아직 어려서 탈 수 있는 건 거의 없었고, 대관람차와 회전목마를 같이 타기로 했다. 


관람차를 타는 건 얼마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고, 높이 올라가니 조금 무섭기도 했다. 아이는 내 옆에 꼭 붙어 있었는데, 무서워, 재밌어, 차들이 작아졌어, 같은 말들을 부지런히 했다. 언젠가 아이에게 너의 생애 첫 관람차는, 아빠와 단 둘이 떠났던 여행에서였단다, 하고 말해줄 날이 있을 걸 생각하니, 이상하게 조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관람차에 내려서는, 요즘 아이가 동화책에서 매일같이 보는 회전목마를 탔다. 아이를 꼭 안고 회전목마에 올랐는데, 타려는 사람이 없어서 우리 둘만 탄 채로 빙글빙글 돌았다. 사람들이 잔뜩 모여서 우리를 구경하고, 아이에게 인사를 해주었다. 


그러고나서, 나는 바다를 조금 더 보고 싶어서, 아이랑 부지런히 바닷가를 걸었다. 예전 같았으면 아무런 관심도 없었을 갖가지 조형물들이 아이랑 있으니 모두 신비한 나라의 낯선 친구들 같았다. 펭귄, 개구리, 조랑말, 닭 같은 조형물들은 아이는 신기해하고 재밌어했다. 아이랑 다니면, 보잘 것 없고, 시시하고, 별 재미없는 것 같은 거리도 걸음걸음이 모두 이상하고 신비로운 세계가 된다. 길가에 파는 장난감들도, 아이는 손가락질 하며 "저게 뭐야!" 하고 소리치곤 하는데, 어쩌면, 아이를 만남으로써 그런 세계 하나를 더 얻었다는 느낌도 든다. 


돌아오는 길에는 요즘 아이가 관심많은 중장비 자동차 세트를 길에서 하나 사주었다. 만원밖에 하지 않았으므로, 무척 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기대보다 질도 좋아서 더 놀라기도 했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온라인 쇼핑몰보다도 싼 가격이었다. 사실, 같은 물건이 다른 상점에서 더 비싼 걸 보기도 했는데, 그러고보면, 주인 아저씨가 조금 싸게 해준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정가로 팔면 안 살 것처럼, 약간 불쌍해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이 중장비 장난감 세트를 너무 좋아해서, 한 시간 걸려 돌아오는 자동차 안에서도 끝없이 혼자서 그것들을 갖고 놀았다. 집에 와서도 TV 틀어달라는 말 한마디 없이 중장비 세트를 갖고 놀았다. 아이를 위해서는 간고등어 한 마리를 굽고, 나는 회 한접시에 맥주 한 잔을 했다. 그리고 평소처럼 접이식 욕조를 펼쳐 둘이서 목욕을 했다. 그러고나니, 하루가 다 지나 있었다. 잠깐이었지만, 그래도 나름 서울에 와서 처음 바다를 보러, 그렇게 둘이서 떠났다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만 들었다. 마음먹길 잘했다. 


요즘에는 이상하게 하루 중 무얼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그다지 효율적이지도 못하고, 보람차지 못한 날들을 보낸 적이 잦았다. 그 와중에 해야할 일들을 하고, 돈을 벌고, 나름 의미 부여를 하면서 한 일들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뭐랄까, 내가 진정한 삶의 의욕으로, 어떤 생의 의지로 해냈다고 할 만한 일은 아이와 둘만의 여행을 하루 떠나보기로 마음먹었던 오늘의 일이 아니었나 싶다. 그냥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잘했다. 별일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나 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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